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 치솟은 K 콘텐츠 제작비…'버블' 폭발 경고등?

입력 2024-03-17 07:00  

천정부지 치솟은 K 콘텐츠 제작비…'버블' 폭발 경고등?
배우들 치솟는 호가와 후발 플랫폼 치고 빠지기에 제작비 '눈덩이'
"전반적 퀄리티는 저하…재조정기에 심층분석 이뤄져야 한류 지속"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 배우 A씨의 지상파 출연료는 16회에 16억원, 회당 1억원이었다. 그러다 주가가 오른 A씨는 넷플릭스에서 '콜'을 받았다. 8회짜리 오리지널 시리즈를 총 16억원에 계약했다. 회당 몸값은 2억원으로 급등한 셈인데, 8회라도 16회짜리를 소화할 때와 비슷한 기간이 걸린다는 게 이유였다. A씨는 뒤이어 한 종합편성채널과 계약하면서 "넷플릭스로부터 회당 2억원을 받은 몸이니 좀 더 줘야겠다"고 주장했다. 화제성 높은 A씨를 잡아야만 했던 방송사는 그에게 회당 2억5천만원, 16회에 총 40억원을 줬다. 곧바로 A씨는 한국 시장 진입을 준비하던 글로벌 플랫폼과 연결됐고, 이 회사는 회당 3억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해당 회사는 이후 수익성을 이유로 국내 시장 진입을 철회했다. 하지만 A씨 출연료는 시장에서 3억원으로 고지된 것이나 다름없고, 이제 다들 그 기준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됐다.



K 콘텐츠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으나 콘텐츠를 생산하는 국내 기지에서는 신음이 커지고 있다. 조만간 '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경고등이 뜬 지 오래다.
배우 출연료가 이렇게 오르기 시작한 것의 신호탄은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과거 CJ ENM과 JTBC가 지상파와 경쟁을 위해 드라마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한 차례 출연료를 상승시켜 놨다면, 2016년 이후에는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서 작품을 직접 제작하며 적극적인 투자를 집행했기 때문이다.
국내 콘텐츠 업계는 위기다.
지난달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사와 제작사 모두 외주제작 환경이 불리해졌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 콘텐츠가 최대 호황을 누렸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늘어나는 제작비와 배우 출연료로 인해 제작 환경과 기존 방송사의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해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수는 125편으로 2022년 대비 7.4% 감소했다.
이처럼 K 콘텐츠 업황이 악화하면서 모든 것은 넷플릭스 때문이라는 업계의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단순히 넷플릭스 책임론만 언급하는 것은 버블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해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내 주요 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17일 "배우와 매니지먼트사들의 무턱대고 부르는 출연료, 그것을 무조건 수용한 채널들, 특히 후발 플랫폼들의 '치고 빠지기'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쳐 버블 위기를 불렀다고 봐야 한다"며 "중국 자본을 낀 벤처 캐피탈 제작사들의 투자 방식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방송사와 OTT 공동 투자도 늘어난 가운데, 방송사는 국내 방영권만 사서 편성한 후 광고비를 챙기면 되기 때문에 높아진 출연료도 크게 부담할 일이 없어졌다.
이처럼 책임감 있는 분석과 창작 의도 없이, 배우의 스타 파워에만 기댄 K 콘텐츠가 '투자 상품'처럼 양산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 업계 한 관계자는 "필드에서는 작품의 질에 대한 고민이 최근 굉장히 많다.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나 홍콩 영화 업계가 겪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 벌어질까 하는 우려도 있다"며 "K 콘텐츠가 성장한 것은 맞으나 일부 타이틀이 큰 성과를 보인 것이고 여전히 장르 다양성은 부족한 상태에서 단가가 너무 오른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과도한 출연료를 제외하고 제작비 상승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과거에는 파트너사를 턴키 계약 방식 아래 '쪽대본'을 주며 주는 것 이상으로 쥐어짜는 구조였다면 최근에는 더빙, 특수효과(VFX), 후반작업 등이 많이 소요되는 작품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역할을 한 게 제작비 상승이기도 하다.
주요 VFX 업체인 웨스트월드의 손승현 대표는 "넷플릭스 등이 사전제작 시스템 도입을 주도하면서 준비 기간이 배로 길어졌고, 그렇다 보니 작업량을 미리 정교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됐다"며 "최근에는 국내 플랫폼들도 '콘티'를 그리기 시작했다. 설계를 잘해놓으면 변동이 생겨도 예산 내에서 최대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긍정적 변화를 통해 한국 콘텐츠 시장의 규모는 성장하고 있다. 국내 콘텐츠 매출은 2021년 137조 5천80억원에서 2022년 148조 1천607억원으로 늘었고 수출액 또한 2022년 기준 133억 798만 달러를 달성했다.
다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류가 일장춘몽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장 전반에 있어 냉철한 원인 분석과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지금과 같은 재조정기에 '넷플릭스 책임론' 이상의 분석이 시급하며, 이는 정부 개입보다도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lis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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