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국 60년] 미중 분쟁·공급망 재편·보호무역 '위기', 수출로 넘는다

입력 2023-12-03 09:01  

[수출입국 60년] 미중 분쟁·공급망 재편·보호무역 '위기', 수출로 넘는다
탄소섬유·AI칩 등 신수종 발굴, 신시장 개척으로 대응…"반발 앞선 슈팅"
FTA 넘어 경제동반자협정 등 다양한 형태 '통상·경제협력 네트워크' 구축
최대수출국 중국과 무역, 31년만에 적자 전망…"새로운 관계 정립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팬데믹 이후 자유무역 질서로 불리는 'WTO(세계무역기구) 룰'이 무너지고 '각자도생'이 새로운 무역 원칙처럼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선 이런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합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세계 무역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WTO 설립으로 상징되는 자유무역 질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미중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으로 자유무역 질서가 위협받는 모습이다.
지난 60년 동안 각종 경제 위기를 수출의 힘으로 돌파해 온 한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 '자유무역→보호무역' 판 바뀌어…"통상정책 변화 대응 중요한 과제"
분단에 이은 전쟁으로 1950년대 세계 최빈국으로 분류되던 한국은 1960∼1970년대 수출 주도형 경제 정책과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의 성공으로 1990년대까지 산업 기반을 탄탄히 다지며 성장했다.
특히 1990년대 탈냉전 이후 세계적으로 불어온 자유무역 바람을 타고 한국은 2003년 칠레를 시작으로 주요 무역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잇달아 맺으며 수출 시장을 넓혀갔다.
내세울 만한 자원 하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수출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자유무역주의 모범생'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수출 규모는 지난해 6천311억달러로 커졌다. 1964년 처음으로 1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은 1∼2시간마다 1억달러의 수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수출 품목도 1960년대 철광석, 섬유·의류, 합판 등 제품에서 지금은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 기기 등 첨단 제품으로 다변화했다.



조재한 산업연구원 산업혁신정책실장은 "한국의 성장을 이끈 수출은 단순히 물량이 많았기 때문이라기보다 항상 국가 발전단계보다 높은 수준의 수출 경쟁력을 갖추고 이런 제품을 수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근 주요 기업·연구기관에서는 수출 환경을 두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사실상 비상시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흔들리는 WTO 체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중국의 핵심 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 등 팬데믹 이후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유행하면서 무역 환경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의 IRA 법은 한국 수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품목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해 대응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의 통상외교정책과 산업정책과 관련된 문제여서 적기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EU의 CBAM이나 중국의 수출 통제도 마찬가지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은 경쟁국인 중국뿐 아니라 우방인 EU와 일본에 대해서도 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다"며 "이에 영향을 받아 EU와 일본,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도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있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조상현 원장은 "이제 급변하는 주요 경제권과 각국의 정책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 신시장 개척·신수종 발굴 '중요'…최대수출국 '중국' 관계 재정립 필요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WTO 체제가 흔들리고 있지만, 자유무역 기조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기 때문에 양자주의를 기반으로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부 역시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를 중심으로 신흥국과 자원부국을 대상으로 FTA를 넘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경제동반자협정(EPA),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등 새로운 틀을 통한 경제 협력을 꾀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1월 아랍에미리트(UAE)를 시작으로 헝가리, 바레인, 폴란드, 핀란드, 에티오피아 등과 TIPF를 체결했고,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인 탄자니아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요충지에 있는 조지아 등과는 EPA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관세 등 민감한 문제를 풀기 위해 협상력을 소진하기보다 합의가 가능한 분야를 모아 실질적 협력 관계의 토대를 놓으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수출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는 것은 고부가가치 상품으로의 전환 시기를 놓치고, 신수종(新樹種) 품목을 발굴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가령 사양산업으로 불리는 섬유산업에서도 탄소섬유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이 있는데, 이런 제품을 발굴해 건강한 수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상현 원장은 "제3의 품목을 찾기보다 반도체 내에서의 '인공지능(AI)용 칩' 개발, 복제약 생산에서 신약 개발로의 진전 , 이차전지 기술 진보 등 기존 산업에서 계속 연구개발(R&D)을 통해 신수종을 발굴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며 "이미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서 축구로 치면 반발 앞선 슈팅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존 교역에 기반한 수출의 개념을 서비스, 콘텐츠 등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디지털 전환(DX)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2021년 CJ ENM, SM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기업과 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과 스타트업 등을 회장단으로 영입하고 이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 정책을 정부에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003년부터 20년간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의 무역 관계도 재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간 연평균 456억달러의 흑자를 내 전체 무역수지 흑자(연평균 541억달러)의 85%를 중국으로부터 얻었는데, 올해는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무역수지 적자가 확실시된다.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데, 2010년대 들어 중국의 기술력이 증대되면서 중간재의 자체 조달 비중이 높아졌다. 이는 곧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의 급감으로 이어여졌다. 글로벌 중간재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김태황 교수는 "한국 경제의 성장은 FTA 효과와 함께 중국 수출 증대의 덕이 컸는데, 중국에 대한 의존도 '헤징'을 너무 못해왔다"며 "무역 구조의 변화로 이제 우리가 중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우리 무역 패턴을 변화시키는 등 중국에 대한 전략을 새로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등 주요국이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자국 복귀) 정책을 펴는 상황에서 한국도 적극적인 기업 지원 정책으로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dk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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