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쓸려나간 강변 마을 온통 잿빛…엄두도 못 내는 복구 작업
인근 군사기지서 사망자 신원 확인 작업…구호품 실은 헬기도 분주

(누와코트[네팔]=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대홍수가 난 트리슐리강 쪽으로 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카트만두 시내에서 트리슐리강 인근인 바그마티주 누와코트 지역에 있는 데비가트와 비두르로 연결되는 산악도로는 시바푸리 나가르준 국립공원 안을 굽이굽이 돌았다.
해발 1천500m 정도까지 형편없이 낡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반복해서 나타났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인데도 맞은편에서 오는 대형 화물차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가야 했다.
곡예 운전을 하던 현지인 운전기사는 "카트만두에서 누와코트로 가는 고속도로가 있지만 전날 비가 많이 내린 뒤 고속도로와 이어진 도로 곳곳에 토사가 내려와 차가 많이 막힌다"며 산악도로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험한 지형을 달릴 수 있는 '오프로드' 차량이 휘청휘청할 때마다 두통과 함께 멀미가 올라왔다. 굽이치는 산길을 달리고서야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자락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50㎞를 3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누와코트 지역의 데비가트는 온통 잿빛이었다.
이번 대홍수 때 통째로 쓸려나간 이 마을에는 복구공사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이 눈에 띄는 형광 조끼를 입은 채 분주하게 움직였다.
차에서 내리자 심한 하수구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마을 한가운데에 난 도로만 그나마 멀쩡했고,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주택과 건물들은 폭삭 주저앉아 지붕만 남았거나 홍수로 떠내려온 각종 잔해와 이물질이 줄줄이 걸려 흉측한 모습이었다.
지난달 26일 네팔과 티베트자치구 접경의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빙하가 붕괴한 뒤 토석류(土石流)가 하류로 쏟아져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을 당시 데비가트는 그나마 아래쪽이어서 이곳 주민들에게는 대피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쓰나미 수준의 홍수에서 살아남은 람 사단(46)은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집 밖에서 일하다가 트리슐리강 위쪽에서 거대한 물살이 떠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집 뒷산으로 무작정 뛰어 올라갔다"며 "안 그랬으면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토사가 가득 들어찬 집에서 평소 쓰던 물건을 꺼내 정리하던 사단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상황"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사단의 아내도 집에서 꺼낸 지폐 몇장을 남편 옆에서 햇볕에 말렸다. 진흙더미에서 꺼낸 이불과 옷가지 등을 정리하면서도 막막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그는 "어떻게든 또 살아야 하니 이러고 있다"면서 "사실 엄두가 안 난다"고 울먹였다.

20m가량 떨어진 70대 노부부의 이층집도 마찬가지였다. 가스통과 가구가 홍수에 떠내려온 쓰레기나 잔해물과 함께 집 밖에 나와 있었다. 어떤 것이 쓰레기이고 뭐가 평소 쓰던 물건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집 2층은 비교적 온전했지만 1층은 진흙더미가 꽉 차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까닥 반다리(70)는 깨진 창문에 망치로 못을 다시 박고 있었다.
반다리는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2층에서 잠도 못 잔다"며 "집 뒤에 막사를 만들어서 아내와 함께 잠을 자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홍수가 남긴 진흙더미는 양도 엄청났고 깊이도 상당했다.
실제로 반다리의 집 근처에서 기자도 진흙더미에 두 발이 빠졌다. 한 발을 빼려고 버둥대니 다른 발이 더 깊게 빠져 결국 두 발 모두 무릎까지 잠기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본 건장한 현지인 남성 2명이 다급하게 양손을 붙잡아 겨우 빠져나왔다.
반다리의 집에서 바라본 트리슐리강 건너편 쪽 상황은 더 처참했다. 2∼3층 집들이 거대한 물살에 뜯겨나간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트리슐리강 위에 놓인 다리가 끊기면서 반대쪽 지역은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날 데비가트 곳곳에서는 복구 작업을 돕기 위해 투입된 네팔인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봉사단체 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 중인 아다바 비스터(51)는 "이재민 여성들이 입을 옷과 속옷 등을 나눠주려고 카트만두에서 갖고 왔다"며 "뭐라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네팔 비정부기구(NGO)인 '카루나 캐어' 소속 청년들도 이재민들의 물건을 집에서 빼내는 작업을 도왔다.
국제 아동 권리 NGO인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들은 카메라와 녹음기를 든 채 데비가트의 피해 상황을 기록했다.
한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영국에서 네팔 홍수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왔다"면서도 "기자와는 개별적으로 대화하지 못한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데비가트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비두르의 트리슐리 군사기지에서는 홍수 피해 지역으로 구호 물품을 실어 나르는 헬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렸다.
네팔 군 당국의 허가를 받아 군사기지 안에 들어서자 대형 천막 뒤편에서는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네팔 군 관계자는 "실종자 가족들이 와서 신원이 확인되면 시신을 곧바로 인계한다"면서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시신은 경찰에 넘긴다"고 설명했다.
이 군사기지 입구에서 실종자를 접수하던 경찰관은 명부를 보여주면서 "지난달 26일부터 오늘까지 이곳에서만 총 616명이 실종자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군사기지 앞에서 만난 사데라이 디말(48)도 이번 대홍수 후 남동생(45)과 연락이 끊겼다. 남동생은 디말의 집에서 북부 지역 쪽으로 2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살았다.
디말은 "그날 오전 9시 30분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와서는 '홍수가 났다'고 다급하게 소리쳤다"며 "그때 이후로 연락이 끊겼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고 울먹였다.
지난달 26일 바그마티주 일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지금까지 네팔과 티베트에서 모두 합쳐 1천명 이상 숨지고 4천명 넘게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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