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전례 따라 밸류에이션 수렴 기대…동반 수혜론도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고대역폭메모리(HBM) 세계 1위 SK하이닉스가 나스닥 상장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어나려 한다. 시장 3위인 마이크론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는 현실이 그 출발점이다.
SK하이닉스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 서류를 제출하고 신주 1천779만주를 발행해 290억달러(약 45조4천500억원)를 조달한다고 밝혔다. 7월 10일 나스닥 상장이 목표다.
조달 규모는 알리바바의 2014년 미국 상장(250억달러)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2019년 기업공개(IPO·256억달러)를 모두 뛰어넘는 역대 최대 ADR 규모다.
◇ HBM 1위가 3위보다 싼 이유
역설적 현실이 이번 상장의 배경이다.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약 56%로 마이크론(약 21%)의 두 배를 훌쩍 넘지만 밸류에이션은 오히려 낮다.
다우존스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6.97배인데 마이크론은 9.46배, 샌디스크는 10.47배에 달한다. 삼성전자(6.45배)도 비슷한 처지다.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미국에서 거래되는 주식과 해외에만 상장된 주식 사이의 밸류에이션 격차는 엄연히 존재한다"며 나스닥 상장이 마이크론·샌디스크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산운용사 니콜라스웰스매니지먼트의 데이비드 니콜라스 대표도 SK하이닉스가 더 많은 애널리스트 커버리지와 기관 투자자 유입으로 상장 직후 강한 매수세를 누릴 것으로 전망했다.
로이터 통신은 SK하이닉스가 SEC 제출 서류를 통해 마이크론과 나스닥에서 나란히 거래됨으로써 미국 동종 기업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받을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고 전했다.

◇ TSMC 전례…ADR이 디스카운트 해소하나
시장은 1997년 10월8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ADR를 상장한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의 전례에 주목한다.
TSMC ADR 주가는 상장 이후 공모가 대비 한자릿수 상승률을 보였지만 한달 만에 아시아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아 그해 연말 38% 급락하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TSMC는 이 단기 충격을 견뎌낸 후 파운드리 모델의 효율성이 입증되고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외주가 늘어나면서 1999년 한 해에만 ADR 주가가 285% 폭등하며 오늘날까지 누적 수익률 1만4천626%의 신화를 썼다고 투자정보업체 모틀리풀은 전했다.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미국 기관 투자자 자금이 유입되면서 밸류에이션이 미국 동종 기업 수준으로 수렴한 결과다. TSMC ADR은 미국 시장에서 글로벌 기술 투자 지출 및 산업 사이클의 선행 지표로 여겨지는 부수입을 얻기도 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 경로를 기대하고 있다. ADR 상장이 마이크론을 보유한 펀드들의 즉각적인 매수를 유발해 SK하이닉스 주가의 급격한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TSMC와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TSMC는 경쟁사 없는 독점적 파운드리였지만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마이크론과 직접 경쟁한다.
트레이딩키는 "ADR 상장 이후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 간 밸류에이션 비교가 더 투명해지면서 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수렴할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마이크론엔 위협인가 동반 수혜인가
미 경제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이 마이크론에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편으로는 마이크론·샌디스크로 흘러가던 자금 일부가 SK하이닉스로 이동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교 가능한 동종 기업이 늘어나면서 메모리 산업 자체에 대한 투자자 이해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두 가지 효과가 상쇄될 것"이라며 비교 대상이 많아지는 쪽이 유리하다고 봤다.
잭스인베스트먼트리서치의 앤드루 로코 주식전략가는 SK하이닉스 ADR이 주요 국내 기술·반도체 지수 편입 자격을 갖추게 돼 패시브 ETF들이 대규모 매수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우존스 계열 미국 금융 주간지 배런스도 SK하이닉스의 조달 자금 전액이 팹·장비 증설에 투입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공급 확대→가격 경쟁 심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부문에 대한 투자를 분산하거나 마이크론을 보유한 일부 투자자가 SK하이닉스로 갈아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가의 시각은 대체로 동반 수혜 쪽이다.
월가의 온라인 매체 24/7월스트리트는 "마이크론을 팔 이유가 없다"며 "AI 메모리 부족이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두 종목을 동시에 보유하는 전략이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 낫다"고 조언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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