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적도기니 방문…47년 독재정권 밀착한 트럼프 말없이 비판

입력 2026-04-23 15:58  

교황, 적도기니 방문…47년 독재정권 밀착한 트럼프 말없이 비판
미국 추방자 제3국 수용책 논란 속 교도소 찾아 죄수 면담
"사익보다 공동선 우선"…인권유린·부패 심장부 골라 미사 집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교황 레오 14세가 아프리카 순방의 마지막 목적지 적도기니를 찾아 예수의 가르침을 전했다.
AP 통신 등 외신들은 레오 14세 교황의 적도기니 방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담겼을 수 있다고 주목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22일(현지시간) 인권 유린으로 악명이 높은 적도기니 바타에 있는 교도소를 찾아 재소자들을 면담했다.
방문국에서 죄수들을 만나는 것은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통이었으나 특히 레오 교황의 이날 행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과 맞물려 별도로 시선을 끌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서 불법체류가 적발돼 추방되는 이민자들을 수용하는 대가로 돈을 주는 협정을 적도기니 정권과 체결했다.
아프리카 국가를 이용한 제3국 추방 협정은 미국 안팎에서 광범위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민자를 비인도적 대우를 받을 위험이 큰 곳에 내모는 데다가 난민의 압송을 금지하는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협정을 통해 인권을 유린하고 부정부패에 찌든 정권을 재정적, 정치적으로 지원한다는 도덕성 논란까지 뒤따르고 있다.
적도기니는 1979년부터 47년째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독재국이다.
미국 국무부는 적도기니를 고문, 자의적 구금, 사법부의 독립성 실종 등이 팽배한 비민주주의적 인권 유린국으로 간주한 지 오래다.
레오 14세 교황은 바타 교도소에서 미국의 얘기는 따로 꺼내지 않은 채 재소자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전했다.
교황은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며 "가족들이 당신들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겁이 난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점, 교회가 곁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라"고 덧붙였다.
레오 14세는 수감이 지닌 교화의 본질적 의미를 교정 당국에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감금형은 사람의 존엄과 잠재력을 증진해야 한다"며 "사법의 진정한 기능은 형벌보다는 악 때문에 상처받은 희생자, 범죄자, 공동체의 삶을 재건축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교도소 방문에 앞서 가봉과 접경한 적도기니 동부 도시 몽고모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몽고모는 오비앙 대통령의 고향으로 정부 중앙부처와 같은 기구가 아예 없지만 정부 투자에 따른 기간시설 투자로 혜택을 보는 도시다.
적도기니 인구 과반이 빈곤에 고통받지만 몽고모에는 화려한 고층빌딩, 공원, 골프장이 있고 서부 도시 바타까지 고속도로도 깔려있다.
이날 레오 14세 교황이 집전한 미사에 오비앙 대통령 부부는 부통령인 아들 테오도로 응게마 오비앙 망게와 함께 참례했다.
오비앙 부통령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아프리카 국가의 부패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거명되곤 했다.
그는 2021년 프랑스 법원에서 수백억 유로를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에 벌금 3천만 유로(약 520억원)를 선고받았다.
미국에서도 부패, 돈세탁 등 혐의를 받다가 2014년 3천만 달러(약 450억원) 규모의 자산을 포기하기로 수사당국과 합의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말리부 해안의 저택, 페라리 자동차나 마이클 잭슨의 의상 등 고가의 수집품이 압수돼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적도기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협조하는 대가로 돈세탁 혐의를 받는 오비앙 부통령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했다.
오비앙 부통령은 그 덕분에 작년에 미국 뉴욕시의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하고 미국 내 여러 도시를 방문할 수 있었다.
레오 14세 교황이 집전한 미사에는 10만명 정도가 참석한 것으로 추산됐다.
교황은 미사 중 강론에서 "자유의 공간을 넓히고 인간 존엄이 언제나 보호받는 정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지닌 사회를 건설하자"고 촉구했다.
그는 "사적인 이익보다 공동선에 이바지함으로써 특권을 지닌 이들과 불이익을 당하는 이들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 각자 역할에 따라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ang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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