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기념당 연장 개방…고향 동상 앞엔 새벽부터 화환·추모객

(베이징=연합뉴스) 김현정 특파원 =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 사망 50주기를 맞아 기념당과 그의 고향 후난성 사오산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9일 베이징시 정부 등에 따르면 톈안먼 광장에 있는 마오주석기념당은 이날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인 평소 운영시간에 더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추가로 개방하기로 했다.
실명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 기념당은 추가 개방에도 지난 6일 저녁을 기준으로 12일까지 참배 예약이 모두 마감된 상태다.
마오의 고향인 후난성 사오산에도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이 몰렸다.
지무신문 등 중국 현지 매체는 서거 50주년을 맞아 사오산 마오쩌둥광장의 마오 동상 앞에 추모객들이 바친 화환이 줄지어 놓였으며, 9일 이른 새벽부터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그를 추모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매체들도 마오의 생애와 업적을 부각하는 추모 콘텐츠를 잇달아 내놨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마오쩌둥은 현대 중국의 위대한 애국자이자 민족 영웅", "중국 인민을 이끌어 자신의 운명과 국가의 면모를 철저하게 바꾼 한 세대의 위인"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중앙TV(CCTV)도 "50년 전 오늘 마오쩌둥 동지가 서거했다"면서 그의 생애를 소개하고 "위인을 추모하며 중국은 전진한다"고 보도했다.
사망 50주년에 맞춘 전시회도 열렸다. 전날 후베이성 우한에서는 '청춘은 분투하는 데 쓰는 것, 마오쩌둥 청년 시기 문물전시회'가 개막했다.
우한 중국공산당 중앙기관 옛터기념관과 후난성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에는 마오가 청년기를 보낸 1913∼1927년과 관련한 유물 110여점이 전시됐다.
중앙 차원의 대규모 공식 기념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중국은 1996년 마련한 전직 당·국가 지도자 기념행사 관련 규정에서 서거 기일에는 별도의 기념행사를 개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바 있다.

마오는 1976년 9월 9일 82세로 숨졌으며, 1966년 그가 시작한 문화대혁명은 마오의 사망 이후 종식됐다.
로이터통신은 마오가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을 공산당 통치 아래 두게 한 지도자인 동시에 그의 유산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정치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공산당은 이후 문화대혁명을 마오에게 주된 책임이 있는 중대한 과오라고 규정했지만, 여전히 그의 공적이 과오보다 크다고 평가하며 그를 숭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이터는 문화대혁명의 여파가 현재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에게도 직접 미쳤다는 점도 짚었다.
로이터는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은 문화대혁명 전후 숙청돼 박해받았고, 당시 10대였던 시 주석 역시 '반동 학생'으로 몰려 심문과 정치학습을 겪었다"며 시 주석이 그와 관련한 책임을 공개적으로 마오에게 돌리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 집권 이후 권력 집중과 개인적 권위 강화, 이념적 통일과 엄격한 당 기율 강조 등 마오 시대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중국 정치에서 다시 강화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의 케리 브라운 교수는 이 매체에 "마오이즘의 도상과 카리스마, 매우 특정한 언어와 상징은 여전히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며 시 주석이 강한 민족주의와 대중주의를 통해 이 가운데 일부를 되살렸다고 평가했다.
조지프 토리지언 아메리칸대 교수는 문화대혁명이 시 주석에게 깊은 환멸을 안긴 경험이었다면서도 국가 붕괴의 위험성과 공산당에 명확한 사회주의 노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분석했다.
hjkim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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