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 냉방 건물로 피신…지하철역 통풍구 위에도 '옹기종기'
폭염에 익사 사고 잇따라…차 안에서 2·4세 숨진 채 발견
영국·스페인 등도 폭염과 사투…폭염, 당분간 이어질 듯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사하라 사막에 서 있는 게 이런 기분일까'
프랑스 본토 96개 데파르트망(광역 자치권) 중 49곳에 최고 수준인 폭염 적색경보가 내려진 22일(현지시간) 오후 파리 도심. 섭씨 38도에 달하는 폭염에 바람마저 뜨거워 입에서 연신 "앗 뜨거워"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햇빛을 가리려 챙 넓은 모자까지 챙겨 쓰고 나섰지만 밖에 나온 지 5분도 안 돼 목덜미와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폭염 속 샹젤리제 거리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큰마음 먹고 온 여행이니 폭염이라고 숙소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냉방 시설이 돼 있는 매장을 수시로 들어갔다 나오며 폭염에 대처하고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피신처가 됐다.
매장 통로를 타고 흘러나오는 찬 공기를 따라 홀린 듯 백화점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한국인 신혼부부를 마주쳤다.
전날 파리에 도착했다는 김상현(30)씨 부부는 "날이 더울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 정도까지 더울 줄은 몰랐다"면서 "너무 더워서 중간중간 미술관 등 실내 일정을 챙겨 넣었다. 여기 백화점도 잠깐 더위 식히러 들른 것"이라고 했다. 김씨 부부는 "여기 1층보다 위층이 더 시원하다"는 팁을 알려주고는 우산을 펴들고 자리를 떴다.
거리에 설치된 간이 음수대 주변은 물을 받아 가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길 한복판 나무 그늘에 누워있는 노숙자 옆에선 두 마리 반려견이 바닥에 배를 깐 채 혓바닥을 길게 빼고 숨을 헐떡였다.

더위에 불티나는 건 시원한 슬러시였다.
손님을 줄줄이 맞고 있던 한 가판대 점원은 "날이 이렇게 더우니 슬러시가 평소보다 10배, 아니 그 이상은 팔리는 것 같다"며 "아침 10시부터 시작해 지금 오후 3시인데 거의 다 나갔다. 주문이 많아서 슬러시를 만들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역 통풍구는 폭염에 지친 이들의 또 다른 임시 도피처가 됐다. 한 무리 남성들이 통풍구 위에 모여 있길래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싶어 슬쩍 올라가 보니 퀴퀴한 냄새가 좀 섞인 찬 공기가 다리의 열을 곧바로 식혀줬다.
그렇게 열을 식히고 있던 기자와 눈이 마주친 이스라엘 관광객 3명도 통풍구로 몰려와 함께 바람을 맞았다. 이들은 "이스라엘은 지금 한 26∼27도 정도"라며 파리의 더위에 혀를 내둘렀다.

이날 프랑스의 낮 최고 기온은 일부 지역이 42도까지 치솟는 등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을 기록하고 있다.
폭염에 취약 계층의 안전을 우려해 당국은 이날 초중학교 1천352곳을 휴교했다.
안전 예방 차원에서 이날 파리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열차 10대 중 1대는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폭염에 인명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지난 주말 사이 전국적으로 최소 13명이 물에 빠져 숨졌다고 관계 당국이 밝혔다. 또 남서부 보르도 지역에서는 폭염에 따른 건강 악화로 80∼95세 고령자 3명이 사망했다고 지방 당국이 밝혔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이날 프랑스 남서부의 한 주거지 주차장 내 차량에선 2세와 4세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지방 검찰청은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폭염이 주된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AFP 통신에 밝혔다.
프랑스 기상청은 폭염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고하면서 23일엔 이날보다 더 많은 54개 데파르트망에 적색경보가, 35개 데파르트망엔 주황색 경보가 발령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뿐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영국도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기상청은 오는 24∼25일 남부 일부 지역에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이들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은 38∼40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페인 기상청도 오는 24일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온이 이어질 것이라며 특히 일부 지역에선 기온이 최고 44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고했다.
벨기에 역시 이번 주 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경고하면서 열차 고장으로 인한 교통 체증을 줄이기 위해 철도 운행을 취소하거나 감편했다.
s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