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대선 앞두고 국경 걸어 잠그는 '이민자의 나라'

입력 2024-01-28 07:00  

[특파원시선] 대선 앞두고 국경 걸어 잠그는 '이민자의 나라'
트럼프, 이주민 혐오 부추기며 쟁점화…바이든도 여론에 '굴복'
한국의 이민 확대, 美 갈등 반면교사 삼아 충분히 준비해야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올해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멕시코와 맞닿은 남부 국경을 넘어오는 불법 입국자에 관한 이른바 '국경'(border) 문제다.
이는 미국 사회의 해묵은 논쟁이지만 최근 몇 년 중남미의 경기 침체와 기후 위기, 정치 혼란과 조직범죄가 심해지면서 미국으로 탈출하려는 이주민 행렬이 급증했다.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작년 12월에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 국경순찰대에 체포된 건이 24만9천785건인데 이는 월 단위 역대 최대다.
이렇게 체포된 이주민 다수는 정치·종교적 박해 등을 이유로 망명을 신청하며, 망명 심사를 하는 동안에는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수용시설이 부족해 일단 이주민들을 풀어주는데 이민법원도 포화 상태라 망명 심사에만 수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그동안 주로 텍사스주와 애리조나주 등 국경 지역에 국한된 문제였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공화당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국경 정책에 반발하는 차원에서 이주민들을 버스에 태워 북부의 민주당 지지 성향 도시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이는 뉴욕과 시카고, 워싱턴DC 등 국경과 먼 곳에 사는 미국인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런 가운데 극우 보수 정치인 등이 경제·사회 문제 책임을 이민자에게 전가하고, 백인이 미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이민자에게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장하면서 불법 입국자뿐 아니라 이민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산하는 형국이다.
유색 인종 이민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백인을 밀어내고 주류가 되려고 한다는 '대(大)교체론'(Great Replacement Theory)은 원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음모론에 불과했지만, 점점 더 많은 미국인이 동조하고 있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의 2022년 5월 설문에서 조사 대상의 약 3분의 1(32%)이 미국에서 태어난 국민을 이민자로 대체해 선거에서 이익을 얻으려 하는 집단이 있다는 데 동의했을 정도다.



그 누구보다 백인의 이런 두려움을 잘 활용하고 부추기는 사람은 공화당의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그는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이민자들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국경 개방' 때문에 수많은 범죄자와 테러리스트가 매일 미국을 "침공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공화당의 이런 공격이 꽤 먹히면서 국경 문제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평가가 많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불법 입국은 막되 이주민들이 합법적으로 망명할 수 있는 길은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여론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면서 공화당이 요구하는 더 강경한 국경 정책을 일부 수용할 태세다.
급기야 바이든 대통령이 이주민이 너무 많이 몰려들면 국경을 폐쇄하겠다는 선언까지 하는 등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앞다퉈 국경을 걸어 잠그려는 모습이다.
이민 문제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갈등이 현재 한국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논의되는 이민 확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이 미국만큼 심각한 불법 입국 문제를 겪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이민자가 늘어날수록 미국과 같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다양성을 국가 정체성으로 여겨온 미국에서조차 반목이 심한데 한국처럼 동질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여러 민족과 인종의 이민자를 수용하려면 대대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단순히 이민으로 노동력이 늘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미국에서도 합·불법 문제를 떠나 경제적으로 보면 이민자가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많지만, 경제 논리만으로는 이민에 대한 반감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이민의 장단점을 충분히 논의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을 돕고 외국인 혐오와 차별을 막는 법과 제도, 교육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blueke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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