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최애숙 변호사, “32세의 늦은 나이에 고시공부 도전해 결국엔 변호사 됐죠”

입력 2017-06-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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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하이틴 잡앤조이 1618=정유진 기자]최애숙 변호사를 보면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사자성어 ‘대기만성(大器晩成)’이 떠오른다. 정화여상을 졸업해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최 변호사는 조금 더 안정적인 일을 하고 싶어 32세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새로 도전을 시작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였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면 일을 관둬야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p>어려운 가정 형편과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택한 건 사법고시 공부였다. 남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지만 최 씨는 고시공부에 도전한지 4년 만에 사법고시 1,2차를 모두 패스했다. 
<p>주변사람의 만류에도 30대 늦깎이 고시생활 시작
<p>1982년 정화여상을 졸업하고 바로 삼성물산에 입사한 최 변호사는 93년까지 11년 동안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는 6년차쯤 됐을 때 결혼 때문에 직장을 관두는 여자 동료들을 보고 “보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수없이 했다. 
<p>최 씨의 고민은 11년차가 될 때까지 계속됐지만 집안 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직장을 관둘 수 없었다. 하지만 마침내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최 씨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최 변호사는 “안정적이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싶었다.”며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도전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당시 최 변호사는 퇴사 이후 재취업 보다는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퇴사를 하고 보니 ‘나의 미래’가 불안정했다.”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금껏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치열하게 공부했던 기억이 없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p>그는 우선 가장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에 도전하고자 했다. 또 공무원에 대해 알아보던 찰나에 지인의 추천으로 법원행시를 접하게 돼 법원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p>최 변호사는 법원 공무원 준비를 위해 노량진 학원가로 직행했다. 그리고 최종 진로를 사법시험 도전으로 선회했다. 시험 보는 과목은 비슷한데 비해 법원행시보다 사법시험의 합격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법원행시는 2년에 10명을 뽑았고, 사법시험은 매년 1차만 1,000명씩 선발했다고 한다.  
<p>그가 사법시험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수록 주변사람들의 만류도 심해졌다. 특히 “상고 나와서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 무슨 사법시험 공부야”라는 편견이 불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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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고시 준비로 부친 임종도 못 지켰지만 불굴의 의지로 4수 끝에 합격
<p>최 변호사는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고시촌’의 대표 격인 신림동에 방을 얻었다. 아침에 일어나 민법을 학습하고 사법시험 중 선택과목인 제2외국어(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오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로 본인의 노력보다는 남편의 ‘외조’를 꼽았다. 최 변호사는 “내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의 8할은 남편의 아낌없는 지원”이라며 “학원에서 우연히 사법시험을 먼저 공부하던 남편을 만났는데, 그는 과목별 공부 방법을 알려줬을 뿐만 아니라 꼭 들어야 하는 강의까지 추천해줘 큰 도움을 받았다. 나에게 그는 과외선생님 이상이었다.”고 밝혔다. 
<p>법학 비전공자에 상고출신 고시생이라 처음에는 학원 강사들도 수업을 이해 못할까봐 우려했지만 최 변호사는 의외로 잘 적응했다. 그는 “막상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준비를 해보니 재미있었다.”며 “특히 법이 실생활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p>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공부에 한참 열을 올리던 도중에 위기가 찾아왔다. 두 차례 고배를 마시고 다시 도전한 고시생 3년차 1차 시험을 앞두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그는 “1차 시험날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임종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가족들이 시험을 목전에 둔 내게 말을 해주지 않아 아버지의 임종도 못 지키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죄책감과 회의감에 낙담에 빠진 최 변호사는 3번의 도전을 모두 실패하고 고시생활을 접은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을 접지 못한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각오로 네 번째 도전에 나섰고 1, 2차 모두 한번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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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승소’했을 때 가장 뿌듯함 느껴…
<p>남들보다 늦깍이 고시생으로 출발한 최 변호사는 의뢰를 받은 모든 사건이 소중하다. 특히 변호사 개업을 한 이후에는 승소했을 때 가장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그는 “하나의 사건이 길게는 2년 정도 시간이 걸려 마무리 될 때가 있는데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사건일수록 뿌듯함이 더 크다.”며 “민사사건보다 당사자의 유·무죄를 다루는 형사사건에서 승소했을 때 더욱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p>최 씨는 다양한 사건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법률 상담을 하고 있지만 변호사만이 갖는 고충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소송과정에서 의뢰인이 변호인에게 사건에
<p>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를 해 줘야만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근거를 추릴 수 있다.”며 “의뢰인이 변호사를 믿지 않고 충분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상대편에게 약점을 잡히고 잘 되던 재판이 역전돼 패소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p>최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을 ‘사람과의 소통’으로 꼽는다. 그는 “변호사는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바탕에는 항상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며 “의뢰인의 입장에서 사건에 몰입해야 핵심근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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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인생은 정해져 있지 않다”
<p>최 변호사는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으로 강사로 활약하는 등 일약 유명인이 됐다. 최근에도 모교인 정화여상을 찾아 ‘꿈과 진로’라는 주제로 후배들에게 강연을 했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보다 전문적인 변호를 하기 위해 심리학 공부를 계획하고 있다. 정확한 상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의뢰인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p>건강관리에도 열심이다. 과중한 업무를 견디려면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육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요즘은 먼 훗날 불현듯 찾아올지도 모르는 치매 예방을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인생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최 변호사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p>jin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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