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유럽…우크라전·러 위협 대응에 美 존재 필수불가결한 처지
유럽정상들, 공개석상서 트럼프 비판이나 국제법 거론 자제…사석에선 '패닉'
'세력권 인정' 바라는 중·러, 마두로 축출·그린란드 논란서 신중 모드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기습 군사작전으로 축출하는 데 성공한 뒤 그린란드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압박하자 유럽 동맹국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핵심 동맹인 미국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일원인 덴마크의 영토를 노리는 기이한 현실을 마냥 두고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강경하게 대처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어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제기되면서 러시아 견제를 위해 미국의 존재가 더 절실히 필요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처럼 진퇴양난에 처한 유럽의 현실과 관련해 7일(현지시간) 분석 기사에서 "유럽과 나머지 세계가 '제국주의자 트럼프'를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땅에서 러시아를 막아내기 위해 미국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유럽 지도자들이 그린란드, 이란, 베네수엘라 등 여러 문제를 놓고 트럼프를 비판하는 데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NYT의 진단이다.
이런 기류는 지난 6일 프랑스 파리에서 '의지의 연합' 정상회의'가 열린 뒤 나온 유럽 7개국 공동성명에서 드러난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덴마크 등 7개국은 성명에서 그린란드와 덴마크에 연대를 표명하면서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주민들의 것으로, 덴마크와 그린란드 관련 사안을 결정하는 주체는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성명 내용이나 회의 논의 내용 어디에도 미국 정부에 대한 명시적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휴전 이후 안전보장 문제를 집중 논의한 '의지의 연합' 정상회의에선 미국의 지원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미국 측을 설득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할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NYT는 "대부분의 유럽 정상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파괴적인 동맹인 미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공동성명 발표에 그치며 말을 아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정상회담 종료 후 그린란드와 베네수엘라 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받자 회의 내용과 관련이 없는 문제라면서 답변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이후 그는 프랑스 2 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이 덴마크의 주권을 침해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유럽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우리와 함께 계속 나아갈 것임을 알고 있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입장만 내놨다.
그러나 유럽 정상들은 사적인 자리에서나 비공개 회동에서는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성토하거나 불안을 호소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협의회(ECFR)의 마크 레너드 소장은 NYT에 "유럽 지도자들의 공개 반응과 비공개 반응 사이엔 엄청난 간극이 있다"면서 "그들은 사적인 자리에선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패닉상태에 빠져있지만, 공개적으로는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국제법을 거론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종전과 유럽의 안보 문제가 최대 현안인 시점에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이 '제국주의'화하는 듯한 모습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국제문제연구소 나탈리 토치 소장은 "미국의 현 외교정책은 제국주의적이고, 일관되게 그렇다"면서 "단순히 서반구(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제국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제국들도 존재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수용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토치 소장은 트럼프식의 제국주의란 미국의 제국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의 것도 인정하는 논리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의 영향권을 인정해주고 나아가 제국의 맹주들끼리 협력까지 가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식 신(新) 먼로주의인 이른바 '돈로주의'를 표방한 미국이 19세기식 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행동에 나서면서,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각자의 세력권 안에서 더 노골적으로 패권을 추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진단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상당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미국의 마두로 축출 과정에서 별다른 반발 없이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대신 유럽과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세력권을 미국이 인정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카네기 중국 연구소의 통자오 선임연구위원은 WSJ에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강대국들의 세력권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매료돼 있다"고 말했다.
미주 지역 내 미국의 이해관계를 중국이 존중한다면 대만·남중국해 등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중국에 통 큰 양보를 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중국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통 연구원은 설명했다.
미국이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노골적으로 눈독을 들이는 상황 역시 유럽의 분열을 노리는 러시아에는 절호의 호재일 수 있다.
프랑스 출신 라파엘 글뤽스만 유럽의회 의원은 WSJ에 "미국이 그린란드에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논의 자체가 러시아에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면서, 이는 "우리의 대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고 러시아에 알려주는 것으로, 서방의 자멸은 푸틴으로 하여금 행동에 나서도록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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