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장사 좀 된다 싶으니…임대료 폭탄에 밀려나는 가로수길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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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4-26 17:15   수정 2013-04-26 21:40

[경찰팀 리포트] 장사 좀 된다 싶으니…임대료 폭탄에 밀려나는 가로수길 상인들

대형 브랜드 몰리며 월세 급등…

유명 브랜드·프랜차이즈 등…자본력 앞세운 대형 업체 몰려
월세 4년새 3배나 올라

환산보증금 대부분 3억 넘겨… 임대차보호법 적용 못받아
특색있는 카페·작은 식당들…"애써 상권 키웠는데 …" 한숨




#가로수길에서 M일식집을 운영하는 조모씨는 2010년 G빌딩 1층 상가를 임차해 장사를 시작했다.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250만원. 1억6000만원을 더 들여 내부 인테리어를 마쳤다. 일본에서 직접 배워온 조 사장의 ‘감자고로케’ ‘해물파스타’ 요리는 입소문을 탔고 M일식집은 가로수길의 맛집 명소로 자리잡았다. 1년 뒤 건물주는 월세를 265만원으로 15만원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조씨는 일식집이 자리를 잡아가던 터라 선뜻 계약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보호를 받으려면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3억원 이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월세 15만원을 올려주자 환산보증금이 3억500만원(보증금 4000만원+월세 265만원×100)으로 커져 법상 보호 대상에서 제외돼 월세 인상상한폭(9%)도 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건물주는 이듬해인 지난해 월세를 350만원으로 올린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월세를 주면 도저히 이윤을 남길 수 없다고 판단한 조씨는 권리금을 한 푼도 못 받고 장사를 접었다.

2005년부터 유럽풍의 소규모 카페와 주방장의 고집이 묻어나는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서울 강남의 새로운 문화거리로 떠오른 가로수길. 이곳에서 상가를 빌려 장사하는 상인들이 신음하고 있다. 최근 2~3년 새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계열 의류매장과 전문커피점들이 앞다퉈 진출하면서 임대료가 급상승, 터줏대감 격인 임차 상인들이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건물주 입장에선 더 많은 보증금과 월세를 주는 유명 브랜드의 입점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임대차보호법으로 보장된 5년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법의 허점을 이용해 소상인들을 내몰고 있다는 점에서 빈축을 사고 있다. 임대차보호법에는 환산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임차인에 한해 5년간 임대계약 갱신이 보장된다. 하지만 가로수길 상가에 대한 수요가 넘쳐 보증금과 월세가 뛰어 환산보증금이 3억원을 웃돌면서 2~3년 만에 인테리어비용과 권리금을 못 챙기고 건물을 비워주는 상인이 늘고 있다.

○밀려드는 유명 브랜드…임대료 4년 새 3배

가로수길은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부터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 큰길 맞은편까지의 대로변을 일컫는다. 최근 2~3년 사이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해외 의류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음식점, 각종 커피전문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대기업 중 가장 먼저 가로수길에 둥지를 튼 곳은 LG패션이다. 2009년 질스튜어트, TNGT, 편집숍 라움을 열면서 자리를 잡았다. 최근에는 옛 미래희망산부인과 건물에 직수입 편집숍 칼라를 개장했다. 제일모직은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매장을 열고 있다. 일모아울렛 이후 올해초 띠어리 플래그십숍을 마련했고 제조 직매형 의류(SPA·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 1호점도 개장했다.

상가 수요가 늘면서 이 지역 상가 권리금과 월세, 임대료도 치솟고 있다. 26일 인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용면적 66㎡(20평) 기준 가로수길 점포의 월 임대료는 800만~1000만원 선으로 2008년 초 300만~350만원의 3배가량이다. 상권의 가치를 말해주는 권리금도 4억~5억원 정도로 1억7000만~2억5000만원이었던 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뛰었다. 가로수길 뒤쪽 골목 안 건물은 보증금·권리금을 합해 3억원, 월세는 300만~500만원 선까지 올랐다. 가로수길에서 5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다 월세 인상을 견디지 못하고 장사를 접은 김모씨는 “아무것도 없던 가로수길에 들어와 이만큼 일궈놨더니 돌아온 건 건물주의 나가라는 통보뿐”이라며 한숨 지었다.

