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워싱턴에서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입력 2023-12-24 07:07   수정 2023-12-24 08:33

[특파원 시선] 워싱턴에서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인간이라는 동물은 안 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기를 바란다니까."
필자는 이달 초 한국내 '누적 관객 400만 돌파' 소식이 들릴 즈음 워싱턴D.C. 인근 개봉관에서 미국으로 수출된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전두광'의 이 대사였다.
황정민 배우가 '진저리나는 연기력'으로 토해낸 저 대사에 '아니다'며 항거한 많은 선배가 있었기에 한국이 군정을 종식하고 민주화를 이뤄낸 것은 팩트다.
그럼에도 '신군부가 수년간이나마 한국 사회를 납치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총칼과 곤봉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전두광의 대사와 오버랩되면서 그날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동시에 필자는 지금 몸담고 있는 이곳, 미국을 흔들고 있는 '트럼프 현상'을 떠올렸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을 리드할 '강력한 누군가'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싶어서다.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를 부채질하고, "취임 첫날만 독재자가 되고 싶다"거나 '이민자에 의한 혈통 오염' 주장 등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에서 2024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가 시작된 지 석 달 가까이 경과한 지금껏 본예산안 처리를 못하고 있는 무능과 분열의 정치, 이달 시애틀 소재 한 고교 시험에서 '여성만 임신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것이 오답으로 처리된 일이 말해주는 'PC(정치적 올바름) 주의' 심화에 대한 반작용 등 전문가들은 트럼프 현상의 배경을 다양하게 분석한다.
하나 분명한 것은 많은 지지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어떤 수를 쓰든 내가 바라는 일을 해낼 수 있는 강력한 리더'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세계가 옹호하는 민주주의는 때로는 가장 불편한 제도이지만 권력을 견제하는 법과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불완전한 통치자의 폭주를 그나마 가장 강하게 견제할 수 있는 제도라고 배웠다.
하지만 '4건의 형사기소를 당한 그가 법을 어겼는가', '미국을 지탱해온 헌법과 제도를 철저히 지킬 의지가 있는가' 등은 많은 트럼프 지지자에게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질문인 듯싶다.
내년 대선 결과를 예측하긴 아직 너무 이르지만, 작금의 미국 사회를 보며 '민주주의 제도'가 '민주적 지도자'를 자동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긴다.
그렇다면 '전두광'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역사 속에 박제된 인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영화 '서울의 봄'이 필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권력을 견제하는 법·시스템뿐 아니라, 전두광의 대사에 '아니오'라고 외치며 권력과 '쿨'한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시민의식, 공정한 언론 등이 두루 제대로 작동해야만 '미래의 전두광' 앞에 그나마 가장 견실한 '바리케이드'를 칠 수 있음을 되새겼다는 것으로 '서울의 봄' 관람기를 맺는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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