[논&설] 진화한 AI '챗GPT'…"특이점은 오는 것 아닌 들이닥치는 것"

입력 2023-01-25 16:25  

[논&설] 진화한 AI '챗GPT'…"특이점은 오는 것 아닌 들이닥치는 것"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논설위원 = 1955년 9월의 마지막 날. 28살의 미국 인지과학자 존 매카시는 록펠러 재단에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내년 여름 뉴햄프셔 하노버에 있는 다트머스대에서 두 달 동안 10명의 과학자가 모여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연구할 것을 제안합니다. 연구는 학습과 기타 지성의 모든 측면을 자세히 묘사해서, 기계로 지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추측을 기반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언어를 사용하고, 추상과 개념을 만들고, 지금은 인간만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을 풀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기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다트머스 제안서'라고 불리는 이 문건에서 인공지능(AI)이라는 용어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드러냈다. 그러나 AI 연구는 녹록지 않았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연구는 과학기술계의 꿈이었지만, 그 이론을 뒷받침할 기술의 발달이 더뎠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인간의 뇌 구조는 다르다'는 성급한 결론들이 나오면서 답답한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시 AI의 붐을 불러온 것은 캐나다 토론토대의 제프리 힌턴이었다. 그는 '딥 러닝'이라는 기술로 2012년 이미지 인식 경시대회에서 오류율 15%를 기록, '마의 24%' 구간을 훨씬 뛰어넘어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딥러닝을 중심으로 한 AI 경쟁의 막이 올랐다. 우리가 잘 아는 알파고 역시 딥러닝의 산물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이 있었던 2016년 구글의 순다이 피차르 CEO는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로"를 선언했다. 이후 '오케이 구글'과 애플 '시리' 등 이른바 AI 비서로 불리는 기기들이 대거 출시됐다. AI 비서들이 급속도로 발전해 인간의 대화 상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넘쳐났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6년여간 날씨나 알람, 음악 재생 등 좁은 분야에서 정해진 질문에만 답을 하고, 조금만 그 틀을 벗어나면 '죄송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해놓고는 그만이었다.
사람들의 실망이 고조될 즈음, 지난해 연말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와 실리콘밸리의 천재 투자자 샘 올트먼 등이 공동 설립한 비영리법인 '오픈AI'가 고도화된 언어 생성 인공지능 기술 '챗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를 공개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수준을 넘어 각 분야의 수준 높은 리포트를 작성하고, 심지어 시를 짓거나 간단한 코딩까지 해 준다. 웬만한 석·박사급 비서 여러 명을 거느리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키워드를 제시하면 수많은 정보를 랜덤으로 제공하는 구글이나 네이버의 검색 엔진과는 달리 챗GPT는 인터넷상의 정보를 한꺼번에 취합해 중요도를 판별한 다음, 사용자의 의도에 맞춰 완결된 형태의 글로 대답한다. 마치 만물박사 인격체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다트머스 제안서의 '추측'이 현실이 된 것이다.
물론, 아직 부족하고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다.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석연찮은 논리로 잘못된 주장을 옹호하기도 한다. 데이터는 2021년으로 한정돼 있고, 몇 개 언어를 한다지만 영어에만 익숙하다.

하지만 1천750억 개의 매개 변수를 가진 'GPT-3'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만들어진 이 챗봇이 매개변수가 1조∼100조 개에 이르는 'GPT-4'로 넘어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인간의 뇌 신경세포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매개 변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지능이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텍스트 기반 데이터만 학습했다면, 소리, 영상, 사진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 입력과 사고가 가능해진다. 인격체 같은 AI에 멀티모달(Multimodal)이 구현되는 것이다.
집 한 채 크기의 에니악 컴퓨터에 의존하던 1955년에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생각해 낸 인류는 불과 60여 년 만에 거의 인간처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챗GPT를 만들어 냈다. 딥 러닝이 나오기 전 50여 년이 태동기였다면 불과 10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1억1천700만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GPT-1 버전이 나온 것이 5년 전인 2018년이다. 1조 개가 넘는 GPT-4 버전은 올해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오픈AI에 지난 3년여간 30억 달러를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와 추가 100억 달러 투자 협상을 체결했다. AI의 선두주자 구글은 챗GPT가 나오자 '코드 레드'를 발동하며 위기감을 표출했지만, 조만간 챗GPT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기술로 응수할 것이다. 애플이나 아마존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유례없는 AI 진화 경쟁이 전개될 것이다.
미국의 인공지능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2011년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정보기술, 유전자 공학, 로봇공학, 나노기술, 인공지능 등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으로 인해 인류는 마침내 2045년에는 특이점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특이점(singularity)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설정한 기준점을 넘어서는 세상, 인간이 AI가 하는 일을 통제하기는커녕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는 얘기다.
하루 두 배씩 번식하는 연꽃이 보름 동안 연못을 절반가량 채웠다. 연못이 연꽃으로 모두 덮이는 데 앞으로 며칠이 더 걸릴까. 또 다른 보름? 아니다. 정답은 바로 다음 날이다.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은 이런 것이다. 고 이어령 박사는 "특이점은 오는 것이 아니라 들이닥치는 것"이라고 했다. 상당수의 AI 전문가들은 커즈와일의 '2045년 특이점 도래설'을 너무 성급한 진단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50∼100년은 더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AI의 기하급수적 진화 속도로 보면 커즈와일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오늘 '설마'하다가 내일 갑자기 들이닥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특이한 세상을 맞을 준비가 얼마나 돼 있나?
kn020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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