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부교수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필자는 얼마 전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을 방문했다. 도시를 지나며 만나는 건물, 다리, 철도 등의 시설들이 대부분 외국 자본으로 건설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리·철도차량은 한국이, 철도는 튀르키예가, 도로·송배전 시설은 일본이, 공항은 네덜란드 기업이 각각 건설했다. 또한 항만은 세계은행, 영국, 아랍에미리트, 인도 기업이 함께 건설했다. 그리고 버스 운행 시스템도 세계은행과 여러 국가가 개발재원과 민간자본을 투입해 구축했다. 도시 전체가 여러 나라의 자본과 기술을 모아 만든 '콜라주'처럼 보였다.
'과연 스스로 일군 발전인가, 진정한 성장의 척도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공적개발원조(ODA)가 점점 줄고 있는 현재 상황에도 세계 주요국의 아프리카 접근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자본의 출처와 성격만이 달라지고 있다. ODA가 빠진 자리를 무엇이 채우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것이 아프리카 경제발전과 향후 한-아프리카 협력에 던지는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 ODA 축소…이제는 기부가 아니라, 빌려주는 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5년 개발원조위원회(DAC) 선진 공여국의 ODA가 전년 대비 23.1% 급감했다. 이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 낙폭이다. 2026년에도 5.8% 추가 감소가 예상된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원조는 한때 30% 넘게 증가했었지만, 현재는 2019년 팬데믹 이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줄었다. 이러한 ODA 축소에는 미국의 삭감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USAID 사업의 82%를 중단하면서 미국의 ODA는 전년 대비 56.9% 줄었다. 이는 전체 하락분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한 총 양자원조는 2026년에도 11.6% 줄어들며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인다. 이대로라면 2000년대 초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유엔 산하 기구로 들어가는 핵심 기여금마저 27% 급감해 다자기구를 통한 원조가 공백을 메워줄 것이라는 기대도 사라지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구조적 재편일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 속에서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자원 확보와 경제 안보 등 국가 이익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유럽에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방비가 증가하고 장기적 저성장과 난민·이주민 증가로 내부 재정 압박을 겪으며 해외 원조 축소는 불가피한 현실이다.
재정 여력이 줄어든 전통 공여국들이 무상원조 규모를 축소하는 사이, 아프리카 대규모 인프라와 산업 개발에는 개발금융기관의 양허성 차관과 민간기업의 직접투자, 민관협력(PPP) 등 다양한 형태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특히 도로·철도·항만·전력과 같은 인프라는 상당한 초기 자본이 필요한 만큼 무상원조만으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 이후 수익 창출과 상환 가능성을 고려한 개발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아프리카는 일방적인 원조 수혜자가 아니다. 아프리카를 둘러싸고 세계 주요국이 저마다 자본과 기술을 앞세워 경쟁하는 상황이다. 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자신에게 필요한 투자와 협력 상대를 능동적으로 선택해야 할 때다.
◇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성장…위험도 여전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변화에도 아프리카 경제가 전반적으로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조 삭감 직후 쏟아진 '경제 붕괴' 우려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는 오히려 2026년 초 성장률 전망을 8.9%에서 10.2%로 상향 조정했다. 게다가 IMF가 2025년 10월에 전망한 2026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15개 국가 중 11개가 아프리카에 있다. 나이지리아, 가나, 에티오피아는 미국 원조 삭감 직후 발 빠르게 국가 예산을 보건 분야로 돌렸다. 모로코 자동차 산업처럼 원조가 아닌 산업 육성과 무역 통합을 축으로 성장하는 모델도 이미 자리를 잡았다.
즉 원조가 줄어든다고 아프리카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장의 동력이 원조에서 무역과 투자, 그리고 언젠가 갚아야 할 차관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외부 자본 유입을 무작정 반길 수만은 없다. 무상원조와 달리 차관은 이자 부담을 동반하며, 환율 변동이나 고금리에 직면할 경우 제2의 '부채의 덫'에 빠질 위험이 크다. 현지 고용 창출과 기술 이전 효과는 발생하지 않고 핵심 광물과 인프라만 담보로 잡은 자본 역시 새로운 경제적 종속을 낳을 수 있다.