○“월세 인상 과도” VS “수요 많은데 인상 당연”

조씨 외에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임대차보호법으로 또 다른 피해가 생기고 있다.

2009년부터 이곳에서 L커피숍을 운영해온 김모씨는 환산보증금이 2억4000만원이다. 5년 동안 장사를 보장받은 셈이다. 하지만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건물을 비워 달라고 요구해 꼼짝없이 나왔다. 현행법상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5년 계약 갱신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더라도 임차인에게 이를 알릴 의무도 없다.

심지어 건물주는 김씨가 나가 달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차량으로 카페 입구를 막고, L커피숍 바로 옆에 15000원짜리 저가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숍을 열어 지인에게 운영을 맡기는 방법으로 영업을 방해했다. 김씨는 “우리집 장사를 망하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쓰더라”며 “너무 지쳐서 장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건물주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임대료가 상승했는데 기존 상가 임차인들에게 월세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가로수길의 한 건물주는 “월세를 많이 주는 임차인에게 임대를 주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가로수길처럼 어느 지역이 명소로 바뀌면 패션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임대료가 오르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압구정 로데오거리, 홍대거리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법무부·중소기업청, 임대차보호법 손질키로

상가 투자정보 업체인 에프알인베스트먼트가 최근 서울시내 67개 주요 상권에 있는 1층 점포 5206개의 임대료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73.7%인 3838개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적용 범위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환산보증금 3억원 이하)은 26.3%에 그쳤다. 가로수길이 있는 신사역 주변은 4.1%만 보호 대상이었다. 명동과 인사동은 법의 보호를 받는 점포가 한 곳도 없었다. 강남구청역(1.8%), 압구정역(1.8%), 교대역(3.1%), 문정동로데오거리(4.8%), 종로관철동(6.9%), 강남역(8.0%), 신촌역(9.0%) 등도 10% 미만으로 조사됐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소상인을 보호하려는 입법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종명 변호사는 “권리금 제도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임대차보호법을 적용받는 임차인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환산보증금 상한액을 높이고 현재 5년인 계약보호기간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중소기업청은 내년 1월 법 개정을 목표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진흥원은 임대차 계약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조사원 250명을 채용해 다음달까지 실태조사를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이다.

노화봉 소상공인진흥원 조사연구부장은 “법무부와의 협의를 통해 환산보증금, 월세 인상액 상한, 임차인 보호기간 등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문제점을 분석 중”이라며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 전문가 그룹에 자문해 개정안을 마련, 관련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 부장은 또 “법무부 산하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상가 재건축·철거때도 임차인 권리 보호 못받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적용 대상을 어디까지로 설정하느냐다. 현재 서울지역 기준으로 환산보증금 3억원 이하인 임차인만 보호받을 수 있다.

임윤수 서일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영세 상인을 보호한다는 법률 취지에 비춰 환산보증금을 무한정 올릴 수는 없다”며 “대신 월세에 곱하는 환산수치를 현행 100에서 50으로 조정하면 보증 상한을 큰 폭으로 올리지 않고도 영세상인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남주 변호사는 “보증금 액수를 기준으로 하는 방식은 임대료 변화에 따라 제때 개정하기 힘들다”며 “환산보증금 액수로 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 발의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도 보증금 액수 기준 폐지가 골자다. 임대보증금에 따른 적용 범위를 환산보증금 액수로 제한하지 않고, 사행업소 및 유흥업소나 국가, 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을 제외한 모든 상가임대차 계약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또 다른 쟁점은 건물주가 상가건물을 재건축하거나 철거할 때다. 현행법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 김남주 변호사는 “계약 갱신 가능 기간에 철거 또는 재건축을 하는 것은 임차인에게 임대인이 예기치 않은 손해를 끼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보상을 마친 뒤 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며 “재건축 인허가를 받고 임차인을 내보낸 뒤 실제로 착공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건물주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 말고는 근본적 대책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가에서 저리 금융을 제공한다거나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 건물주에게 임차인을 쫓아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영세 상인들의 상가 임대 보호를 목적으로 2001년 12월 제정된 법.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방지하고 세입자들의 안정적인 생업 종사를 돕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업자등록 대상인 영업용 건물의 임차인 가운데 환산보증금이 일정 금액 이하여야 법의 적용을 받는다. 서울에선 환산보증금 3억원 이하인 상가임차인이 적용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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