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부터 원전까지…'폭염에 무방비' 민낯 드러난 유럽 인프라

입력 2026-06-28 19:43  

도로부터 원전까지…'폭염에 무방비' 민낯 드러난 유럽 인프라

도로부터 원전까지…'폭염에 무방비' 민낯 드러난 유럽 인프라
사회지탱 기반시설 한계 고스란히 노출…"유럽, 취약성 자각 중"



(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 열흘 간 남유럽부터 북유럽, 동유럽까지 뜨겁게 달군 6월 폭염에 유럽 인프라의 무방비 상태도 여실히 드러났다.
열기에 못 이겨 도로가 녹아내리고, 선로가 휘며 차량과 열차 운행에 큰 차질이 생기는가 하면 원전이 중단되고, 수십만 명에게 전력이 끊기는 등 찌는 듯한 더위에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 시설의 한계가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례적으로 40도가 넘는 폭염이 덮친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구간에서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열에 팽창한 아스팔트가 갈라지면서 베를린 외곽 2번 고속도로를 비롯해 함부르크 7번 고속도로, 바이에른주 93번 고속도로 등 주요 도로 곳곳에서 차량 통행이 통제되는 바람에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독일을 동서로 연결하는 2번 고속도로는 적어도 28일 오후까지 폐쇄될 예정이라고 dpa통신은 전했다.
독일 당국은 불필요한 이동 자체를 촉구하는 한편 불가피하게 운전해야 할 경우 장시간 교통 통제에 대비해 충분한 식수, 평소 복용 약을 지참하라고 권고했다.
열차 고장과 지연도 속출했다.
벨기에에서는 폭염이 절정에 달한 지난 26일 서유럽 주요 도시를 잇는 유로스타 열차 2대가 전력 공급 문제 등으로 중간에 멈춰 서며 승객 수백명이 불편을 겪었다. 같은 날 저녁에는 런던과 파리를 연결하는 유로스타 열차 여러 대가 취소되기도 했다.


폭염은 선로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선로 전환기, 신호시스템 등도 고온과 직사광선에 장시간 노출되면 손상 가능성이 커져 유럽 철도망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는 냉각수 과열에 원전 가동이 일시 중단되거나 출력을 낮추면서 전력망에도 과부하가 걸렸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7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기는 일도 벌어졌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은 유럽 대부분의 학교도 무더위에 일시 휴교하거나 수업 시간을 조정해야 했다.
영국 전국교사연합(NASUWT)은 일부 지역 교실 온도가 40도까지 오르면서 소속 교사 여러 명이 수업 중 기절했다고 밝혔고, 프랑스 교사 노조는 당국의 폭염 대책 부재를 비판하면서 파업 가능성을 경고했다..
프랑스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도 작업장 내부의 온도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치솟았다며 노조 지도부가 파업을 촉구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NYT는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는 대륙이지만 과거의 기후를 기준으로 설계된 인프라와 건물이 대부분인 까닭에 극심한 폭염은 다른 지역보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데다 겨울철 보온을 위해 단열재를 사용하는 유럽식 건물 구조로 이번과 같은 더위에는 실내가 찜통으로 변모하는 것도 이례적인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오래된 건물이나 공동 주택이 많아 실외기 설치에 제약이 많은 데다, 역사적 외관 보존 규정을 유지하는 지역이 상당해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이 낮다. 에어컨의 전력 소비량이 많고,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대기 온도를 더 상승시킨다는 환경적 우려도 작용했다.
파리 고등상업학교(HEC)의 환경정치학 전문가인 프랑수와 제멘 교수는 NYT에 이번 폭염을 계기로 "모두가 '왜 우리는 준비돼 있지 않은가'를 묻고 있다"며 "유럽은 우리 자신의 취약성을 깨닫고 있는 중"이라고 개탄했다.
폭염에 시달린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유럽은 28일 새벽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내린 뒤 아침 기온이 20도 초반으로 뚝 떨어져 폭염이 잦아들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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