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신공항 등 기술형 입찰, '물가변동 기준일'에 사업비 조정 불투명
건설업계 "중동전쟁 영향 공사에 한시적 특례 등 필요"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중동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과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건설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대형 국책사업에 적용되는 기술형 입찰이 업계의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기술형 입찰은 건설사가 설계부터 책임지는 경우가 많은 특성상 총사업비가 정해지는 입찰공고부터 공사비 상승분을 조정할 수 있는 기준 시점까지 시차가 커 자칫하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업계는 전쟁이나 천재지변처럼 예측가능성이 매우 낮고 대응이 어려운 물가 변수가 발생한 경우에 한해 사업비 계약금액을 현실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제한적 특례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물가변동 기준일'에 공사비 조정 발목…"사업 지연·좌초 우려도"
9일 업계에 따르면 대형 기술형 입찰은 발주처인 정부 기관이 기본 계획을 수립해 입찰을 공고하면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계부터 시공을 모두 책임지는 턴키(turn key) 방식인 경우가 많다.
턴키 방식 기술형 입찰에서는 발주처 지침을 토대로 건설사 컨소시엄이 전문 설계업체를 참여시키거나 자체 설계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인프라의 구체적인 설계와 공법, 공사비 견적을 도출해야 한다.
이런 대형 국책사업은 사업지의 지반, 지형 등 각종 물리적 여건과 기상 조건 등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현장 조사를 거쳐 기본설계를 완료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과정을 거치면 경쟁 입찰이나 수의계약 형태로 계약이 체결된다.
이처럼 공고부터 실제 입찰까지 과정이 길다 보니 그 사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하지만 상승분을 조정받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국가계약법상 공공공사에서 계약금액 조정에 적용되는 물가변동 기준일은 기술형 경쟁입찰의 경우 입찰일, 수의계약으로 전환되는 경우에는 계약 체결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입찰공고일부터 물가변동 기준일 사이에 공사비가 급등하는 상황이 생겨도 기준일까지 원자재 가격 등 물가 상승분은 민간 건설사가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공고 당시 물가 수준을 100으로 두고 물가변동 기준일까지 물가가 125로, 기준일 이후 150으로 뛰었다면 앞서 오른 25만큼의 물가 상승분은 건설사가 부담하고 이후 25만 조정 대상이 되는 식이다.

이런 위험이 큰 대표 사례가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사업(10조7천176억원 규모)이다.
턴키 방식인 이 사업은 작년 말 입찰공고 이후 대우건설 컨소시엄 단독 응찰로 두 차례 유찰된 뒤 수의계약으로 전환돼 현재 기본설계 단계를 거치고 있다.
현재 절차가 정상적으로 추진되면 올 11월께 우선시공분에 대한 예비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가덕도신공항 공사는 해상 매립과 연약지반 처리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동반하는 사업이어서 유류비와 자재비 비중이 커 물가 상승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구조다.
문제는 입찰공고일(작년 말)과 예비계약일(올 11월) 간 1년 가까운 시차가 있고, 그 사이인 올 2월28일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초대형 돌발변수가 발생해 공사비 급등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매달 공표하는 건설공사비지수 중 토목건설공사비지수는 중동전쟁 직전인 2월 137.88에서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138.78에 이어 4월 142.04로 상승했다.
4월 건설자재 세부 품목별 가격 변동률을 보면 아스팔트가 전월 대비 42.4% 오른 것을 비롯해 폴리프로필렌 수지(32%), 아스콘(28.8%), 페놀수지(27.8%), 폴리염화비닐(PVC) 수지(18.7%) 등 석유화학제품을 원료로 만드는 제품 가격이 큰폭으로 상승했다.
중동전쟁발 물가 상승이 지금 추세대로 지속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하면 예비계약이 올 11월 체결되더라도 그전까지 공사비 상승분에 대한 컨소시엄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전쟁 발발 이전 공고된 대형 기술형 입찰 국책사업들은 모두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을 비롯해 가덕도신공항 접근도로(5천899억원), 계양-강화고속도로 2공구(4천328억원), 남부내륙철도 1·7·9·10공구(총 2조1천947억원) 등 25조원을 넘는 규모의 전국 공공사업들이 전쟁에 따른 공사비 상승 압박에 직면했다.
대형 국책사업은 지역 중소 협력업체도 하도급으로 다수 참여하므로 원청사가 계약금액을 조정받지 못하면 하도급 비용도 보전받을 수 없어 경영 악화로 사업에서 이탈할 우려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갈등이 심화하면 컨소시엄 참여사들의 중도 이탈이나 협력사들의 공사 포기 등으로 이어져 사업이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좌초할 수도 있다"며 "가덕도신공항 사업도 2035년 개항이라는 목표 자체가 공사비 문제로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기준일 전에도 사업비 조정 '중동전쟁 특례' 등 도입해야"
건설업계는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대외 변수에 따른 국책사업 공사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한적 수준에서 특례를 제공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동전쟁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공사에 대해 기준일 이전 단계에서도 총사업비 자율조정을 허용하는 한시적 특례를 국토교통부 훈령 등으로 제정하는 것이 한 방안이다.
전쟁, 천재지변 등 각종 불가항력 사유로 물가변동분의 공사비 반영이 필요한 경우 물가변동 기준일을 입찰일이나 계약일이 아닌 입찰공고일로 설정하는 제도 개선도 제안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사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 건설사는 자재비와 인건비를 줄이고, 이는 시공 풀질 저하와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물가변동 제도의 사각지대는 시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안전과 대형 국책사업의 완성도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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