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돈 써야죠"…中신문, 청소년 아이돌 팬덤 조명

입력 2023-07-21 12:49  

"사랑한다면 돈 써야죠"…中신문, 청소년 아이돌 팬덤 조명
'최애' 순위 지키려 앨범 사재기…인터넷선 다른 팬덤과 '욕설 전쟁'
전문가 "팬덤 문화, 청소년 자아실현 돕지만 '조회수 우선주의' 우려돼"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요! 아이돌에게 차트는 무척 중요해요. 순위가 높아지면 사업 제안이 많아지니 일이 더 잘될 거예요. 나는 '찐팬'(진정한 팬)이지, 돈 안 쓰는 팬이 아니에요."
중국 헤이룽장성에 사는 16세 여고생 웨이팅(이하 가명)은 "왜 아이돌의 순위를 올려주려는 것이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답했다.
얼마 전 웨이팅은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의 순위 상승을 위해 집에서 몰래 1천위안(약 17만8천원)이 넘는 돈을 들고 나가 썼다. 이 일로 부녀 사이엔 싸움이 났다.
중국 공산당의 사정기구인 중앙정법위원회의 기관지 법치일보는 21일 중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아이돌을 비이성적으로 쫓아다니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며 아이돌 팬덤을 자세히 조명했다.
웨이팅의 경우 일상생활 중 아이돌 관련 활동을 하는 시간이 50% 이상이고, 사인회 참석을 위해 자주 수업을 빼먹는다. 돈이 부족해지면 책값이 필요하다고 집에 거짓말을 하거나, 부모의 휴대전화로 자기 계좌에 돈 수천위안을 보내기도 한다고 웨이팅의 어머니는 설명했다.
베이징의 17세 여학생 펑위안도 웨이팅과 비슷하다. 이웃집의 영향으로 2016년부터 아이돌 팬이 된 펑위안은 '순위 사수'를 위해 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사는 일이 잦고, 아이돌 관련 굿즈(상품) 모으기에도 열심이다.
화가 난 아버지가 펑위안이 애지중지하는 포스터를 찢어버린 날도 있었지만, 펑위안은 팬 활동을 계속해나갔다. 법치일보는 "펑위안은 자신을 취재 중인 기자에게도 좋아하는 스타를 '영업'(팬이 되라고 권유)하고 싶어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청소년 팬들에게 온라인 공간은 아이돌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자 '전쟁터'다. 라이벌 아이돌 팬들 사이에 서로 욕설이 난무하는 공방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팬들 사이에서 '욕설 주력 선수'로 꼽히는 펑위안은 싸움이 벌어지면 지원 요청도 자주 받는다고 한다.
지출은 많을 수밖에 없다. 펑위안은 "아이돌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음원 스트리밍을 하거나 팬 활동에 필요한 돈을 모으고 상품을 사는 등의 '업적'이 있어야 팬층에 진입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앨범을 많이 팔아야 하는 업체들은 사전 판매 기간을 설정하거나 각양각색의 포토카드를 하나씩 무작위로 넣어서 팬들이 여러 장의 음반을 사게 유도한다.
펑위안의 어머니는 딸이 앨범을 사는 데 지금까지 6만∼7만위안(약 1천만∼1천200만원)을 썼다며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펑위안 부모의 연간 수입은 15만위안(약 2천700만원) 정도다.
요즘 중국 청소년 팬들이 아이돌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주된 방식은 순위 투표다. '다펀'(大粉·영향력 있는 팬)이 '임무'를 부여하면 학생 팬들은 그 목표를 수행하는 형태다.
한 연예계 종사자는 "그 아이돌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왜 사랑할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건 대부분 다펀이 한다"며 "대다수 미성년 팬은 그만한 능력이 없어서 다펀의 관점과 지휘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연예인 팬 경력이 많은 중국인 위인은 "다펀의 실력은 팬을 동원할 말솜씨와 추첨, '(아이돌의) 활동을 우선 고려한다'는 약속으로 요약된다"며 "팬클럽에서 학생 팬은 다펀이 시키는 대로 하는 도구가 된다"고도 전했다.
중국촨메이대(中國傳媒大學)의 정닝 교수는 팬덤 문화의 합리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청소년 팬들의 사회적 교류나 존중, 자아실현 욕구를 팬덤이 채워줄 수 있고, 팬덤이 감정 분출의 통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다만 "근래 일부 자본과 플랫폼의 이해 때문에 '조회수 우선'의 잘못된 인식이 퍼졌고, 팬덤 문화에도 기형적인 경향이 생겼다"며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해체나 인간관계에서의 소외, 인터넷 공간에서의 '군중 속의 고독' 등은 이제 인터넷과 사회 거버넌스에 도전이 됐다"고 설명했다.
xi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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