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오일머니 복지에 '펑펑'…국가에 손벌리는 국민 만들어

입력 2013-03-15 11:24  

지난 5일 사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58)은 조국에 어떤 명암을 남겼을까? 14년간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만큼 그의 통치 방법에 대한 찬반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의 죽음을 통곡하는 국민이 있는가 하면 환호성을 지르는 국민도 많다. 차베스가 떠난 베네수엘라의 미래는 오늘을 진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석유사회주의 경제의 딜레마 

베네수엘라 경제력은 석유에서 나온다. 세계 최대 매장량과 세계 3위 산유량을 자랑한다. 한국은 자동차 선박 반도체 석유화학제품 등을 열심히 만들고 수출(2011년 수출액 5560억달러)해서 외화를 벌어들이지만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로만 연간 외화의 95%(900억달러)를 벌어들인다.

차베스는 1998년 집권하면서 ‘석유사회주의(oil socialism)’를 선언했다. “석유는 국민의 것”이라며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던 석유회사를 국유화했다. 차베스의 석유정치와 석유외교의 서막은 이때 올랐다. 차베스 정부는 돈에 관한 한 걱정이 없었다. 정부 예산의 50%를 국유화한 석유판매 대금으로 충당했다.

차베스는 가난한 나라의 유권자 마음을 잡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막대한 예산과 통치자금을 빈민지역 무료병원과 무료학교, 무료의료 등 빈민 복지에 썼다. 이를 통해 차베스는 빈민층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외국 자본과 일부 계층에게만 혜택을 준 오일머니(oil money)를 복지에 쏟아부은 전례는 베네수엘라엔 없었다. 이로 인해 차베스 집권기간 극빈층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 같은 소득분배 정책으로 베네수엘라의 지니계수는 2011년 기준으로 0.39에 불과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소득격차가 적은 것을 의미한다.

#차베스 1인에 의한 정치

베네수엘라 정치는 차베스에 의한 정치라고 부를 만했다. 석유국유화 등 경제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차베스는 절대권력이 필요했다. 1998년 대통령이 된 뒤 2000년 임기 6년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을 단행했다. 임기가 만료돼 오자 2006년 차베스는 연임 규정을 없애는 국민투표를 두 번이나 실시해 두 번째 투표에서 연임 철폐를 이뤄냈다.

권력을 공고히 한 차베스는 남미 반미(反美)전선을 이끄는 아이콘이 됐다. 이 전선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그는 석유를 이용했다. 쿠바 등 17개 카리브해 연안국가에 원유를 싼값으로 공급했다. 해마다 70억달러가 지원됐다. 쿠바에만 연간 10만배럴씩 연간 30억~40억달러어치를 줬다. 브라질 삼바축제, 멕시코 빈민 눈수술에도 오일달러를 보냈다.

이를 통해 그는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국가를 철저하게 배격했고 오일머니로 조성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볼리바르 동맹을 내세워 미국과 대척점에 섰다. 미국땅 뉴욕 유엔총회에서 공개적으로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미국과 서방을 상대로 싸우는 차베스의 모습은 “베네수엘라는 자립적이다” “자부심을 느낀다”는 반응을 이끌어 내며 신(神)이 되어 갔다.

차베스가 남긴 유산은 겉보기엔 화려하고 선하지만, 이면을 보면 베네수엘라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평가를 듣는다. 부유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국민의 50%가 빈곤층이다. 오일머니로 빈민구제에 나섰지만 국가복지의존형 국민만 양성했다는 지적이다. 국가가 물고기를 직접 잡아줬을 뿐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지도 않았고, 국민 스스로도 그 방법을 터득하려 하지 않았다.

과도한 복지에 예산이 대부분 들어가다 보니 재정압박도 심해졌다. 복지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됐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육박할 만큼 심각해졌다.

#'한강의 기적'은 없다 차베스는 누구인가

또 스스로 먹고사는 중산층을 길러내지도 못했고, 미래 세대를 먹여 살릴 산업기반이나 기술력도 확보하지 못했다. 경제개발을 위해 비록 독재를 했지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미래 산업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박정희 대통령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대목이다.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베네수엘라보다 원천자원이 하나도 없는 한국이 더 잘사는 차이이기도 하다.

차베스는 필요할 때마다 국민투표나 개헌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증받는 일종의 국민투표-독재체제로 향했다.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체제의 권력자들은 정치와 경제독재를 위해 국민투표나 선거라는 합법성을 갖췄다. 차베스는 국민의 소득(복지) 등 모든 분야를 결정해야 했고 더 많은 권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경제효율성이 떨어지고 각 개인의 창의성과 근면성을 없앤 것도 차베스가 남긴 유산이다. 14년간 국가보호에 길들여진(국가에 의해 통제된) 국민들이 요구할 것은 뻔하다. 일할 자유와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더 많은 현금 지원을 향한 ‘노예의 길’이다. 사회주의자 차베스가 떠난 베네수엘라의 미래는 녹록지 않다. “국가가 지상지옥이 된 것은 국가를 지상천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F Hoelderlin)”는 말이 베네수엘라에 적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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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는 미국의 졸병”… 기행·독설로 악명

차베스는 누구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차베스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에 기행과 독설로 많은 화제를 뿌렸다. 그에게 미국 대통령과 미국 지도자, 친미 성향의 남미 지도자들은 조롱과 비난의 먹이거리였다. 그는 2006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악마가 어제 여기 왔었다. 아직도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악마는 전날 같은 장소에서 연설한 부시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는 2009년 유엔총회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조롱했다. “사회주의편에 와서 ‘악의 축’에 합류하라”는 농담을 했다.

차베스의 독설은 이전에도 있었다. 2005년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을 미국의 강아지에 비유해 외교 갈등을 빚었다. 2007년에도 친미 콜롬비아 정부를 “불쌍한 미국 제국주의의 졸병”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발언은 결국 2010년 콜롬비아와의 외교 단절 사태로 악화됐다.

그의 튀는 행동은 1999년 이미 나타났다. 집권 초기였던 1999년 5월 그는 매주 일요일 오전 ‘알로 프레시덴테’(안녕하세요 대통령님)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평균 5시간이나 연설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 연설에서 콜롬비아 국경에 탱크를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려 국방장관을 당황시킨 적도 있다.

이런 지도자는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참지 못하는 성향을 지닌다. 2001년 자신을 비난한 언론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해 ‘언론의 정치비판 금지’ 판결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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