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0일 미국 국빈방문…의회서 연설
백악관서 트럼프 주최 국빈만찬
민감한 시기에 "보람 없는 임무" 지적도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이란 전쟁으로 미국과 영국 관계가 껄끄러워진 가운데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나흘간의 미국 국빈 방문길에 오른다.
이번 방문은 표면적으론 미국의 영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찰스 3세는 커밀라 왕비와 함께 미국에서 워싱턴DC와 버지니아, 뉴욕을 방문하고 나서 30일 북대서양에 있는 영국령 버뮤다에 들렀다가 영국으로 귀국한다.
오는 28일에는 미국 의회에서 연설이 예정돼 있다. 영국왕의 미 의회 연설은 199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첫 연설 이후 처음이다.
같은 날 찰스 3세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최하는 국빈 만찬에 참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로이터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찰스 3세와 만나 "모든 걸 얘기할 것"이라면서 이란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미국이 반발하는 영국의 디지털서비스세도 논의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오는 29일 뉴욕에서는 2001년 9·11 테러 희생자 추모관을 방문해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과 함께 헌화할 예정이다.

찰스 3세의 방미는 이란 전쟁 등으로 양국 관계가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다. 키어 스타머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이란 공습에 영국군 기지를 제공해 달라는 트럼프 정부의 요청을 거절했고,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도 거절했다.
이후로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머는 처칠이 아니다"라고 하거나 양국 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표시하는 등 비판적인 언행을 이어 왔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미국과 영국간 '특별한' 동맹관계의 상징이다.
스타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설적 비판을 삼가왔지만, 이란 전쟁에 대해서는 "압박이 많지만, 전쟁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고 미국의 나토 탈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며 유럽 전체를 향해서도 강한 불만을 토로해왔다.
이 때문에 찰스 3세의 방미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는 요구도 영국 내에서 제기됐다. 중도 성향의 제2야당 자유민주당 에드 데이비 대표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찰스 3세의 면전에서 영국을 모욕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타머 총리는 "군주제는 양국 간 지속적인 유대 관계를 일깨워주는 것으로, 특정 시기에 특정 직책을 맡고 있는 개인보다 훨씬 큰 존재"라며 국빈 방문을 밀어붙였다.

찰스 3세의 방미가 양국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BBC와 한 인터뷰에서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국빈 방문 발표 이후 찰스 3세에 대해 '내 친구', '멋진 신사', '훌륭한 분'이라는 찬사를 거듭해서 내놨다.
그러나 스타머 총리를 향해서는 이민, 기후 정책에서 노선을 변경하지 않으면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며 기존 견해를 유지했다. 찰스 3세의 국빈 방문과 양국 관계는 별개라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소프트파워의 국왕이 변덕쟁이 트럼프와 만남을 앞두고 보람 없는 임무에 직면했다"고 꼬집었다.
브랜던 보일 미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 매체에 "국왕은 소프트파워를 활용하는 동시에 민감한 문제들에는 조심해야 한다"며 "이런 방문은 흔히 행복하고 축제 분위기로 가득찬 의례적 역할이지만, 이번에는 그와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AP 통신은 찰스 3세가 모친 엘리자베스 2세의 선례를 그대로 따라 양국 관계 강화를 위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91년 미 의회 연설에서 에이브러햄 링컨·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역대 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양국의 연대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두 번째 영국 국빈 방문에서도 보여줬듯이 영국 왕실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아 왔고, 지지율 하락 속에 국내 정치 상황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방미 기간 찰스 3세를 환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 대통령 역사학자인 더글러스 브링클리 라이스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왕실을 대할 때마다 좋은 인상을 주려고 굉장히 노력해온 이력이 있다"며 "이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친인 조지 6세는 1939년 영국왕으로선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는 재임기 미국을 4차례 국빈 방문했다.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 미국을 19차례나 방문했지만, 국왕 즉위 이후론 처음이다.
찰스 3세로서도 '어색한' 순간은 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찰스 3세는 동생 앤드루 마운트배튼 윈저가 미국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한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어 곤혹스러운 처지다. 일부 요구에도 찰스 3세 부부는 이번 방미에 엡스타인 피해자들과 만나지는 않을 예정이다. 왕실 불화 끝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 차남 해리 왕자와도 만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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