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조르주 무스타키

입력 2013-05-26 17:06   수정 2013-05-26 21:5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노래하는 시인’ 조르주 무스타키를 만난 날을 잊을 수 없다. 그의 집은 파리 센강의 생 루이 섬에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이 마주보이는 생 루이 거리 26번지. 오래된 목조주택의 5층에 닿았더니 피아노 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70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아주 젊어보였다. 낡은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으로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조용조용 얘기를 나누는 은발의 음유시인. 부드럽게 물결치는 흰수염 사이로 홍조 띤 얼굴이 소년처럼 맑았다.

그의 목소리는 노래처럼 감미로웠다. 영혼의 현을 건드리는 특유의 음색은 깊은 우물에서 나오는 울림 같아서 여운도 길었다. 그의 인생 또한 그랬다. 그리스 국적인 그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책방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그에게 건축가가 되라고 권했지만 그는 음악과 시에 심취했다.

17세 때 파리 여행을 계기로 파리의 누나 집에 머문 그는 시인이자 서점주인인 매형 덕분에 시인과 샹송 가수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중엔 시인가수 조르주 브라상을 너무나 좋아해 본명인 주세프 무스타키를 조르주 무스타키로 바꿔버렸다.

그러나 가난은 지독했다. 스무 살에 결혼했다 실패하고 벨기에 브뤼셀로 떠난 그는 여비가 없어 기타를 안고 술집을 떠돌았다. 파리로 돌아온 뒤에도 무명가수로 고생했다. 몽파르나스 클럽을 전전하던 그가 ‘샹송의 전설’ 에디트 피아프를 만난 것은 스물세 살 때였다. 그는 피아프의 열정적인 사랑에 시적인 가사와 로맨틱한 곡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탄생한 ‘밀로르’는 1950년대 말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사랑도 덧없이 끝나고 그는 혼자 길을 떠났다. ‘이방인’으로 다시 스타가 되기까지 10년 세월을 고독하게 보냈다. 그가 남긴 300여편의 샹송은 이 같은 고독에서 잉태됐다. 한때 그리스 시를 번역하기도 한 그는 “어릴 때부터 시를 노래로 부르는 게 가장 좋았다”며 “특히 시인 랭보와 보들레르, 베를렌을 좋아한다”고 했다. 1980~1990년대 네 번이나 한국에서 공연한 얘기 끝에 “부산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센강을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한국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건강 때문에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가 79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고독한 그리스인이자 유대계 이집트인, 아랍인이자 프랑스인, 유목민이자 은둔자, 음유시인이자 철학자였던 그의 육성을 이제는 들을 수 없다니…. 그러나 심야 라디오에서 무수히 흘러나오던 샹송 ‘나의 고독’과 더불어 그는 영원히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난 결코 외롭지 않네, 고독과 함께 있으니…’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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