◇ 외부 거대 자본은 자원 쟁탈전에 집중
외부 거대 자본이 진짜 힘을 쏟는 곳은 소비시장이 아니라 자원과 인프라다. 아프리카는 코발트, 망간, 백금족 금속, 흑연 등 전 세계 주요 광물 매장량의 약 30%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정제·가공 역량 부족으로 수출 부가가치의 약 10%만 대륙 안에 남기고 있다. 이 부가가치와 공급망 주도권을 갖기 위해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걸프 국가들이 전면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잠비아,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DRC)의 구리·코발트를 대서양 로비토 항으로 실어 나르는 '로비토 회랑'에 미국 개발금융공사(DFC)는 2025년 4분기에만 5억 5천300만달러(약 7천800억원)를 투입했다. 유럽연합의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는 2027년까지 계획된 예산의 절반가량을 아프리카에 배정했다. 중국 기업은 이미 DRC 코발트 채굴의 70% 정도를 확보한 상태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디피월드(DP World)와 아부다비 항만공사 그룹(AD Ports Group)은 소말리아 베르베라부터 지부티, 케냐의 몸바사,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항만까지 연결하며 독자적으로 물류 회랑을 구축하고 있다. 이렇게 인프라 회랑에는 수십억 달러가 몰리지만,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The Global Fund)나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 소비시장 풍경…큰손 빠지고 작은 손 들어와
한편, 소비시장에는 자원·인프라 구축을 위한 거대 자본의 움직임과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3년간 나이지리아에서만 유니레버 현지 제조 중단, P&G 3억 달러 규모 공장 폐쇄, 디아지오의 기네스 나이지리아 지분 매각에 이어 GSK, 바이엘, 사노피 등 서구 글로벌 대기업들이 줄줄이 발을 뺐다. 통화 가치 하락에 따라 심각한 외화 부족으로 달러 과실 송금이 막힌 데다 인플레이션으로 서구산 프리미엄 제품을 사줄 소비층의 구매력이 무너진 게 주된 원인이다. 현지 생산보다 수입 판매나 영업권 매각이 낫다고 본 것이다.
이들이 떠난 자리를 메운 것은 중소국가의 실용주의·현지 밀착형 기업들이다. 싱가포르 톨라람, 튀르키예 하야트 키미야, 현지 제약사 피드슨 헬스케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중국 개인 창업자들이 SNS를 통해 '나이지리아 이어폰 무역', '케냐 버블티 사업' 같은 콘텐츠를 공유하며 소규모로 진출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 차원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대비되는 개인 단위 '보따리 자본'이 들어오는 양상이다. 또한 플루터웨이브(Flutterwave)·오페이(Opay)·인터스위치(Interswitch) 같은 핀테크 기업, 주미아(Jumia) 등 이커머스 플랫폼, 엠페사(M-Pesa)로 대표되는 모바일머니의 성장, 그리고 11억 개가 넘는 모바일머니 계좌 수 등은 아프리카 소비시장의 잠재력이 상당함을 증명한다. 그 잠재력을 실제 시장으로 연결하는 주체는 서구 대기업이 아닌 아시아 자본, 중소 규모 사업자들이다.

◇ 한국의 전략은 발 빠른 틈새시장 공략
여기서 미국·중국·EU·중동 국가들처럼 수백억 달러를 걸고 경쟁하는 것이 한국의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00년 이후 24년간 한국 기업의 대(對)아프리카 누적 투자는 58억달러(약 8조1천815억원)로 중국이 한 번의 정상회의에서 약속하는 금액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한국의 2026년 ODA 예산도 전년 대비 22% 삭감됐고, 인도적 지원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틈새시장 공략'이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지 않고도 거대 자본이 눈여겨보지 않는 영역에서, 아프리카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수많은 틈새가 존재한다. 관세청 통관시스템을 활용한 행정·기술 표준 선점과 후속 사업 유치, 직업훈련 협력, 현지화한 중소 제조업, 결제망·신원인증 같은 핀테크 및 디지털 정부 후방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 현실적인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러한 틈새를 찾아내 기회로 바꾸려면 현장에 밀착한 치밀한 조사와 현지 정부·기업·인재들과 깊이 있는 네트워크 구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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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경 교수
현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부교수, 캘리포니아주립대-로스앤젤레스(UCLA) 정치학 박사, 현 한국아프리카학회 학술이사, 주요 연구분야는 아프리카 민주주의 발전(선거·정당·의회), 정치경제(산업·정치 연계), 분쟁, 체제전환, 외교관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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