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호텔 결혼식은 가족 회식자리? 아내·딸 둘까지 대동 '남는 장사'

입력 2013-05-06 17:09   수정 2013-05-07 01:53

5월은 지갑 털리는 달
축의금 봉투 꺼내 넣었는데, 순간 손 떠나는 봉투엔 '부의'란 글씨가…

왜 호텔에서 하니?
축의금 얼마내야 할지부터 고민…봉투만 주고 근처식당서 식사도

냈던 축의금 다 회수할래
'독신선언' 초대장보내 지인 초대…혼자 잘 살테니 축하해달라




김 과장, 이 대리들에게 가정의 달 5월은 잔인한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로 이어지는 기념일에 선물이나 봉투가 필요한 데다 지인들의 결혼 청첩장도 예기치 않게 줄을 잇는다. 정해진 월급에서 축의금, 부의금이 나가고 나면 지갑 사정은 더욱 얇아진다. 가까이 지내는 이들의 결혼에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래도 한번에 최소 5만원씩 통장에서 빠져나갈 때면 마음 한쪽이 왕창 베이는 기분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나마 친분이 있는 이들의 결혼식은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다. 문제는 딱히 친하지도,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닌 경우다. 결혼식에 참석해야 할지, 축의금은 얼마나 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다. 부의금은 더하다. 남의 집안에 생긴 가슴 아픈 일에 주머니 사정을 따지는 자신이 밉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내 지갑의 두께가 더 중요한 것을.

직장인들의 이 같은 고민은 통계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 가구의 ‘가구 간 이전지출’은 월평균 20만7310원으로 전년의 20만8709원보다 0.7% 감소했다. 이전지출엔 현금이 오가는 축의금·부의금 같은 경조사비와 부모에게 보내는 용돈 등이 포함된다. 이전지출이 줄어든 것은 가계 동향조사를 전국으로 확대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통계청에선 “2004년을 제외하고 매년 증가세를 보여온 경조사비가 줄어든 것은 그만큼 경조사비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가구가 늘었다는 뜻”이라고 귀띔했다.

○호텔 결혼 축의금은 얼마로?

삼성 계열사에서 일하는 A대리는 지난달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들의 점심 식사비만 1인당 15만원이라 부담이 됐지만,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인 데다 사업하는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 호텔 결혼식을 추진했다.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뿌릴 때도 결혼식은 안 봐도 되니 식사라도 하고 가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난 뒤 축의금을 정산하면서 마음이 크게 상했다. 직속 상사인 B과장이 축의금 5만원을 내고 두 아들까지 데리고 와서 식사했다는 걸 알고 어이가 없었다. 옆 부서 C과장은 두 딸과 부인까지 대동해 밥을 먹고 갔지만 축의금은 역시나 5만원이었다. A대리는 “비싼 호텔 결혼식에서 가족 외식을 해결하고 가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며 “회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하객들도 할 말이 있다. 밥값이 비싼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식사했다고 욕하는 것은 심하지 않으냐는 지적이다. 때문에 호텔 결혼식에선 축의금만 내고 아예 식사를 하지 않고 나오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신세계 계열사의 D과장은 지난 4일 최고급 호텔에서 예식을 치른 직장 후배 결혼에 축의금을 5만원으로 할지, 10만원 할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주말이라 아내와 함께 식사하고 싶지만 호텔 결혼식에 5만원만 내고 2인분 식사를 해결하기엔 미안했다. D과장은 결국 축의금만 내고 호텔 근처 식당에서 따로 외식했다. 그는 “결혼 축하하러 갔다가 밥값 고민에 빠지는 게 씁쓸하다”고 했다.

○축의금 회수파티도 등장

차라리 지인들이 축의금을 주고받는 ‘두레’ 관습의 고리를 끊자는 김 과장, 이 대리들도 적지 않다. 출판기획 일을 하는 30대 후반의 여성 H씨는 요즘 ‘축의금 회수 파티’를 기획 중이다. 남자 동창은 많지만 하나같이 유부남인 데다 소개팅을 해도 애프터 신청이 갈수록 줄고 있어 결혼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때문에 결혼을 못할 바에야 그동안 뿌려둔 축의금이라도 회수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독신 선언 기념 축의금 회수 파티’ 준비에 바쁘다. 가까운 지인 50여명을 초대해 ‘혼자라도 잘 살아볼 테니 와서 축하해주고 인생 자금 좀 보태라’는 콘셉트의 파티다. H씨는 “요즘 초대장 문구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전했다.

잡지사 에디터 M씨는 최근 특이한 청첩장으로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유명인이 됐다. 그는 청첩장을 통해 ‘결혼합니다. 하지만 결혼식은 하지 않습니다. 사고 쳐서 결혼하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혹시나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진위가 궁금하신 분은 조만간 떠날 하와이 신혼여행에 동참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자비로 오셔야 하는 건 아시죠? 축하는 셀프입니다만, 축하해주신다면 그 기운 받아서 잘 살겠습니다’라고 보냈다.

○어처구니없는 경조사 실수

지인들의 결혼과 부고 소식이 한꺼번에 들릴 때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축의금과 부의금 봉투를 바꿔 넣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시중은행의 P계장은 두어 달 전 주말에 동료 결혼식과 본부장의 상가를 연달아 가게 됐다. 당일 늦잠을 잔 P계장은 허둥지둥 오후 2시 결혼식장에 들러 ‘축 결혼’과 ‘부의’라는 서로 다른 글씨가 적힌 봉투 두 개 가운데 하나를 무심결에 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후 상가에서 나머지 봉투를 내고 올 때도 상황 파악을 못했다. 그러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야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봉투가 뒤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 그는 “신혼여행 다녀온 동료는 웃으며 실수를 이해했지만 상주에겐 너무 큰 실수를 해서 사과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5만원권이 나오면서 5000원권과 헷갈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S과장은 지난해 12월 아버지상을 치렀다. 그런데 장례식이 끝난 뒤 어머니가 조용히 부르더니 “L부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와 영문을 물으니 부의금 봉투에 달랑 5000원짜리 한 장을 넣었다는 것. 그는 “실수한 것이라고 짐작은 가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했다.

○경조사비 ‘담합’도 필요

경조사비를 얼마로 할지 혼자 고민하기보다 여럿이서 같은 금액으로 내는 담합도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눈치 없이 동료들 사이에 정한 담합금액보다 적게 냈을 때 생긴다.

수도권의 자동차 부품사에 다니는 E대리는 지난해 이맘때쯤 사장의 결혼식에 다녀왔다가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결혼식이 부산에서 열려 축의금에 KTX 차비까지 부담해야 했던 E대리는 동료들과 사전에 의논해 축의금을 5만원만 내기로 했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온 사장이 E대리만 빼고 나머지 직원에게만 기념품을 챙겨주는 것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동료들에게 축의금을 얼마 냈는지를 다시 알아본 E대리는 모두가 축의금을 10만원씩 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사장이 지금도 직원들을 칭찬하거나 선물을 줄 때 나만 빼놓는 것 같다”며 “그후로는 직급이 높은 사람의 결혼식엔 무조건 10만원을 낸다”고 전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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