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대전환] ① 미중갈등·트럼프 리스크에 中과잉생산까지

입력 2024-05-19 06:01  

[통상 대전환] ① 미중갈등·트럼프 리스크에 中과잉생산까지
탈냉전 국제분업 허물어져…EU '탈탄소 무역장벽'·RE100 압력까지 '통상 지뢰밭'
미국의 中견제 강화 '상수'…美주도 공급망 안착·中 관리·탈탄소 가속 과제
美 대중 반도체 견제로 '中추격 약화' 반사이익도…변화 속 위기·기회 공존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김동규 이슬기 기자 = 아이폰은 미국 기업 애플이 디자인하지만 애플이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대부분 아이폰의 '고향'은 중국 정저우다.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업체인 대만 폭스콘이 30여만명에 달하는 중국 현지 근로자들을 고용해 아이폰을 생산해낸다.
아이폰에는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삼성전자 D램, LG이노텍의 카메라 모듈을 비롯한 많은 한국산 부품이 들어간다.
미국 기업의 기술, 한국의 첨단 중간재, 중국의 제조력이 결합해 제조되는 아이폰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30년간 '경제 논리'를 바탕으로 작동하던 국제 분업 체계를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다.



하지만 미중 신냉전 이후 인도산 아이폰이 늘어났다. 지정학적 위험을 낮추려고 애플이 인도산 비중을 높이고 있어서다. 최근 인도산 아이폰 비중은 약 14%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아이패드와 에어팟 등 다른 제품의 생산도 베트남 등 동남아로 이전 중이다. 애플의 탈(脫)중국 행보는 냉전 후 30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하던 국제 분업 체제가 형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미중 '2차 무역전쟁' 막 올라…트럼프 복귀 땐 '지각 변동'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14일 무역법 301조를 동원해 중국산 전기차, 전기차용 배터리 등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향해 이른바 '관세 폭탄'을 던진 것으로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간 '2차 무역 전쟁'이 불붙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간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을 근간으로 한 막대한 보조금을 무기 삼아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 전략산업 제조 기반을 자국으로 옮기는 데 주력했다.
대중(對中) 견제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 지형을 좌우할 첨단기술 영역에 국한한 '핀셋 수출 규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매특허와 같던 '관세 폭탄'을 꺼내든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전략이 크게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들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IRA와 반도체과학법에 따른 급속한 공급망 재편에 맞춰 북미 투자를 늘려 나가는 등 숨 가쁜 대응을 이어왔다.



또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정부의 지원 하에 미국에서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로 인정받아 중국 현지 공장에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갈등이 전면적 무역전쟁으로 비화하면서 중국과 미국을 양대 시장으로 둔 한국 기업들은 또다시 큰 불확실성에 노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첨단 분야에서 미중 격차 유지에 주력해온 바이든 대통령이 관세 전쟁에 뛰어든 것은 오는 11월 대선을 겨냥한 측면이 크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바라는 유권자들을 염두에 뒀다고 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12일 보고서에서 "'중국 견제'가 미국 정치의 상수가 됐다"면서 "과거 30년은 비용, 효율 등의 경제 논리에 기반한 공급망 확장 국면이었지만, 미래 30년은 안보, 주권 등 전략 논리에 따른 국제 분업 구조 재편기"라고 규정했다.
미중 대립 심화는 한국에 구조적 불확실성을 더욱 짙게 드리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지각 변동'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방을 가리지 않고 10%의 보편 관세 부과를 주장하는 등 강력한 자국 중심 정책을 공언하고 있다. 또 화석연료 산업 부활을 예고하며 IRA 폐지나 친환경 보조금 대폭 축소를 내세우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미국 전기차 시장에 베팅한 한국 자동차·배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전면적인 사업 재검토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
미국의 민주·공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중국산 제품을 막을 장벽을 쌓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는 것은 글로벌 이슈로 자리매김한 '중국발(發) 공급 과잉'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보다 먼저 중국발 공급 과잉에 따른 부작용을 겪고 있는 유럽연합(EU)은 중국산 전기차, 태양광, 풍력터빈, 의료기기 등을 상대로 반보조금 조사를 진행 중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은 중국과 수출 경합도가 높아지는 한국에도 고민거리다.
코로나19 이후 장기화하는 자국 경기 부진 속에서 중국 기업들은 전기차, 이차전지, 철강, 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싼 제품'을 앞세워 유럽 등 핵심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발 과잉 공급 문제를 국가적 지원이 기저에 깔린 전통적 덤핑 문제로만 치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차전지의 CATL, 전기차의 BYD(비야디)처럼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에 세계적 수준의 제조력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즉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 EU 탄소세 등 높아지는 '환경 무역장벽'…통상환경 대변화의 한축
미중 전략 경쟁이 한국 통상 환경 대변화의 한 축이라면 글로벌 탄소중립 전환이 낳은 도도한 에너지 전환의 흐름도 한국 산업 앞에 놓인 또 하나의 거대한 도전 과제다.
재생에너지 기술이 발달하고 자연조건도 적합한 EU가 먼저 '환경 무역장벽'을 쌓고 있다.
EU가 추진하는 사실상의 '탄소세' 제도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인 준비 기간인 전환기에 들어갔다.
철강, 알루미늄 등 제품을 EU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산출해 EU에 분기별로 보고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규제와 무관한 시장 영역에서도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를 중심으로 한 탄소중립 전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 대표적이다.
RE100은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는 민간 캠페인이다. 세계적으로 428개 기업, 국내에서는 3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BMW, 애플, 구글 등 RE100에 참여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사들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적극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 요구를 맞추지 못하면 향후 사업 기회가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그린전환팀장은 "재생에너지 조달 및 탄소 배출량 관리가 수출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다"며 "수출 기업들은 단계적으로 가장 유리한 재생에너지 전략을 수립해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 차원에서는 체계적 탄소중립 전환 계획을 수립·집행하고, 국가 차원에서는 기업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한국은 현재 10%에 채 못 미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1.6%, 2036년 30.6%까지 단계적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이처럼 미중 신냉전 격화와 공급망 재편, 세계적 환경 규제 강화 등에 이르기까지 통상 환경의 대변화가 한국에 큰 도전으로 다가온다.

◇ 통상환경 변화, 위기이자 기회…"신통상전략 수립 절실"
여기에는 '기회'도 동반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가령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로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의 추격 속도를 상당 부분 늦출 수 있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가 미국의 표적 제재로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완전히 퇴출당해 스마트폰 사업에서 '삼성전자 추월'을 목전에 두고 주저앉은 사례도 있다.
냉전 종식 후 30년의 '자유무역 시대'가 저물고 새 통상 시대의 문턱에서 한국이 정부 통상 조직 확대를 포함해 대대적으로 신(新)통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허윤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장(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규범 위주에서 힘 위주로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고, 변화는 향후 3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며 "핵심 공급망 안정화, 첨단기술 보호, 미래 첨단기술 육성이 필수적으로 산·관·학이 똘똘 뭉쳐 글로벌 거대 파고를 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중 간 대립 속에서 제1의 교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안정적인 관계에도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허 교수는 "정부가 한미,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이것이 대중 관계에서도 큰 레버리지(지렛대)로 작동하고 있지만 전략적 선명성에 매몰되면 안 된다"며 "중국은 지향하는 가치가 다를지라도 이웃 국가이자 거대 소비 시장이어서 상당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cha@yna.co.kr
dkkim@yna.co.kr
wis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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