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간대 생방송 대국민연설서 중·러·이란·북한 거론하며 "美선거 위협"
정보기관 기밀보고서 근거로 '시스템 취약' 주장…민주 "미친 왕의 횡설수설"
물가 상승에 지지율 하락 국면서 중간선거 승리에 안간힘…유권자ID법 호소도

(워싱턴=연합뉴스) 박성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자신이 패배한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또 내놓았다.
이번엔 미 동부시간으로 방송 프라임타임(황금시간대)인 오후 9시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대국민연설을 통해서였고,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미 정보기관의 기밀 보고서를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근거로 내세웠다.
약 26분간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연설은 지난해 초 자신이 집권 2기에 취임한 뒤 전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인플레이션과 국경 안보 문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언급으로 시작됐다.
감세 정책·약값 하락·국경 안보 강화·낮은 범죄율 등을 집권 2기 성과로 부각했다.
올 초 베네수엘라에서의 군사작전 성공을 거론한 뒤 현재 가장 뜨거운 글로벌 이슈인 이란 전쟁과 관련해선 미국이 승리하고 있으며 곧 미국 국민이 그 성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고선 20분 넘는 연설 시간을 자신이 줄곧 주장해온 부정선거론을 되풀이하는 데 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와 관련해 펼친 주장은 중국이 2020년 선거 기간부터 2억2천만건 이상의 미국 유권자 데이터를 확보해 자신의 낙선을 꾀했고, 이를 '딥스테이트'로 불리는 연방 정부 내 기득권 집단이 은폐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한 2020년 베네수엘라에서 선거가 디지털 방식으로 조작된 사례를 들면서 미국의 투표 기기와 개표 시스템이 해킹과 조작, 부패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대표적 미국의 적대국들이 미국의 선거 시스템을 조작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투표 시 유권자 신분 확인을 강화하고 우편투표를 제한하는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것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유권자 ID 법안'이라 불리는 이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 통과 전 다른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서명하지 않겠다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필승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민주당의 거센 반발로 의회에 표류 중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여름 프라임타임 생방송 연설을 활용해 부정선거론을 다시 한번 펼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미국의 세계 최강 대국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 등의 선거 개입 의혹을 부각함으로써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 안보 위기론을 증폭시키는 한편, 실체가 모호하지만 자신의 강성 지지층이 사실이라고 믿는 딥스테이트까지 거론하면서 결집을 유도한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주요 공중파 방송사인 NBC·ABC가 연설을 실시간 방영하지 않는 점을 지적, "그들은 어떤 이유로도 이 사기를 계속 이어가려 한다. 급진좌파를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부정선거의 책임을 언론에 돌리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관세전쟁 여파로 인한 국내 물가 상승에 이란 전쟁 장기화로 인해 치솟은 에너지 가격이 내려갈 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지 않자 음모론을 활용해 반전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발표된 워싱턴포스트(WP)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여론조사(8∼13일·미국 성인 2천648명 대상)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7%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그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응답은 1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핵심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중간선거를 100여일 앞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대로 선거 조작이나 부정에 대한 주장이 선거 판세와 여론을 되돌리는 데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다수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연설을 팩트체크하며 "허위 주장",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트럼프의 주장은 밝혀지지 않았다" 등의 반론을 제기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를 보호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의 발언은 선거에 대한 깊은 불신을 조장하면서 반대편을 겨냥하고 있다"고 짚었다.
차기 대선 주자 중 하나로 꼽히는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미국은 미친 왕의 횡설수설을 지켜봤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트럼프)는 이미 이번 (중간) 선거를 조작하고 만약 (선거) 결과가 자기 뜻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여러분이 그 결과를 불신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min2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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