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명 숨진 1989년 '힐스버러 참사' 후속 입법
경찰 등 공공기관·공무원의 진실 공개 의무화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영국 최악의 압사 참사인 '힐스버러 참사' 37년 만에 당국에 수사와 관련한 진실을 공개할 법적 의무를 지우는 관련법이 하원을 통과했다.
영국 하원은 14일(현지시간) 공공기관과 공직자에게 공식 조사나 수사와 관련해 정직과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는 '공직책임법안'에 대한 3차 독회까지 마무리해 상원으로 넘겼다.
이 법안은 공공기관 및 공무원이 국민을 속이는 행위를 범죄로 다루고 공공기관이 모든 부서에서 윤리적 행동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한다. 이는 1989년의 힐스버러 참사로 인한 조처라 '힐스버러법'으로 불린다.
힐스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사우스요크셔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리버풀과 노팅엄포레스트가 1989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준결승전을 치르던 중 관중석 입석 구역에서 일어났다. 97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친 영국 최악의 압사 사건이자 영국 스포츠 사상 최악의 참사다.
경찰은 초기에 좁은 구역에 사람들이 몰린 건 군중 탓이라고 주장했으나 나중에는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지 못하고선 실수를 덮기 위해 사고를 축구팬들의 무질서 탓으로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1991년 사법당국 첫 조사 결과는 사망자들이 사고사했다고 판단했지만, 유족의 끈질긴 진상 규명 요구로 꾸려진 독립조사패널이 경찰의 잘못과 실수를 보여주는 비밀 문건 등을 검토한 끝에 2012년 사고사가 아니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2016년 사법당국의 두 번째 조사에서는 피해자들이 당국의 잘못으로 '불법적으로 살해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현장 경찰 지휘관 등이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으나 2019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3년 정부는 이 사건에 잘못 대응해 유족들이 수십년간 고통을 겪은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경찰을 포함한 공공기관에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지 않을 책임을 부여하는 입법은 오랫동안 추진돼 왔고, 노동당은 이를 2024년 총선 공약에 포함했으나 진전이 더뎠다.
특히 국가 정보요원들에게도 진실을 공개할 의무를 지워야 하는지 논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정보기관에도 의무를 부과하되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 공개에 대해선 안전 확보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
사임을 앞둔 키어 스타머 총리는 하원 통과 전 발언에서 "이는 (희생자) 97명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노동자를 위한 법안"이라며 "국가는 희생자들이 노동계급이나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의에 대한 요구를 번번이 외면했다"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의 후임으로 유력한 앤디 버넘 하원의원은 "이 중대한 법안으로 정의에 대한 국가의 사고와 행동이 바뀔 것"이라며 "권력이 당국에서 일반 국민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1야당 보수당은 스타머 정부가 이번 법안을 마지막 유산으로 주장하려 법안을 졸속 처리했다고 비판했다.
닉 티머시 보수당 예비내각 법무장관은 공공기관에 대한 책임 부과는 누구나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이 법안 옹호자들과 정보기관에 모순된 약속을 하고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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