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정직원->TV 아나운서 거친 예술의전당 ‘늦깎이’ 신입

입력 2017-09-20 11:08   수정 2017-09-21 09:10


[욜로 라이프] 이민재 예술의 전당 홍보마케팅부 사원

[캠퍼스 잡앤조이=강홍민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 “이직 할 때마다 연봉이 깎였어요. 현재로선 첫 직장이 가장 높았죠.(웃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제가 선택한 길이고 현재 제 일에 만족스럽거든요.”

지난 5월 국내 대표 복합 예술 공간인 예술의전당 홍보마케팅부 막내로 입사한 이민재(32)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클래식 공연기획사 인턴을 거쳐 대기업 신입사원, 아나운서, 그리고 다시 신입사원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소위 잘 나가는 아나운서에서 늦깎이 신입사원이라는 의외의 선택에 문득 ‘왜’라는 물음이 앞선다. 



중고 신입 ‘이민재’입니다

신입사원이라기엔 나이도 많고 경력도 화려한 이 씨의 선택은 최근 어려운 취업난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경력과 경험을 포기한 채 새로운 분야를 선택한 그는 신입이지만 그간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처음엔 방송을 하다가 사무직을 하면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했는데, 다행히 홍보·마케팅 업무가 저에겐 잘 맞아요. 홍보담당이라 기자간담회 등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업무가 많은데 아나운서 경험이 오히려 도움이 되요.(웃음)”

이 씨가 분야와 직급을 바꾸면서까지 이직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1, 2학년 방학 동안 클래식 공연 전문 기획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된 이 씨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대학 때 클래식 공연 기획을 하는 회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공연 포스터도 뿌리고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죠.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클래식과 가까워졌고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긴 했는데 인턴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에 더 푹 빠졌죠. 클래식을 듣다 보니 공연이나 전시 같은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대기업 그리고 아나운서, 다시 신입사원으로




짧은 인턴생활을 마치고 취업의 길로 들어 선 이 씨는 운 좋게도 대기업 마케팅팀 인턴사원을 거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곳이었지만 이 씨에겐 맞지 않는 양복과도 같았다. 

“인턴으로 근무하다 정사원이 된 케이스라 제 스스로가 준비가 덜 된 느낌이었어요. 사회생활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마음의 준비도 안 된 터라 힘들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과도한 업무도 아니었는데 조직에 적응을 못했던 거죠.”

입사 1년 만에 사표를 낸 이 씨는 문득 인턴 합격 후 공백 시간에 다녔던 아나운서 아카데미가 떠올랐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프레젠테이션 할 일도 많겠다 싶어 잠시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닌 적이 있었어요. 퇴사를 하고 나니 문득 그때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아카데미에 들어갔죠.”







이민재 씨가 아나운서 시절 활동하던 모습

이 씨는 6개월 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KCTV(제주방송) 아나운서에 합격했다. 연고가 전혀 없는 외로운 타지 생활이 예고돼 있었지만 그간 들인 노력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에 만족했다. 

“준비한 것에 비해 빨리 합격했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셨어요.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둔 것도, 먼 타지 생활도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부모님께 아나운서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진중하게 말씀드렸더니 결국 응원해 주셨죠.”

2013년 3월, 제주도로 내려간 이 씨의 제주 라이프는 만족스러웠다. 누구나 꿈꿔오던 생활에 뉴스는 물론 퀴즈, 건강, 스포츠 중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 실력도 나날이 늘었다. 

“정말 많은 프로그램을 경험했어요. 뉴스부터 스포츠 중계, 예능까지 하면서 방송 실력이 늘었죠. 보통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 채용하는데 제주방송은 정규직이라 고용도 보장됐고요. 그리고 방송이 없는 날엔 제주도 곳곳을 다녔어요. 제가 다닌 제주 여행지를 파일로 정리해 친구들에게 보내주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씨의 제주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무언가에 대한 갈증에 1년간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이 씨는 보도채널인 ‘연합뉴스TV’의 아나운서로 이직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좋아하셨어요. 제주방송은 인터넷으로 방송을 찾아보셨는데 연합뉴스는 텔레비전을 틀면 바로 나오니까 자주 모니터링을 해주셨죠. 친구들도 방송 잘 보고 있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죠.” 

하지만 그곳에서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연합뉴스TV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뉴스를 하는 이 씨의 목에 작은 통증이 찾아왔다. 소리를 낼 때 무언가 목 걸림이 느껴지고 통증도 뒤따랐다. 병원을 가봤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더 악화되자 시청자 게시판에 듣기 불편하다는 항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씨에겐 갑자기 찾아온 날벼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 내는 게 힘들어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안 나오더라고요. 게시판에 항의 글이 올라올 땐 정말 힘들었어요. 회사에선 치료를 위해 두 달 간 병가를 내라고 배려를 해줬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목이 낫질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됐죠.”

원인 모를 병으로 회사까지 그만 둔 이 씨는 쉬는 동안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뭘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원과 아나운서의 일도 보람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 왠지 모를 답답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인턴 시절 경험한 클래식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피아노를 전공하셨고, 아버지께서도 취미로 바이올린을 연주하시거든요. 저도 어머니의 영향으로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요. 그래서인지 클래식이 저에겐 익숙해요. 뭔가 편안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대학 때 인턴 경험을 살려 클래식이나 공연, 전시를 다루는 직업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아나운서 경험 살려 클래식 라디오 디제이가 꿈

퇴사 후 이 씨의 건강은 회복됐지만 아나운서의 길을 다시 택하지 않았다. 인턴 때 맛본 공연과 문화 콘텐츠 홍보라는 업을 삼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지난 5월, 예술의전당 홍보마케팅부 중고 신입으로 입사한 그는 새로운 업무인 공연과 전시에 푹 빠져 있다.   



“얼마 전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님의 연주를 들었는데 큰 감동이었어요. 70세가 넘는데도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걸 보니 존경스러웠죠. 클래식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럴 땐 지휘자의 움직임에 따라 곡이 변하는 걸 지켜봐도 재미있어요.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 한 명 한 명의 프로필을 보면서 그 사람의 연주를 유심히 보는 것도 연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요.”

20대부터 30대로 넘어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이 씨. 선택의 기로에선 후회는 없었을까. 

“저의 선택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제 인생 모토가 방향만 잘 잡았다면 어떤 경험이라도 해보는 것이 좋다고 믿거든요. 그러면 언젠가 제가 원하는 목표에 도착해 있을 테니까요. 나중엔 아나운서의 경험을 살려 클래식 라디오 디제이를 꼭 해보고 싶어요.(웃음)”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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