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지난 3월23일 독일 북부 티멘도르프 해안 모래벌판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발견됐다. 몸 길이 12.35m, 폭 3.2m에 4∼6살로 추정되는 혹등고래였다. 성체의 절반 크기라지만 몸무게가 12t이나 돼 날렵해 보이는 돌고래보다는 훨씬 거대한 몸집이었다.
처음에는 가끔 바닷가에 좌초하는 고래 정도로 여겼다. 당국은 굴착기로 물길을 내 넓은 바다로 돌아가도록 도왔다. 그러나 며칠 뒤 티멘도르프 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40㎞ 떨어진 비스마어만의 얕은 바다에 또 몸이 걸렸다. 고래가 두번째로 좌초한 지점 인근의 섬 이름이 하필 고래(Walfisch)섬이었다.
사람들이 고래를 본격 응원한 건 이즈음부터다. 처음 발견된 해안 지명을 따라 티미(Timm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좀 더 노골적으로 호프(Hope)라는 별명을 붙였다. 가까이서 응원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사고를 막기 위해 경찰이 투입됐다. 이후 한 달 반 동안 벌어진 소동은 기이할 정도다.
고래는 원래 서식지도 아닌 발트해 좁은 바다에 흘러 들어간 점만으로도 이미 방향감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였다. 기력이 눈에 띄게 쇠해 아침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염분 농도 탓에 피부에 물집이 생겼고 갈매기들이 내려앉아 등을 쪼아댔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환경부는 티미를 살릴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 구조작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환경장관에게 살해 협박이 날아들었다. 돈을 대겠다는 사업가가 나섰고 미국에서 고래 전문가들을 데려왔다. 수의사가 과로로 실신하고 민간 구조팀이 내분에 휩싸인 현장 상황이 신문과 방송에 실시간 중계됐다.
기부금을 받아 챙기려는 소셜미디어 사기꾼, 당국이 고래 사체를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죽음을 유도한다는 음모론, 극우 세력이 구조작업에 참여해 고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의심, 기술강국에서 고래 한 마리 못 구하느냐는 자조, 티미 응원곡과 타투·굿즈. 온갖 소동을 뒤로 하고 티미는 바지선에 실려 북해 넓은 바다로 떠났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이 스카게라크 해협에서 바지선을 빠져나간 티미는 결국 열이틀 뒤 숨이 끊긴 채 발견됐다. 사체가 발견된 덴마크 안홀트섬은 방사된 지점에서 독일 쪽으로 100㎞ 넘게 떨어져 있다. 이번에도 서식지와 반대방향으로 헤엄쳤는지, 이미 죽은 채로 떠내려갔는지는 알 수 없다. 대서양을 향해 제대로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단 위치추적기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소동이 끝나자 '리얼리티쇼 시대의 독일식 낭만주의'라는 그럴듯한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고래 드라마'로 불린 이 신드롬은 포기하고 싶진 않지만 제대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경제며 정치며 총체적 난국에 빠진 독일 상황을 티미에 투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웃 나라의 해석은 더 냉소적이다. 유럽 매체들은 이렇게 논평했다. "독일에서 잘못 돌아가는 모든 것의 상징", "티미를 구하지 못하면 독일도 구할 수 없다", "고래는 독일을 하나로 묶었다가 곧 깊은 균열을 드러냈다. 이 나라가 포퓰리즘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스웨덴 신문 쉬스벤스칸은 "호르무즈 해협은 잊어라. 지금 중요한 건 비스마어만이다"라고 냉소했다.
다른 나라들도 '유럽은 우리가 지키겠다'고 맏형 행세를 하면서 정작 내부에서는 상처가 곪아가는 독일을 티미에게서 본 셈이다. 애초부터 티미가 다시 좌초하더라도 구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사체 처리를 떠맡은 덴마크는 부패 과정에서 사체에 가스가 들어차 곧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살해 협박을 받았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환경장관은 티미가 떠난 바닷가에 기념 동상을 세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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