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서남수 교육부 장관 "부모님은 학교 못 다녔는데 아들은 장관됐으니 효도했죠"

입력 2013-05-31 17:45   수정 2013-05-31 21:47

남대문시장서 지게 나르며 고생…그래도 자식들 다 교육시켜
꿈을 생각하며 공부해야 효과…그런 뜻에서 자유학기제 시행
제도 바꿔도 입시지옥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공평한 방법 찾아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평소 자신을 ‘한국 공교육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얘기한다. 장관이 된 사실을 자랑삼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그런 말을 한다. 사연을 들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 장관의 부모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나르고 소규모 두부공장을 운영하며 모은 돈으로 9남매를 대부분 대학에 보냈다. 다섯째인 서 장관은 한국의 교육 정책을 책임지는 교육부 장관이 됐다.

서 장관은 차관까지 하면서도 큰 돈을 모으지 못했다. 지난 24일 발표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16개 부처 장관 가운데 끝에서 3등(5억9302만원)을 했다.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번 저녁 식사 약속도 서민의 대표적 외식 메뉴인 삼겹살을 전문으로 하는 ‘삼미’로 잡았다. “고기 맛도 좋지만 밤 10시에 와도 상을 차려주는 주인 인심에 매번 올 때마다 감동합니다. 사무관 시절부터 회식하러 왔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교육부 장관 54명 중 첫 교육공무원

서 장관은 교육부 공무원 출신으로 교육부 장관이 된 첫 사례다. 1공화국 문교부 시절 1대 안호상 장관부터 교육부로 바뀐 박근혜정부의 서 장관까지, 총 54명의 교육 수장 가운데 서 장관을 뺀 53명은 모두 정치인이나 교수 출신이었다.

“전화 통화하면서 ‘서남수가 우리 한을 풀어줬다’며 눈물 흘린 선배 공무원들도 있었어요. 교육부 후배들에게도 희망을 준 것 같습니다. 교육 정책이 칭찬받는 걸 보신 적 있습니까. 교육부 공무원들은 서로에게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하는 것 같다’고들 합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인정받지 못한다는 거죠. 그런데 교육부 출신 장관이 나왔으니 조금이나마 위안받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서 장관은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익어가는 동안 이 집의 인기 메뉴 ‘김치콩나물국’부터 먼저 달라고 했다. 고기보다 콩나물국 맛에 이 집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한 숫가락 떠서 맛을 보니 새콤한 감칠맛이 입 안에 퍼져 나갔다. 인터뷰 2시간 동안 서 장관과 기자 등 자리를 함께한 이들 모두 콩나물국을 세 그릇씩 비웠다.

장관이 된 소감은 어땠을까. “선후배들도 기뻐했지만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아버님이 96세, 어머님이 93세십니다. ‘오래 살아서 아들이 장관 되는 걸 보는구나’고 하실 땐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정부의 교육 기조가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 아닙니까. 저는 고생하신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고 기쁨을 드리는 게 꿈이었습니다. 장관까지 됐으니 꿈을 이뤘네요.”

개성 개풍구 집성촌에 살던 서 장관의 부모는 6·25전쟁 직전 월남했다.

“두 분 다 학교를 전혀 다니지 못하셨어요. 개성에선 농사를 지었고 서울에 처음 와선 남대문시장에서 지게짐을 나르다가 채소 장사를 하셨죠. 돈을 조금 모아 상도동에 두부공장을 차리셨습니다.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죠. 밤새워 두부를 만들어서 새벽에 파는 힘든 일이라 언제나 일손이 모자랐습니다. 다섯 아들들은 언제든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워낙 힘든 일이라 부모님 얼굴은 공장에서나 뵐 수 있었습니다. 고생 참 많이 하셨죠.”

