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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알제리는 왜 다시 '사헬'로 돌아와야 했나

입력 2026-10-13 07:00  

[우분투칼럼] 알제리는 왜 다시 '사헬'로 돌아와야 했나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 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최근 알제리와 말리 총리들의 상호 방문은 단순한 이웃 국가 간 화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26년 8월 압둘라예 마이가 말리 총리가 알제를 방문한 데 이어, 9월 시피 그리브 알제리 총리가 바마코를 찾았다. 양국의 대사 복귀와 영공 재개방으로 시작된 관계 정상화가 정부 간 협력 복원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얼마 전까지 무인기 격추를 둘러싸고 서로를 비난하던 두 나라가 다시 마주 앉은 배경에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있다. 말리는 알제리를 배제한 채 북부 지역을 안정시키기 어렵고, 알제리는 말리와 대립하면서 남부 국경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여기에 니제르 군사 개입과 사하라 횡단 경제망, 종교·문화적 연결까지 함께 보면 더 큰 변화가 눈에 보인다. 알제리는 중재와 국경 방어를 중심으로 유지해 온 지역 정책을 외교, 군사, 경제, 종교가 결합한 다층적 전략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에는 기존 외교의 좌절이 있었다. 2015년 알제리의 중재로 체결된 '알제 협정'은 분쟁 해결과 알제리의 지역적 역할을 함께 뒷받침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협정 이행을 둘러싼 불신과 말리 군정의 주권 의식이 충돌하면서 협력 기반은 급격히 흔들렸다.



