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24세 폴란드인 용의자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
집에선 부모·여동생 시신 발견…총기 11자루 압수

(서울·베를린=연합뉴스) 곽민서 기자 김계연 특파원 = 폴란드 당국이 22명의 사상자를 낸 크라쿠프 총격 사건을 테러로 간주하고 수사하기로 했다. 총기난사 용의자의 집에서는 그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시신 3구가 발견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폴란드 검찰은 사건 이튿날인 8일(현지시간) "총격으로 6명을 살해하고 경찰관을 포함한 다수를 살해하려 한 이 행위는 테러 범죄에 해당한다"며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전날 크라쿠프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폴란드에서는 이처럼 극단적인 테러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며 "사람들의 생명을 겨냥해 자행된 이 잔혹한 공격을 우리는 그렇게(테러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은 폴란드 국적 용의자 미하우 O(24)가 극우 사상에 빠진 것으로 파악했다. 마르친 키에르빈스키 폴란드 내무장관은 이 남성이 "매우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께 폴란드 제2의 도시인 크라쿠프 구시가지 중앙광장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6명이 숨지고 용의자를 포함해 16명이 다쳤다.

총격범은 중앙광장에서 차에 탄 채로 행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광장 내 여러 지점으로 검은색 스바루 차량을 몰고 이동하면서 각 지점에 정차할 때마다 자동 화기를 발사했다.
용의자는 군복 형태의 전투복과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군용 형태의 장총을 사용했으며, 차량에서는 다른 무기와 탄약도 다수 발견됐다.
목격자들이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영상과 사진에는 급박했던 현장 분위기가 그대로 담겼다.
행인들은 광장에서 달아나 인근 골목으로 몸을 피했고, 트램(노면전차) 창문은 총에 맞아 산산조각 났다.
현장에 출동한 응급 구조대원들은 거리에 쓰러진 피해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고, 폴란드 항공 의료구조대 헬리콥터가 광장에 착륙한 모습도 포착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즉각 대응 사격에 들어갔다. 총격범은 차를 몰고 도주하다가 다른 차량과 부딪히자 차에서 내려 경찰을 향해 총격했다. 용의자는 이 과정에서 총에 맞아 제압됐고 경찰관 2명도 총상을 입었다.
한 영상에는 경찰관 1명이 총격범을 향해 끝까지 총을 발사하다가 서서히 바닥으로 쓰러지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 6명에는 32세 영국인 남성과 51세 오스트리아인 여성 등 외국인 2명이 포함돼 있다.
부상자는 오스트리아·독일·포르투갈·러시아·영국 국적자 등 외국인 5명을 포함해 16명으로, 이 중 13명이 중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당국은 용의자를 제압한 뒤 크라쿠프에서 북동쪽으로 약 150㎞ 떨어진 오스트로비에츠에 있는 그의 집에서 부모와 여동생 등 가족 3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당국은 보안 위협을 우려해 드론으로 총격범의 집 내부를 살펴보다가 총상을 입고 숨진 가족 시신을 확인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집에서 가족을 살해한 뒤 아버지 소유 차량을 몰고 크라쿠프로 가서 추가로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용의자는 크라쿠프에서 범행 당시 AR-15 계열로 보이는 반자동 소총과 권총, 광학조준경 등을 갖고 있었다. 당국은 차량에서 4자루, 집에서 7자루 등 모두 11자루의 총기를 압수했다. 다니엘 프로코포비치 검찰 대변인은 확보한 총기 숫자가 용의자와 아버지에게 발급된 소지 허가 건수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총기 사건이 극히 드문 나라지만 최근 총기 소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구 3천700만명 중 약 41만1천명이 총기 소지 허가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발급된 허가 건수만 약 5만700건에 달했다.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은 8∼9일 이틀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희생자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또 용의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이날 의식을 되찾은 경찰관 2명에게 훈장을 주기로 했다.
우카시 기바와 크라쿠프 시장은 오는 11일까지 크라쿠프시 차원의 공식 애도 기간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참사 이후에도 크라쿠프는 방문객들에게 계속 개방될 것이라며 "광장은 다시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국가 폴란드는 살인사건 발생률이 프랑스의 절반에 불과할 만큼 서유럽에 비해 치안이 안정된 나라로 꼽혀 왔다. 크라쿠프가 속한 마워폴스키에주와 용의자 거주지인 시비엥토크시스키에주는 폴란드 안에서도 특히 신자가 많은 지역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전국 각지 학교에서 잇따른 흉기 난동으로 치안 우려가 고조된 가운데 발생했다. 일간 제치포스폴리타는 "폴란드가 안전의 섬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끔찍하게 종지부를 찍었다"고 논평했다.

최근 헌법재판소 주도권 다툼으로 극한 대립 중인 여야는 이번 사건을 두고도 정치 공방을 벌였다.
우파 민족주의 야당 법과정의당(PiS)의 프솀비스와프 차르네크 부대표는 용의자가 '극우 민족주의자'라는 내무부 발표에 근거를 공개하라며 "대중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스크 총리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호소한다. 이 비극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우파 정치권과 언론은 투스크 정부가 헌재 앞 시위를 막으려고 공권력을 대거 바르샤바로 옮겨 배치하는 바람에 이번 사건에 경찰 대처가 늦었다고 주장했다. 바르샤바에서는 오는 11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민족주의 진영이 주최하는 대규모 행진이 예정돼 있다. 올해로 17회째인 이 행사는 최근 몇 년 사이 극우 세력이 급성장하면서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ms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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