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왕의 끝없는 여성편력…그 바람기를 잠재운 것은 세월뿐

입력 2013-01-25 16:44   수정 2013-01-25 22:21

스토리&스토리 - 예술가의 사랑 (35) 헨리크 입센



오스트리아 남(南) 티롤의 여름 휴양지인 고센자스의 한 호텔 식당. 저녁을 먹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극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헨리크 입센(1828~1906)이 그곳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독일 뮌헨에 살던 그는 바쁜 일상사에서 벗어나 여름 휴양차 고센자스를 방문했다.

식당의 손님 중에는 두 명의 매력적인 젊은 여인이 있었다. 이들은 이 지적인 명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했다. 입센은 60세가 넘은 노인이었지만 여전히 중년 못지않은 원숙미를 뽐내고 있었다. 두 여인의 입센에 대한 관심은 로맨틱한 감정에서 출발한 것이라기보다 극작가로서의 빛나는 명성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파트너가 될 행운은 오직 한 여인에게만 주어지는 듯했다.

입센은 노년에도 늘 딸뻘의 젊은 여인들과 만남을 즐겼다. 젊음의 싱그러움과 미래에 대한 티 없는 열망을 통해 노쇠해가는 자신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매혹적인 젊은 여성을 찾는 데 혈안이 됐다.

고센자스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이곳은 그가 말년에 사랑한 ‘세 공주(Three Princesses)’ 중 두 명을 만나게 되는 의미 있는 장소였다. 식사를 하면서도 그의 더듬이는 예외 없이 바쁘게 가동되고 있었다. 그의 레이더에 걸려든 것은 에밀리에 바르다흐와 헬레네 라트였다. 그러나 두 여인을 모두 취할 수는 없는 법. 입센은 고심 끝에 좀 더 관능적 매력을 발산하는 에밀리에를 선택했다. 18세의 에밀리에는 빈 출신의 아름다운 아가씨로, 우수어린 표정과 귀족적 품위로 입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며칠 뒤 입센은 자신을 위해 마련된 행사에 참석한 에밀리에를 발견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건넸고, 에밀리에도 이 명사와의 대화를 즐겁게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입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아가씨의 감정적 널뛰기에 시달리면서도 그 비밀스러운 매력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두 사람은 곧 서로 사랑을 고백했고 호텔 주변에는 두 사람이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불과 며칠 만에 파국을 맞았다. 에밀리에가 입센의 부인 자리를 탐냈기 때문이다. 입센은 화들짝 놀라 한 발짝 물러섰고, 에밀리에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휴양을 마치고 뮌헨으로 돌아온 그는 뜻밖에도 집 근처에서 헬레네 라트와 만나게 된다. 두 번째 공주의 출현이었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 만남은 헬레네의 용의주도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저명 작곡가의 딸인 헬레네는 문학과 미술에 상당한 재능을 지닌 24세의 지적인 여성이었다.

그러나 입센을 알아보는 ‘감시자’로 가득한 뮌헨에서 입센이 헬레네와의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란 그에게 위험천만했다. 처음에는 연인으로 다가섰지만 그는 이내 눈물을 머금고 딸처럼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사려와 분별이 있는 뮤즈를 곁에 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헬레네는 그와 어떤 주제를 놓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총명했고,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헬레네를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1891년 여름 고국 노르웨이로 피서를 간 입센은 아예 그곳에 눌러앉아 버린다. 오슬로에 정착한 그는 헬레네와 자주 편지를 교환하긴 했지만 옆에 있어줄 상대가 아쉬웠다. 세 번째 공주가 필요했던 것이다. 때마침 친구의 딸이자 27세의 피아니스트인 힐두르 안데르센이 다가왔다. 힐두르는 입센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둘은 1891년 8월에 만나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입센은 극장, 음악회, 전시회는 물론 강연하러 갈 때도 늘 그녀를 대동하고 다녔다. 당연히 두 사람이 뜨거운 사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둘의 관계는 입센이 심장병으로 더 이상 외출할 수 없을 때까지 장장 9년간 지속됐다. 그가 1892년 발표한 ‘위대한 건축가’의 여주인공 힐데의 모델이 힐두르였다.

젊은 여인에 대한 입센의 포식자 같은 태도는 자주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인형의 집’ ‘민중의 적’ 등 작품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했던 그의 태도에 비춰볼 때 상당히 위선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바람기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세월뿐이었다. 1901년 심장병 발병 이후 입센은 두문불출, 병상에서 5년을 뒤척이며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여성편력은 지나쳤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 말년의 역작 또한 나오기 어려웠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명작과 사랑은 정말 함수관계인 것일까.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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