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6개월…걸프 지역 경제 지형 '강요된 대변혁'

입력 2026-08-28 20:15  

이란 전쟁 6개월…걸프 지역 경제 지형 '강요된 대변혁'

이란 전쟁 6개월…걸프 지역 경제 지형 '강요된 대변혁'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6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에너지 수출로 막강한 부를 자랑했던 걸프 지역 경제는 유례없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지형으로 재편되고 있다.
주요 에너지 수출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에너지 수출부터 해운, 항공, 부동산, 관광, 주식 시장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충격이 가해진 가운데, 각국은 생존을 위해 경제 체제의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치고 있다.

◇ 물류 대동맥의 마비와 무역로의 전면 재편
전 세계 에너지 물동량의 20%가 지나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다에서 일어났다. 항만 운영사들이 꽉 막힌 걸프만 터미널의 대안을 필사적으로 모색하면서 글로벌 화물 물동량은 해협 외곽에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의 푸자이라와 오만의 소하르, 두쿰 등 아라비아해 및 홍해 연안 항구들로 대거 이동했다.

호르무즈 봉쇄는 단순히 물류비용 상승만 유발한 게 아니다. 걸프 지역은 소비 열량의 80%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입에 의존해왔다. 해협이 사실상 폐쇄되면서 이른바 '식료품 공급 비상사태'가 촉발됐고, 이로 인해 주요 식료품 가격이 40~120%까지 치솟는 인플레이션 충격이 발생했다.
에너지 수출길이 막힌 것은 걸프 국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대체 인프라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로 향하는 '동서 송유관' 가동을 극대화해 원유 수출을 방어 중이다. UAE는 원유뿐만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 부문에서도 '호르무즈 프리'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며, 해협 밖 푸자이라 항구로 직행하는 송유관 증설은 물론 신규 부유식 LNG 수출 터미널 가동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이라크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등 인접국 항구를 잇는 육상 수출로 개발에 착수한 반면, 우회 송유관이 없는 LNG 주력국 카타르는 수출 직격탄을 맞은 채 일반 화물만 인근국으로 우회시키며 버티는 실정이다.
새롭게 부상한 이 우회 시스템은 특정 병목 구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걸프 물류망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 롤러코스터 유가와 상처 입은 에너지 인프라
분쟁 이전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통과하던 호르무즈 해협의 마비는 즉각적인 유가 쇼크를 불러왔다. 전쟁 초기 브렌트유는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며 시장의 공포를 자극했다.
다만 유가가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배럴당 200달러 선까지 치솟지는 않았다. 중국이 자체 비축유를 방출하고 지정학적 긴장이 수시로 고조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최근 유가는 배럴당 96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타격은 인프라 손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 해안의 핵심 원유 처리 시설이 연이은 드론 공격으로 파괴되어 수십억 달러의 긴급 복구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UAE 역시 핵심 우회로인 푸자이라 항구의 원유 저장 탱크 일부가 손상을 입어 수출 차질을 빚었다.
각국은 파괴된 시설의 단순 복구를 넘어, 방공망 확충과 핵심 시설 지하화 등 새로운 방어형 인프라 재건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동 전역의 피해 인프라 복구 비용만 580억 달러(약 7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위축된 부동산과 멈춰 선 '글로벌 항공 허브'
전쟁은 걸프 지역의 화려한 스카이라인 성장세에도 제동을 걸었다. 전쟁 발발 직후 걸프 지역 개발업체들의 신규 프로젝트 출시는 사실상 중단되었고, 두바이의 분양(Off-plan) 착공은 1분기 대비 2분기에 무려 90%나 급감했다.
다만 기존 건설 물량은 계속 공급되어 두바이는 2분기에만 2만 7천가구를 인도(최근 5년 내 최대치)했으나, 상반기 전체 주택 매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3% 감소하며 1분기까지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꺾인 모양새다.
더 뼈아픈 곳은 항공 부문이다. 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4월, 중동 항공사들의 공급 좌석은 전년 대비 3분의 1 이상 증발했다. 8월 들어 싱가포르, 뉴욕 등 장거리 노선들이 빠르게 회복하며 격차를 5% 이내로 좁혔지만, 유럽 시장의 회복세는 여전히 더디다.


◇ '직격탄' 맞은 관광산업, 관광객 급감·비용 상승 이중고
이란 전쟁으로 사실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단연 관광업이다. UAE 국내총생산(GDP)의 8분의 1을 차지하고 100만 개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관광업은 붕괴 직전의 위기를 맞았다.
세계여행관광협의회(WTTC)는 이번 전쟁으로 중동 지역에서 하루 최소 6억 달러(약 8천200억원)의 관광 수입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으며, 올해 걸프 지역에서만 13만7천개(UAE 4만6천개)의 관광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숙박·외식업계는 방문객 급감과 물류비 상승에 따른 식자재 비용 폭등이라는 이중고에 갇혔다. 버즈 알 아랍, 아르마니 호텔 등 최고급 숙박시설들은 이 강제적인 침체기를 틈타 리노베이션 일정을 앞당기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성수기에 터진 전쟁은 기업들이 여름 비수기를 버티기 위해 쌓아두는 '완충 자금'마저 앗아갔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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