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대출 규제로 이주비 6억 한도 제한, 2주택 이상은 대출 배제
관리처분인가 앞둔 단지 "곧 이사해야 하는데" 기습 규제에 혼란
2주택, '1+1' 조합원은 중도금도 막혀…"공급 확대와 엇박자 정책" 비판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서울 강남의 A재건축 조합은 이번 6·27 대출 규제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곧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지면 조만간 이주 준비에 착수해야 하는데 갑작스러운 대출 규제로 이주비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아예 대출을 못받는 조합원도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합 관계자는 "이주비 대출이 6억원으로 줄어들고 2주택 이상자는 이주비는 물론 중도금 대출도 못받게 생겼다"며 "아예 재건축 사업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례없는 초고강도 대출 규제가 주택 시장은 물론, 정비사업까지 강타했다.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도심 주택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새 정부 정책과 맞지 않는 '엇박자' 정책이라는 원성이 나온다.

◇ "이주비 대출 1억∼4억원 줄어"…다주택자는 한 푼도 못 받아
총 930여명에 달하는 서울 송파구 가락 삼익맨숀 재건축 조합원들은 지난달 19일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면서 큰 고비를 넘겼다고 안도했다.
조합원의 권리가액과 분양계획, 추가분담금 등이 확정되는 관리처분인가가 나면 곧바로 이주, 철거가 시작돼 재건축 사업의 '8부 능선'을 넘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조합측은 올해 9∼10월께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지면 곧바로 금융기관에 이주비 대출을 신청하고, 내년 3월부터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6·27 대출 규제로 날벼락을 맞았다.
이주비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감소하는 것은 물론 2주택 이상 조합원은 일부 처분 조건부를 제외하고 아예 이주비 대출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가락 삼익맨션 조합에 따르면 이번 6억 대출 한도로 인해 조합원 930여명의 기본 이주비가 가구당 1억4천만원부터 최대 3억7천만원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기본 이주비로 7억4천만∼9억7천만원이 나와야 하는데 6억원 한도로 인해 그만큼 기본 대출이 감소하는 것이다.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은 더욱더 큰일이다.
지금까지는 규제지역에서 2주택 이상이어도 LTV 30%까지는 대출이 가능했는데 이번 대책으로 2주택 이상자는 이주비 대출을 아예 받지 못한다.
다른 보유 주택을 준공 후 6개월 내 팔 수 있는 처분 조건부 1주택자에게만 이주비 대출이 나온다.
조합이 추산하는 2주택 이상자는 약 40% 선으로, 930명 중 대략 370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33명은 대형 지분을 나눠 주택 2개를 신청한 '1+1' 분양 조합원이다.
시공사의 자체 신용으로 추가 이주비 대출이 나오지만 LTV가 20%에 불과해 높은 전셋값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조합측의 설명이다.
이보근 가락 삼익맨션 조합장은 "재건축을 하는 동안 강남 3구는커녕 인근 타지역의 구축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 해도 보증금이 최소 10억원 이상은 드는데 6억원으로 이주비 한도를 제한하고, 2주택 이상자는 아예 대출이 막히면 이주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며 "당장 가을부터는 이사 갈 전셋집을 알아보고 계약도 해야 하는데 이런 예측 불허의 기습 대책이 세상에 어딨느냐"고 말했다.
이 조합장은 "사업시행인가 후 4개월 내 조합원 분양을 마쳐야 하고, 1+1 신청 단지도 있는데 갑자기 대출을 안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며 "최소한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단지는 종전 규정을 따르게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관리처분 앞둔 재건축 단지 초비상…"정비사업은 적용 배제" 요구도
정부가 이번 대출 규제로 지난달 27일까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지 못한 단지가 모두 강화된 이주비 대출 규정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서울 시내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이 초비상이다.
특히 이미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현재 관리처분인가를 준비 중이거나 앞둔 단지들은 당장 대출 제약이 현실로 닥치며 혼란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사업시행인가 이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앞둔 단지는 강남구 개포 우성 6·7차, 송파구 잠실 우성 4차 등 52곳, 4만8천여가구에 이른다.
송파구 삼환가락 아파트는 최근 관리처분인가 총회를 마친 뒤 절차를 밟고 있고, 재개발 단지인 용산구 한남2구역은 한국부동산원의 관리처분계획 타당성 조사까지 끝나 당장 이주가 코앞에 닥쳤다.
6·27 대출 규제로 피해가 커진 곳은 재개발보다는 자산 평가액이 높은 서울의 대규모 재건축 단지들이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조합원 종전가치 평가액이 20억∼30억원이 넘고, 주택담보대출로 나오는 기본 이주비만 15억∼20억원에 달하는 곳이 적지 않다.
강남구 압구정 재건축 단지들은 종전 가치 평가액이 40억∼50억원선, 예상되는 기본 이주비만 20억∼25억원으로 추산된다.
기본 이주비 외에 시공사와의 계약 내용에 따라 건설사 신용으로 조달하는 추가 이주비를 받을 수 있지만 6억원 한도 제한이 없는 대신 금리가 2배 이상이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1금융권의 집단대출 이자가 3% 중후반인데 시공사가 조달하는 이자는 통상 6∼8%로 2배에 가깝다"며 "이 때문에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시공사 추가 이주비 대출은 받지 않는 경우도 많았는데 기본 이주비가 6억원으로 제한되면서 '비싼 이주비'라도 받으면 다행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주비 대출뿐만 아니라 공사가 진행되면서 납부해야 하는 중도금 대출도 문제다.
중도금 대출은 6억원 한도에서 제외되지만 다른 집이 있는 유주택 조합원들은 처분 조건부가 아니면 중도금 대출도 받을 수가 없다.
J&K 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정비사업은 노후 주택을 대상으로 하고, 사업 기간도 10년 이상 장기에 걸쳐 진행되면서 그사이에 전세를 사느니 추가로 다른 주택을 보유한 조합원들이 많다"며 "단지마다 2주택 이상자가 대략 30∼40%는 될 텐데 대출이 축소되면 입주가 힘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비업계는 이번 대책이 공급 확대 정책을 펴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과 반대되는 '엇박자 정책'이라며 대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집값을 잡으려면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촉진해야 하는데 돈줄을 막으면 사업 추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적용을 철회하던지 경과 규정을 지금보다 넓게 둬 피해 조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과도한 추가 이주비 지급 경쟁을 펼쳐온 건설사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삼성물산은 용산구 한남4 재개발 사업에서 조합원 기본 이주비 LTV 50%에 100%를 추가한 LTV 150%(12억원)의 파격 금융조건을 제시해 수주에 성공했다.
한 부동산 신탁회사 관계자는 "이주비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면 대형 건설사의 추가 이주비 경쟁이 지금보다 치열해질 수 있다"며 "다만 종전보다 추가 이주비 조달 규모가 커졌고, 건설사 신용에 따라서는 이자도 높은데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도 있어 종전처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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