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 입은 이란 시민들 테헤란 시내 메워
"킬 트럼프" "미국에 죽음을" 반미 구호 외치며 복수 다짐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이란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식 사흘째인 6일(현지시간) 테헤란은 거대한 검은 강이 흐르는 듯했다.
이날 아침 6시부터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관이 대형 트럭에 실려 테헤란 시내를 관통하는 '고별' 운구 행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십만의 이란 시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테헤란의 주요 도로를 가득 메우면서 운구차의 종착점인 테헤란 남부 아자디 광장으로 천천히 향했다. 운구차는 안전을 위해 군 병력이 에워쌌지만 이란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관에 다가가려고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운구 행렬에 동참한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이란 국기를 들거나 순교자의 피와 복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흔드는 이가 셀 수 없었다. '복수'를 다짐하는 문구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나온 시민도 많았고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지치지 않고 외치며 행진했다.
영어로 'Kill Trump'(트럼프를 죽이자), 'Kill Bibi'(네타냐후를 죽이자), 'Revenge'(복수하자)라고 쓴 손팻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두 자녀와 함께 아자디 광장을 찾았다는 한 테헤란 시민은 "그들은 우리의 지도자를 죽였는데 왜 우리는 그들의 지도자를 죽이지 못하느냐"며 "(미국에 대한) 복수는 우리의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테헤란 시 당국은 소방차를 동원해 공중에 물을 뿌리며 더위를 최대한 식혀보려고 했지만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와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최고지도자의 마지막을 보려는 시민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과 유력 성직자들도 이 행렬에 동참했다.
인파가 밀집한 탓에 운구차가 앞으로 나가지 못해 예정된 일정보다 1∼2시간 정도 지연됐다. 행렬이 지나는 약 10㎞의 도로변에 기관총을 거치한 군용차량과 무장 병력이 배치됐다.
이란 당국은 장례식이 치러진 4∼6일 사흘간을 임시 휴일로 선포했으며, 엥겔랍 광장 등 운구차가 지나는 도로 부근의 지하철역을 폐쇄했다.
행진이 시작된 지 약 7시간 만인 정오께 영결식이 열리는 아자디 광장에 운구차가 모습을 드러내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고 "복수하자", "적에게 피의 복수를"이라는 분노에 가득 찬 구호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침통한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자책하기도 했다. "신정체제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죽음을", "이란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도 자주 외쳤다.
이란 국영방송은 "오늘 테헤란은 이란의 수도만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와, 자유를 추구하는 전세계인들, 순교한 지도자에게 작별을 고하려 모인 이들의 수도"라며 "우리는 저항과 진실, 올바름이라는 그의 밝은 길을 영원히 따를 것"이라고 했다.

아자디 광장에는 시아파가 가장 추앙하는 이맘 후세인을 상징하는 검은색 대형 범선이 설치됐는데 이 범선의 붉은 돛엔 이맘 후세인과 함께 카르발라 전투에서 숨진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 10여명의 이름이 적혔다. 이란 당국은 장례식 내내 이처럼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죽음을 이맘 후세인의 비극적 순교의 서사에 투영해 종교적으로 숭모하는 대상으로 승화하려는 의도를 부각했다.
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사진도 빠짐없이 함께 등장했는데 이란 지도부는 이번 장례식을 모즈타바에 대한 국민적 충성을 결의하는 정치 이벤트로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유해는 이날 테헤란에서 150㎞ 거리의 중부 종교도시 곰으로 운구된다. 곰에서는 고위 성직자와 공직자가 참석하는 추모 행사가 열리고 8일엔 이라크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로 유해가 옮겨진다. 9일 다시 이란 북동부 시아파 성지이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고향인 마슈하드로 운구돼 시신 매장을 끝으로 장례식이 마무리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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