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특별기획] 불황땐 저금리 정책 안 먹혀…'재정확대'가 답

입력 2013-02-18 17:32   수정 2013-02-18 23:14

<2부> 박근혜 정부의 과제 (1) '日 최대 싱크탱크' 노무라종합연구소의 5대 苦言

최악 상황 대비 '금융붕괴 시나리오' 짜고…국민연금 개혁 등 '정책 타이밍' 잘 골라야
중소·중견기업 육성해 불황 내성 다지고…장기적 시각으로 '정책 일관성' 유지 필요



“한국도 대차대조표 불황으로 가고 있다.”

일본 최대 경제 싱크탱크인 노무라종합연구소의 리처드 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대차대조표 불황’은 오랫동안 일본 경제의 침체를 설명할 때 사용돼 온 표현이다. 일본 기업들이 1990년대 초반 대차대조표상의 대변(자본·부채) 항목의 부채는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차변에 있는 자산(부동산) 가격은 계속 떨어져 균형이 깨지자 빚(부채)을 줄이려고 투자하지 않으면서 경기가 더 나빠진 것을 말한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이 쿠 수석이코노미스트였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집값 하락으로 담보 가치가 적어져 은행으로부터 대출 상환 독촉을 받는 ‘하우스 푸어’들이 소비하지 못해 경기가 하락하는 모습이 20년 전 일본과 닮았다고 분석한 것이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한국 경제 전문가인 사사키 마사야 이코노미스트도 “한국 경제는 거품이 꺼지고 난 직후의 일본 경제와 비슷한 상황”이라며 “경제주체들이 빚을 갚는 데 주력하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점점 활력을 잃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사사키 이코노미스트는 “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정책을 쓴다면 일본식 불황을 피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최대 싱크탱크인 노무라종합연구소가 한국의 새 정부에 던지는 고언(苦言)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돈 풀어 경기 부양하라

한국은행은 작년 7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렸다. 금리가 낮아지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줄어 소비 여력이 늘어난다. 이것이 경기를 살릴 수 있을까? 노무라의 대답은 ‘노(No)’다. 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대차대조표 불황기에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재정을 통한 부양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거품 붕괴 후에도 어쨌든 소폭이나마 성장한 것은 315조엔의 재정 지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사사키 이코노미스트도 “금융회사에는 돈이 넘치고 금리도 낮지만, 부채 증가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져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없다”며 “통화정책에 의존하지 말고 재정을 써서 경기 불씨를 살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1997년 긴축정책을 쓰는 등 소극적 재정정책으로 불황을 키웠다”며 “반대로 돈을 풀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경기부양이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재정적자는? 사사키 이코노미스트는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재정을 푼다고 하우스 푸어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등의 방법을 쓰라는 뜻은 아니다”며 “공공투자를 늘리고 기업에 대한 세금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는 등 간접적으로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2)  금융 붕괴에 대비하라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도 위기를 겪는다. 일본은 대부업체부터 시작해 주요 증권사, 보험사, 은행이 순차적으로 쓰러진 경험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부동산 금융을 주로 벌였던 주택금융전문회사(住專)의 부실이 가시화돼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고, 1997년에는 산요증권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 등 대형 금융사가 잇따라 무너졌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아직 은행들의 충격 흡수 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낙관론에 안주하지 말고 거품 붕괴 충격이 이중 삼중으로 발생할 때 닥쳐올 수 있는 ‘금융 붕괴’ 상황에 대비해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는 게 노무라의 조언이다. 구제금융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금융사 자본 확충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등을 미리 준비하라는 것이다. 사사키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금융회사들이 쓰러진다면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어떻게 위기가 옮겨갈지에 대해 사전에 시나리오를 세워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3) 타이밍을 놓치지 마라

어떤 정책을 쓰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꼭 필요한 개혁을 정치적 부담 때문에 늦추는 것은 곤란하다. 사사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 사회보험 제도가 인구 고령화를 못 따라간 게 문제였다”며 “사회보험 제도의 개혁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도 국민연금제도 등의 개혁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납입액을 늘리는 것은 경제활동 인구에 부담을 줄 수 있지만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늘어난 사회복지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게 박근혜 정부의 큰 숙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4) ‘강소기업’을 키워라

일본은 기술력이 강한 중견·중소기업이 많다. 이들은 산업의 탄탄한 허리가 돼 장기 불황에도 일본 경제를 어느 정도 떠받쳤다. 하지만 한국의 중소기업은 일본에 비해 크게 취약하다. 스스로 연구·개발(R&D)할 역량이나 인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을 듣는다.

노무라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사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에선 중소기업에 우수 인력이 가지 않고, 대기업에서 퇴직한 사람들도 중소기업에 가기보다는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이 일본에 비해 가장 부족한 것은 중견·중소기업 층이 약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대기업만으로는 불황 시대에 고용과 내수를 지탱할 수 없다”며 “중소·중견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5)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마라

노무라의 마지막 조언은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라’였다. 사사키 이코노미스트는 “모든 정책이 단기적으로 성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며 “단기 성과를 보고 성급히 판단하면 안 된다”고 했다. 큰 풀무(효과가 큰 정책)를 움직여 뜨거운 바람을 화덕에 불어넣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2006년부터 해마다 총리가 교체돼 매년 중·장기 경제정책이 바뀌었다”며 “이런 일관성 없는 정책이 일본의 장기 불황을 부채질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노무라종합연구소는
1965년 설립…年 1200여건 컨설팅

노무라종합연구소(NRI)는 1965년 일본 최초의 민간 싱크탱크로 출범했다. 일본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고, 서울 등 세계 주요 지역에서 650여명의 전문가가 근무하고 있다. 연간 1200건 이상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리처드 쿠 수석이코노미스트(59)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존스홉킨스대를 졸업한 뒤 뉴욕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다. 1984년 노무라로 옮긴 뒤 일본 경제 불황에 관한 보고서를 잇따라 내며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정받았다. 대표 저서는 ‘대침체의 교훈’이다.

노무라의 미래창발센터 소속 사사키 마사야 이코노미스트(38)는 오사카의 산와은행 등에서 근무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 2013 한국 경제 대예측’ 저술에 참여하는 등 노무라 내에서 한국 경제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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