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원유 공급망 흔들려도 에너지안보로 재평가되는 K-정유

입력 2026-08-08 07:35  

전쟁에 원유 공급망 흔들려도 에너지안보로 재평가되는 K-정유

전쟁에 원유 공급망 흔들려도 에너지안보로 재평가되는 K-정유
호주서 60년만에 신규 정유공장…정제설비 '전략자산' 재부상
정유시설 타격에 수출 제한도…국내 정유사, 대규모 설비로 공급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중동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정유시설의 가동 차질이 이어지면서 원유 확보를 넘은 정제 경쟁력이 국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잇따른 전쟁으로 글로벌 원유 공급망이 흔들리자 탈탄소 기조에 따른 정제 설비 축소에 제동이 걸리며 안정적으로 휘발유·경유·항공유를 공급할 수 있는 정제 능력이 안보 경쟁력으로 재평가되는 모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지난달 말 서호주 카라사 지역에 신규 정유공장 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호주가 국내에 새로 정유공장을 짓는 것은 1965년 이후 60여년 만에 처음이다.
호주에서 가동 중인 정유공장은 2000년 8곳에 달했으나 현재 2곳으로 줄었다. 아시아 대형 정유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데다 탈탄소 기조 속에 탄소 배출량이 많고 운영비가 높은 노후 정유 시설을 정리하면서다.
이 때문에 호주는 전체 연료 수요의 약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였다.
그간 정제설비를 줄여온 호주가 60년 만에 다시 정유공장 건설을 공식 검토하는 것은 전쟁 등으로 정제연료 시장이 흔들리며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정유 능력 확대의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호주 사례가 정유산업을 다시 국가 에너지 안보의 전략 인프라로 바라보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글로벌 석유 정제품 공급은 주요 정유시설 가동 차질과 수출 제한으로 크게 제한된 상태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정제 생산량은 중동 전쟁 이전보다 약 6%(하루 약 500만배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전쟁으로 대규모 정유시설이 가동 차질을 빚은 데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랴잔 등 핵심 정유시설에 대한 집중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고, 세계 최대 정유국인 중국이 올해 들어 에너지 안보 강화를 내세워 정제유 수출을 대부분 중단한 영향이다.
특히 글로벌 경유(디젤) 시장은 세계 2위 수출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드론 공격 여파로 지난달 초 경유 수출을 전면 금지하면서 빠르게 경색됐다.
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경유 크랙(국제 석유제품가-원유가) 마진은 지난해 평균 배럴당 17.3달러에서 올해 7월 5주 배럴당 76달러까지 약 4.4배 치솟았다.
중동과 러시아의 주요 정유시설이 막대한 타격을 입으면서 당장 전쟁이 끝나도 손상된 설비 복구와 재고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처럼 글로벌 정제품 공급 불안이 커지면서 한국 정유업계가 보유한 정제 경쟁력의 전략적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하루 원유 정제 능력은 총 330만배럴로 세계 5위 수준이다.
특히 국내 정유사는 대규모 정제 설비의 높은 가동률과 우수한 고도화 설비를 갖춘 데다 지정학적 위험에서도 비켜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덕분에 세계적인 수급 난항 속에서도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하며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망의 중심축이자 에너지 안보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상반기 2억2천623만배럴 규모의 석유제품 물량을 수출했다. 금액으로는 약 282억달러(40조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36.5%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정제능력이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원유 확보만큼이나 이를 안정적으로 제품으로 만들고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며 "국내 정유업계는 오랜 기간 갖춰온 정제 경쟁력을 기반으로 윤활유 등 다양한 제품과 에너지 사업으로 외연을 넓히며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s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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