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르헨 대선, 결선 좌절 3위 후보와 극우 후보 연대에 판세 요동

입력 2023-10-30 06:13  

[르포] 아르헨 대선, 결선 좌절 3위 후보와 극우 후보 연대에 판세 요동
"비난해 온 대상과 연대하다니…" vs "이렇게라도 해야 정권교체 가능"
연대 놓고 야권 분열…'경제위기 심판' 직면한 여당 후보 반사이익?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가 29일(현지시간)로 3주 남은 가운데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내달 19일 좌파 성향 집권 여당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와 극우 성향 자유전진당의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대선 결선투표에서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이런 가운데 대선 본선에서 3위에 그쳐 결선투표 진출에 실패한 제1 야권 연합의 파트리시아 불리치 후보가 최근 전격적으로 밀레이 후보를 지지해 판세를 뒤흔들었다.
지난 22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극우 성향인 밀레이 후보와 중도 우파 성향인 불리치 후보는 '견원지간'이었다. 우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서로를 비난하면서 대립했던 것.
밀레이 후보는 불리치 후보를 '몬토네라(70년대 페론당 내 급진청년단) 살인자', '유치원에 폭발물을 설치한 살인자'라고 부르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불리치 후보는 사실이 아닌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밀레이 후보를 고소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불리치 후보가 지난 25일 "(경제난의) 긴급한 현 상황에서 우리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면서 밀레이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은 정치권 전반에 충격 그 자체였다.



이 '깜짝쇼'는 그러나 양 후보 진영 내부의 극렬한 반대와 비난을 초래하면서 즉각적으로 시너지효과를 드러내지는 못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1 야권은 이 선언을 놓고 두 쪽으로 쪼개졌다.
불리치 후보를 내세웠던 '변화를 위해 함께'(JXC) 제1야권은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이 창당한 PRO(공화제안)당, 13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UCR(급진시민연합)당, CC-ARI(시민연대)당이 주를 이룬 중도우파 연합으로 지난 2015년 마크리를 대통령으로 만든 거대 야당연합이다.
하지만 JXC는 불리치의 밀레이 지지 선언 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어 사실상 붕괴했다.
UCR의 지도층은 '아무런 상의나 논의도 없이 마크리와 불리치가 밀레이 지지를 선언했다"면서 "이는 야당 연합에서 탈퇴한다는 뜻'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PRO 당의 예비 대통령 후보였던 오라시오 라레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도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극우 밀레이와 우리가 어떻게 같은 노선을 탈 수 있으며, 공격적인 언행으로 대화 자체를 나눌 수 없는 밀레이 후보를 지지할 수 있겠느냐"고 따졌다.
UCR의 마리아 스토라니 부총재는 "군사정권의 만행을 부정하고 장기 매매를 주장하는 밀레이 후보의 생각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며 "절대 지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CC-ARI의 엘리사 카리오 전 의원은 "불리치는 역사적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밀레이가 소속된 자유전진당도 충격을 받아, 엔트레리오스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3명이 탈당하겠다고 발표해 내홍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탈당을 선언하면서 "우리는 기성 정치인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치, '진정한 변화'를 위해 뭉친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비난하던 야당연합과 뭉칠 수가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와는 반대로 PRO 당 소속 하원의원 30여명이 불리치의 뜻에 따라 밀레이 후보를 지지하는 등 일부에선 '밀레이-불리치 연대'에 힘을 보태며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나섰다.
정치전문가들은 야당 분열의 책임자는 마크리 전 대통령이며, 이미 본선 전부터 밀레이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과 행동으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이다, 결국 손을 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밀레이-불리치 연대'를 접한 유권자들의 반응도 찬반이 엇갈렸다.
특히 본선에서 불리치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심적 갈등이 적지 않아 보였다.
거리에서 만난 훌리오(80)와 마리(77) 부부는 "본선에서는 중도우파 불리치를 지지했는데 지금은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라면서 "경제위기의 책임을 져야 하는 여당 후보도, 극단적인 밀레이 후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어쩌면 기권표를 행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30대인 에밀세도 "불리치를 찍었는데 솔직히 마사나 밀레이나 둘 다 마음에 안든다"면서도 "밀레이는 말하는 것을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마사에게 표를 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밀레이 후보 지지층도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일부는 "우리가 비난하던 카스트(기성 정치인) 중 하나인 마크리 전 대통령과 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했다.
이들은 특히 밀레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마크리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이 실제 권력을 쥐게 돼 밀레이는 꼭두각시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 쪽은 "이렇게 연대하지 않으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으니 정권 창출이라는 목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본선에서 2위를 한 밀레이 후보와 3위 불리치 후보의 단순 합계 득표율은 53%로, 1위인 마사 후보(36.6%)를 압도하는 수치이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차이가 있는 데다가 내부 갈등까지 불러 일으켜 이번 연대가 밀레이 후보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밀레이 후보 측은 마크리-불리치의 지지로 약 15%의 득표율이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결선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밀레이 후보의 선거 총책임자로 마크리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태까지와는 또 다른 대선 전략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집권여당의 마사 후보 측은 불리치 후보가 밀레이 후보를 지지했을 때만해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야권의 분열이 부각되면서 이젠 연대의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승세굳히기에 나섰다.
실제로 밀레이 후보 지지자 가운데 지지를 철회하는 유권자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상점에서 만난 페르난도(38)는 "밀레이를 지지한 이유는 기성 정치인과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었는데 불과 24시간 전까지 맹비난을 퍼붓던 불리치 후보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치안 장관'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연대한다니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밀레이를 지지한 친구 중 5명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제는 그냥 마사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며 열변을 토해냈다.



하지만 일부 유권자들은 여전히 집권여당의 경제위기 책임론을 내세우며 마사 후보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출하기도 했다.
도심에서 만난 아나(50)와 하비에르(37)는 이구동성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페론당 후보에겐 절대 표를 줄 수 없다"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부정부패 요트게이트 사태를 보고도 페론당을 선택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밀레이 후보가 마음에 안들어도 무조건 밀레이에게 표를 줘서 페론당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본선에서 마사 후보에게 표를 줬던 유권자들은 큰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청소년 정신건강 전문의인 레오넬(47)은 "대선 후보 중 마사가 가장 적합한 것 같아서 그를 지지했다"고 했으며, 두 딸과 같이 이동 중이던 가브리엘라(50)도 마사를 지지한다고 했다.
빌마(20)와 루이사(17)도 마사를 지지한다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밀레이는 너무 극단적이고 그가 가진 극우적 생각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다양한 반응과는 달리 본선 이후 급격하게 하락한 다양한 달러 환율을 근거로 경제전문가들은 이미 시장은 마사 후보를 선택했다고 보고 있다.
이제 결선투표까지 남은 기간은 3주.
'밀레이-불리치 연대'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극우 돌풍을 이어갈지, '정치 막장 드라마'로 각인돼 자멸을 초래할지 혹은 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여당 후보가 패배할지, 이를 극복하고 여당 후보가 승리할 지 아르헨티나 민심의 선택이 주목된다.


sunniek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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