말리가 2024년 협정을 폐기한 데 이어 2025년 4월 알제리군의 말리 무인기 격추 사건이 발생하면서 갈등은 절정에 달했다. 알제리는 영공 방어라고 주장했지만, 말리는 적대행위로 규정했고, 말리ㆍ니제르ㆍ부르키나파소로 구성된 사헬국가연합(AES)이 공동으로 대사를 소환하면서 알제리는 남부 이웃 국가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립은 어느 쪽에도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말리 북부의 무장세력 문제는 군사적 압박만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알제리 역시 국경 너머의 불안정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말리가 알제리에 기대한 것은 북부 무장세력과 접촉 통로, 국경을 넘는 보급망 관리, 그리고 협상과 긴장 완화를 위한 영향력이다. 한때 내정 간섭 근거로 비판했던 알제리의 인적 연결망이 다시 협력 자산이 된 셈이다.
물론 투아레그 반군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동일하지 않으며, 접촉망을 가진 것과 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다르다. 알제리의 역할은 모든 세력을 움직이는 후견자가 아니라, 군사적 대응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에 정치적 통로를 제공하는 데 있다. 양국 총리의 상호 방문은 이러한 현실적 필요를 정부 간 협력으로 옮기는 과정이었다. 알제리에도 과거 중재자의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국경 안보와 교역, 행정적 협력으로 신뢰 재건이 필요한 상황이다.
니제르에서는 더 직접적인 군사적 형태로 변화가 나타났다. 알제리는 2026년 8월 9일 니제르군에 군용 헬리콥터 4대를 제공한 데 이어, 8월 28~29일 수도 니아메에서 발생한 쿠데타 시도와 군 반란 이후 군사력을 직접 투사했다. 8월 30일 니제르 당국의 요청에 따라 수호이(Su)-30 전투기 4대, 일류신(Il)-78 공중급유기 1대, Il-76 수송기 1대를 니아메 공군기지에 배치한 것이다.
단순한 무기 제공을 넘어 자국의 군사적 자산을 이웃 국가에 직접 전개했다는 점에서, 해외 군사 개입을 억제해 온 기존 정책 노선의 범위를 넘어섰다. 이 작전의 직접적 계기가 쿠데타 시도였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니제르 지원은 국경을 넘는 테러 집단의 위협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현 집권 세력이 급격히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알제리에는 니제르의 권력 공백이 국경 불안과 무장세력 확산, 기존 협력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알제리가 오랫동안 비개입 원칙을 중시한 것은 식민지 경험과 국가 주권에 대한 강한 신념 때문이다. 외부 세력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고 분쟁 당사자 사이의 중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외교적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번 조치의 의미는 주변국 위기에 군사력을 공개적으로 투입하는 선택이 지역 정책의 수단으로 부상했다는 데 있다. 상대 정부의 요청은 주권 존중이라는 명분을 제공하지만, 그것만으로 개입의 정치적 부담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전환이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다. 2020년 헌법 개정으로 해외 파병의 제도적 가능성이 열렸고, 국방 지출 확대와 군사력 현대화가 뒤따랐다. 더 큰 변화는 알제리가 자국 안보의 범위를 국경 너머로 넓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프랑스군 철수와 기존 지역 안보 체계의 약화 이후 사헬에서는 무장 조직의 준동이 확대됐고, 새로운 지역 협력체도 이를 충분히 억제하지 못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외부 행위자들의 관여가 늘어나는 동안 알제리는 인접 지역 질서가 자신을 배제한 채 재편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니제르 파견은 더 이상 국경 안의 방어와 외교적 중재만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군사 개입 배경에는 경제적 이해도 자리한다. 니제르는 나이지리아에서 알제리를 거쳐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려는 사하라 횡단 가스관(Trans-Saharan Gas Pipeline)의 핵심 경유지다. 사하라 사막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총연장 4천㎞가 넘는 이 구상에서 니제르의 치안과 정치적 안정은 사업 추진의 중요한 조건이다. 니제르 지원은 당장의 안보 위기를 관리하는 동시에 장기적인 에너지 연결망을 보호하려는 선택인 셈이다. 다만 아직 추진 중인 사업의 전략적 가치를 이미 실현된 경제적 성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말리와 관계에서는 국경 경제가 더 직접적인 동력이다. 말리 북부 주민들에게 알제리산 식료품과 연료, 국경시장은 일상을 유지하는 기반이다. 따라서 외교적 대립과 이동 제한은 정부 간 갈등을 곧바로 주민의 생계 문제로 바꿔 놓는다. 여기에 사하라 횡단 도로와 광통신망, 물류 시설까지 연결되면 알제리는 사헬과 지중해를 잇는 경제적 통로로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군사협력이 급박한 위협을 억제한다면, 경제협력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이 전략에서 가장 오래된 자산은 군대도 가스관도 아닌 '종교적 연결망'이다. 티자니야(Tijaniyyah) 수피 교단은 18세기 후반 알제리 남부 아인 마흐디(Ain Madhi)에서 아흐마드 알티자니(1737~1815)가 창시했다. 그가 세운 이슬람 교육기관 자위야(Zawiyah)는 지금도 순례의 공간으로 남아 있고, 교단의 기원이 알제리라는 사실은 알제리 외교가 반복해서 상기시키는 문화적 근거다.
티자니야는 모리타니를 거쳐서 서아프리카로 퍼졌고, 19세기 세네갈을 중심으로 모리타니·말리·니제르·나이지리아 북부에서 광범위한 신도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 교단에 사하라는 장벽이 아니라 학문과 상업, 순례가 오가던 통로였고, 사헬의 이슬람 지형에서 티자니야의 자리는 국경선보다 훨씬 오래되고 촘촘하다. 문제는 이 유산의 상징적 중심이 한 나라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알티자니는 모로코 페즈(Fez)에서 생을 마쳤고 그의 영묘도, 서아프리카 신도들의 순례가 향하는 곳도 그곳이다. 모로코가 이맘 양성과 종교 외교를 국가 전략의 한 축으로 제도화하며 사헬에서 영향력을 키워 온 배경에는 이러한 자산이 있다. 알제리의 대응은 교단의 '출발점'을 강조하고 종교교육과 이맘 연수, 학술 교류로 실질적 연결을 복원해 이 경쟁에서 뒤지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모로코와 경쟁 구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모로코가 종교 네트워크와 사헬 국가들의 대서양 접근 구상을 내세우는 동안, 알제리는 공동 국경과 군사적 역량, 에너지, 교통망을 활용한다. 서사하라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외교 경쟁까지 고려하면 사헬에서 영향력 회복은 알제리에 더 큰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질서를 두 나라의 경쟁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러시아, 튀르키예, 걸프 국가들의 이해가 교차하고, 말리와 니제르도 복수의 협력 상대를 활용해 자율성을 넓히려 한다.



결국 알제리가 다시 사헬로 돌아온다는 것은 과거의 영향권을 그대로 복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중재 외교의 한계를 인식하고 군사적 관여와 경제적 연결, 종교·사회적 교류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재정의한다는 의미다. 말리와 교류는 외교적 재접근을, 니제르에 군 파견은 비개입 노선의 실질적 변화를 보여준다. 다만 이 수단들이 서로 보완할지, 군사적 부담이 외교와 경제협력을 압도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성패는 알제리가 사헬을 지켜야 할 전략적 배후 공간으로만 보느냐, 안정을 함께 만들어야 할 이웃으로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권을 지키는 작전이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개입의 정당성은 오래가기 어렵다. 국경 너머에 전투기를 보내는 능력만큼 필요한 것은 철수할 조건을 마련하는 능력이며, 영향력을 되찾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영향력이 상대국에도 유익해야 한다.
사하라를 가로질러 수백 년간 이어진 종교와 상업의 길이 남긴 교훈이 있다면, 오래 남는 연결은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했던 관계라는 점이다. 알제리의 사헬 복귀가 지속 가능한 지역 전략이 되려면, 군사력으로 확보한 공간을 외교와 경제, 주민의 일상적 안정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임기대 교수
현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및 프랑스어과 교수,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언어역사인식론), 저서 '베르베르문명', '7인 7색 아프리카' 외 다수. 한국프랑스어권아프리카학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3.0 과제 주관연구소 연구 책임자 겸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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