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의 대상에서 자본과 혁신의 대륙으로… 대륙을 깨우는 디지털 금융의 현장
김명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부사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 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아프리카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스치는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쪽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아프리카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가난과 인도주의적 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프리카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 지구상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거대한 경제적 흐름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코끼리가 거니는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 초원에서, 스마트폰 하나로 주식을 사고팔고 수백만 원을 순식간에 송금하는 모바일 금융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곳. 바로 지금의 아프리카다. 아프리카를 하나의 나라나 단순한 빈곤 지역으로 뭉뚱그려 생각하기 쉽지만, 아프리카는 50개가 넘는 독자적인 주권 국가들이 모인 거대한 대륙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 국가 중 상당수는 역동적으로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증권거래소를 가지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 전역에는 30여 개 국가에 걸쳐 38개의 증권거래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의 총 시가총액을 합치면 2조 달러(한화 약 2천700조원)에 달해 우리나라의 주식시장 규모와 비슷하다. 물론 이 시장의 맏형 격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JSE)가 전체 규모의 60~70%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고는 있다. 1887년에 문을 연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글로벌 대형 광산기업부터 첨단 기술 투자사까지 세계적 수준의 기업들이 상장된 아프리카 금융의 심장부다.
아프리카 증시의 진면목은 남아공만이 아니다. 북아프리카의 경제적 관문인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증권거래소,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품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증권거래소, 그리고 동아프리카의 허브인 케냐의 나이로비 증권거래소까지, 권역별로 독특한 색깔을 지닌 자본 시장들이 서로 다른 경제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시장의 최상위권은 어떤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축이 있다. 하나는 세계를 뒤흔드는 자원·금융 거인들이다. 수십 년, 혹은 백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금과 백금, 다이아몬드를 캐내고 전 세계 원자재 공급망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광산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대륙 전역을 네트워크로 엮어 수천만 명의 자산을 굴리는 대형 상업은행들과 글로벌 테크 시장의 투자 지주사들이 있다.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만의 특수한 환경을 파고들어 대박을 터뜨린 '토종 테크·통신 기업'들이다. 정식 은행 계좌 대신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로 돈을 주고받는 모바일 금융 생태계를 개척한 국민 통신사들이나 대륙의 성장을 지탱하는 인프라 기업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먼저 남아공 증시에 상장된 내스퍼스(Naspers)는 세계 금융가에서도 유명한 명문 지주사이다. 이 회사가 과거 중국의 알짜 기업인 '텐센트'의 초기 대주주로 참여해 거둔 엄청난 성공은 전 세계 투자 교과서에 실릴 정도이다. 여기에 금을 비롯한 전 세계 희귀 광물들을 채굴하는 앙글로골드 아샨티 같은 거대 자원 기업들과 대륙 전역을 커버하는 스탠다드 은행 같은 대형 금융 그룹들이 증시의 든든한 뼈대를 이룬다.

더 매력적인 쪽은 서민들의 삶 속에서 탄생한 '토종 플랫폼 기업'들이다. 케냐 나이로비 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 절반 이상을 홀로 책임지다시피 하는 국민 기업 사파리콤(Safaricom)이 그 예다. 이 회사는 아프리카 모바일 금융 혁명의 대명사인 '엠페사'(M-Pesa)를 운영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정식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사파리콤은 이 빈틈을 파고들어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만으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바일 송금 서비스를 만들었고, 이것이 케냐 경제를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길거리 노점상부터 대형마트까지 현금 대신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이 혁신은, 아프리카가 서구의 금융 단계를 건너뛰어 곧바로 '디지털 금융의 최첨단'으로 도약했음을 증명한다.

나이지리아 증시의 최고 공룡 기업인 '단고테 시멘트'(Dangote Cement)' 역시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아프리카 최고의 부호로 꼽히는 알리코 단고테가 이끄는 이 기업은, 도로를 깔고 빌딩과 교량을 올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아프리카 도시화의 현장에서 시멘트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증시의 핵심 축이다. 단순히 나이지리아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하라 이남 10여 개국에 거대한 생산 공장과 공급망을 구축하며 대륙 전체의 인프라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과거 아프리카를 향한 국제사회의 접근 방식은 주로 '시혜적 원조'에 머물렀다. 우리가 도와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불쌍한 대륙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주식시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와는 다르다. 그들은 남의 손을 빌리기보다, 자신들의 청년 인구와 모바일 기술, 그리고 자본을 결합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이처럼 사방의 불편함을 기회로 바꾼 토종 기업들의 성공은, 단순히 몇몇 기업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 전역의 수많은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에 강력한 자금과 성장의 선순환을 불어넣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의 청년 창업가들은 투자받기 위해 실리콘밸리나 런던으로 본사를 옮겨야만 했다. 현지에는 벤처를 받아줄 자본 시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요하네스버그나 라고스, 나이로비 등의 증권시장이 탄탄한 뼈대를 갖추고, 통신사와 전통 금융사들이 풍부해진 유동성을 바탕으로 유망한 핀테크, 물류,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과감한 투자와 인수합병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프리카의 증권시장은 단순히 거대 기득권 기업들만의 놀이터가 아니다. 골목의 작은 아이디어가 싹터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고 마침내 현지 증시에 당당히 상장해 다음 세대의 창업가들에게 다시 투자하는, 스스로 생태계를 지탱하는 자립의 화수분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주식시장과 금융 성장을 곧바로 완벽한 경제적 자립의 상징이라고 미화할 수는 없다. 여전히 부족한 유동성, 극심한 환율 변동성, 외부 충격에 취약한 거시경제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과거 외부의 구호와 차관에만 의존하던 체질에서 벗어나, 이제는 아프리카의 청년과 민간 자본이 스스로 시장을 일구고 생존의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자립의 징후다.
은행이 없던 사람들에게 금융 계좌를 열어주고, 서로의 스마트폰을 연결해 작은 자본을 모아 창업을 하고, 주식시장을 통해 대중이 기업의 주인이 되는 과정. 이 모든 것은 결국 파편화된 개인들을 하나의 거대한 경제 공동체로 묶어내는 '연결의 힘'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핀테크와 주식시장은 단순한 부의 축적을 넘어, 수억 명의 사람들이 경제적 주체로 거듭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우분투'('네가 있어 내가 있다'라는 뜻의 반투어)의 실천 현장인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아프리카를 향해 묻던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가 저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저 거대한 자본과 혁신의 대륙과 어떻게 손을 잡을 것인가"라고 말이다. 아프리카의 증권시장이 울리는 자립의 종소리는, 지구촌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 모두가 진정한 파트너로 나아가는 신호탄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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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희 부사장
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부사장, 단국대 중동·아프리카학 박사, 헬싱키 경제대 MBA, 저서 '물어물어 찾아낸 나의 친구 아프리카', 아프리카지역본부장·파리관장·케냐관장·알제관장·소피아관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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