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폭동서 셀린느·루이뷔통·디오르·에르메스 등 명품 매장 약탈
"애증 관계…세계적 영향력 자랑스러워하나 불평등 낳는 본질 비판"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매장들이 지난 주말 폭동 당시 공격당하면서 명품 산업을 둘러싼 프랑스 사회의 균열을 드러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전했다.
지난 17일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되며 셀린느, 루이뷔통, 에르메스, 디오르, 생로랑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매장들이 약탈당했다.
과격 시위대는 이들 매장의 강화 유리를 때려 부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진열장을 박살 낸 뒤 고가의 제품들을 쓸어갔다.
17∼18일 사이 이들 매장을 비롯해 프랑스 전역에서 3천곳가량의 상점이 피해를 봤다.
NYT는 이를 프랑스 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 즉 사회·경제적 불의의 상징으로 사치품을 겨냥해 온 흐름 속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일시적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치품 산업 자체가 만들어낸 오늘날 현실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럭셔리의 수도'를 자처해 온 파리에서 지난 8년간 명품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물리적 공격이 발생한 건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2023년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과격 시위대는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몽테뉴 거리의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본사 문을 뚫고 들어가 폭죽을 쏘아댔다. LVMH의 억만장자 소유주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모형도 불태웠다.

그에 앞서 2019년 초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항의한 '노란 조끼' 시위가 정점에 달했을 때는 샹젤리제 거리의 샤넬, 디오르 등 여러 명품 매장이 약탈당했다.
프랑스 오트쿠튀르 연맹의 신진 브랜드 책임자이자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경영 스쿨의 겸임 교수인 세르주 카레이라는 "프랑스는 항상 명품과 애증의 관계를 보여왔다"며 "명품 산업의 세계적 영향력은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 도덕성에는 의문을 품고 불평등을 낳는 본질을 비판해 왔다"고 지적했다.
NYT는 어떤 면에서는 브랜드들이 그토록 부지런히 키워온 바로 그 영향력이 지금 역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명품 업계는 소셜미디어와 자체적인 문화적 위상을 활용해 제품을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자신들을 어디에나 존재하게 만들었다. 유명 홍보대사에 더해 패션쇼를 엔터테인먼트로, 또 레드카펫을 마케팅 기회로 변모시킨 덕분에 디오르 제품을 절대 사지 않을 사람조차도 디오르를 알고 있다. 루이뷔통, 샤넬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명품 브랜드들은 열망과 세련된 취향의 전형임을 내세우면서도 가격을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명품은 정서적·심리적으로는 매혹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카레이라 교수는 그 결과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이 세계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는다"며 "더 이상 꿈은 없고, 오직 질투와 분노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감정들은 물리적 파괴 행위로 표출됐다. 카레이라 교수는 시위대가 호화 상점들의 쇼윈도를 부수는 것은 누구나 명품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유혹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다수를 배제하는 소비 체제를 파괴하려는 행위라고 분석했다.
이에 약탈자들은 평소라면 자신들에게 허락되지 않았을 명품을 빼앗아 말 그대로 거리로 끌어냈다. 명품 브랜드들이 장인 정신과 유산의 상징이라고 자랑하는 제품들이 이런 상황에서는 과도한 사치와 자본주의의 부패를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NYT는 이번 일과 향후 대응에 대해 디오르, 셀린느, 에르메스에 논평을 요청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LVMH의 커뮤니케이션 및 지속가능성 총괄 담당인 앙투안 아르노가 19일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에 따르면 그룹은 "모든 사람의 안전과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LVMH는 민간 경비 요원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폭력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에서 주요 학생 단체인 프랑스전국학생연합(UNEF)은 주말인 오는 24일 추가 시위를 예고해 놨다. '노란 조끼' 측도 같은 날 파리 도심에서 행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추가 폭동을 막기 위해 주요 도시 곳곳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더해 대통령궁인 엘리제궁, 샹젤리제·루브르 박물관 근처 같은 주요 관광지, 레퓌블리크 광장·바스티유 광장 등 주요 집결지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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