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아바나에 휘날리는 태극기…외교도 결국 경제다

입력 2024-02-20 11:48  

[논&설] 아바나에 휘날리는 태극기…외교도 결국 경제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논설위원 = 54년 만에 성조기가 쿠바 수도 아바나에 다시 내걸렸던 2015년 8월 14일(현지시간). "비바 쿠바" "유 에스 에이" 기쁨과 환희의 탄성이 말레콘 방파제를 넘어 카리브해로 울려 퍼졌다. 반세기 넘는 금수조치가 풀리면서 경제난에 신음하던 쿠바 사회 전체가 희망으로 충전된 듯했다.그때 지한파인 쿠바 호세마르티 문화원의 고위인사는 미·쿠바 국교정상화를 취재 중인 연합뉴스 특파원에게 "시기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바나에 태극기가 꽂히고 서울에 쿠바 국기가 꽂힐 그날이 빨리 올 것 같다"고 했다. 북한을 의식한 듯 조심스러운 어조였지만 논지는 분명했다.이미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로 수교의 토대가 축적돼있어 "최고지도자 간 합의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였다. 반미 구호가 사라지고 이념은 뚜렷이 옅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문호를 열 것 같았던 바닥 분위기와는 달리 쿠바와 북한의 '형제 동맹'은 질겼고, 북한의 방해 공작 역시 심했다. 쿠바 정치에 정통한 인사 대부분은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던) 라울 카스트로가 있는 한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 간부나 공무원들에게는 한국과의 수교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금언령과 함께 문책설까지 나돌았다. 기대를 품었던 한·쿠바 수교 이슈는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많은 것이 바뀌었다.문화원 고위인사의 예언은 결국 현실화됐다. 한국과 쿠바가 지난 14일 미국 뉴욕에서 공식 수교를 깜짝 선언한 것이다. 2000년 김대중 정부가 직접 수교를 제안한 이후 24년 만의 숙원을 풀면서 사회주의권 연대를 강화해나가던 북한에 정치적·심리적 타격을 안겼다. 그토록 북한을 의식하던 쿠바에는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장 도드라진 정치적 지배구조의 변화는 카스트로 체제가 퇴장하고 혁명 이후 세대 지도자인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집권한 것이었다.혁명 1세대 간의 끈끈한 동지 의식은 희석됐을 법하다.그러나 여전히 실질적 권력은 라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과 군부가 잡고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과 쿠바 간 교류와 협력도 면면히 이어져왔지만 수치상으로는 2017년을 정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K팝을 위시한 한류 콘텐츠의 인기로 한국 호감도가 급상승했지만 수교를 이끈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쿠바가 한국의 손을 덥석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시 강화된 미국의 제재 속에서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경제난이었다. 

올드모빌과 시가, 럼, 모히토 칵테일, 살사춤, 헤밍웨이. 낭만과 매력을 품은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는 쿠바이지만 경제 상황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오바마 행정부 때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로 물꼬가 트이는 듯하던 경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다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플로리다주 쿠바 이민 사회를 의식한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를 무기로 다시 쿠바의 숨통을 조였고 바이든 행정부도 큰 틀에서 이를 유지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관광업을 주요 외화취득원으로 삼아온 쿠바에 결정타가 됐다. 2020년 마이너스 10.9%로 최악의 역성장을 기록한 쿠바의 경제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물가상승률은 2021년 152%, 2022년 76.1%, 2023년 62.3%로 여전히 천정부지다.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부족, 외환보유고 부족의 3중고 속에서 민심이 폭발 직전으로 치닫던 끝에 2021년 7월에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터졌다. 식량과 연료가 부족해지자 미국으로 향하는 불법이민자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버팀목이던 러시아와 인근 우방인 베네수엘라의 지원마저 끊겼다. 임기응변식 개혁조차 효과를 보지 못하며 코너에 몰린 디아스카넬 정권으로서는 형제국인 북한에 비해 월등한 경제적 우위를 보이며 적극 수교 의사를 타진해온 남한이 눈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해온 방식대로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북한과는 정치, 남한과는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실용 노선을 모색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연초부터 '두 국가 체제'를 선언한 것이 오히려 남북한 동시수교 카드를 검토하던 쿠바에 부담감을 덜어준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1992년 7월 묘향산 별장에서 중국 첸치천 특사로부터 한중 수교를 통보받은 북한 김일성 주석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이때 "우리는 자주 노선을 걷겠다"고 언급한 것이 독자 핵 개발의 시발점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한중 수교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형제국 쿠바의 변심이 김정은 정권에 분명 충격일 것이다. 2002년 북일 수교 추진 당시 고이즈미 정권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끼는 북한이 최근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시사하는 듯한 움직임을 다시 보이는 것이 외교적 맞대응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지금 북한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난 탓일 가능성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수교를 조건으로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전쟁배상금을 받고 올해 말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미국과의 재담판을 통해 일거에 경제난에 숨통을 틔우고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 신냉전의 구도 속에서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외교의 공간이 열릴 가능성에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외교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rh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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