○교육의 본질은 ‘꿈과 끼’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정부 교육 정책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혼이라 교육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전했더니 ‘절대 아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 대통령이 20분도 안 되는 취임사에서 교육에 2분 이상을 할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학교 현장에 같이 나가 보면 교사나 학생들에게 정말 세세한 것까지 물어볼 정도로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꿈과 끼’는 인생의 목표와 적성을 말하는데 여기에 교육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 정책이 바로 대통령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스스로도 참 복 많은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 장관은 목표의식이 있는 공부와 그렇지 않은 공부의 차이를 예로 들며 교육의 본질을 설명했다. “만화가가 되려는 아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 아이에게 학교 공부를 강제로 시키면 잘 하기 어렵죠. 하지만 공상과학 만화를 그리려면 과학을 공부해야 하고 예술 만화를 그리려면 예술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만화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면 아무 이유 없이 하는 것보다 훨씬 성과가 좋겠죠. 공부하는 과정이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게다가 목표의식 없이 공부하면 성공해도 회의가 들고 실패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꿈과 끼를 찾는 교육을 받으면 실패하더라도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요.”

그는 중학교 시절 한 학기를 진로 탐색의 시기로 활용하는 자유학기제, 입시 간소화, 고졸 취업 장려 등도 모두 ‘꿈과 끼’, ‘행복’이라는 키워드에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구조조정은 질적인 측면 고려해야”

삼겹살이 노릇노릇 구워지기 시작했다. ‘삼겹살에 소주’ 조합이 떠올랐지만 이날 인터뷰는 반주(飯酒) 없이 이어졌다.

“한때는 술을 아예 안 마시기도 했습니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죠. 지금은 소셜 드링커 수준입니다. 사회생활을 위해 술자리에 가면 한두 잔 마시는 정도죠.”

자유학기제에 대해 시기가 중학교가 적절한지, 학력 저하 우려는 없는지 등의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서 장관은 “사춘기가 바로 꿈을 고민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중학생들이 뭘 안다고 꿈을 결정하냐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중학교 시절에 꿈을 결정하라는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꿈은 언제나 바뀔 수 있지요. 그러나 자신이 미래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교육부는 최근 지방대 육성책과 전문대 특성화 정책 등을 내놓았다. 지난 정부에서 강하게 추진하던 대학 구조조정이 한풀 꺾이는 것 아닌지 물었다.

"선생님 교권 존중해야 아이들도 제대로 커"

“학위 장사 하는 대학은 없어져야 합니다. 국가장학금까지 투입되는 마당에 그런 대학에 국민 세금이 가선 안 됩니다. 다만 구조조정을 위한 구조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정리 대상으로 거론되는 대학들이 거의 지방대학들인데, 경주 위덕대 총장을 6개월 해보니 서울에서 볼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유명하지 않더라도 그 지방에선 최고의 두뇌집단이 모이는 곳이고 지역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입시 제도는 학교 교육 정상화가 목표”

가장 민감한 문제인 입시 제도를 꺼냈다. 교육부는 오는 8월께 대학입시 제도와 학교 교육 정상화 방안에 대한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 장관은 “지금은 정말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얘길 해주기 어렵다”며 미안해 했다.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꾸더라도 입시 지옥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죠.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입시가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더라도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방법은 있을 겁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수 많은 방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교사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서 장관은 “교권은 특권이 아니라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교사의 권위를 인정해줘야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좋은 정책만 나온다면 ‘서주사’ 별명도 OK

서 장관은 책상에 결재 서류가 수북이 쌓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정책이든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더 좋은 대안을 찾기 위해 실무자들과 토론하면서 결재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서주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주사는 예전에 6급 공무원(지금은 주무관)을 부르던 말로 기업에선 대리 정도다. 국장 시절엔 ‘조찬보고·심야보고·주말보고’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부하직원을 ‘맹훈련’시켰다.

“후배들에게 언제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라’고 합니다. 부내에서도 열심히 토론하자고 하고요. 그렇게 만들어지는 정책이 장관이나 국장 머리 속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장관과 실무자가 공감해야 하죠. 서주사라고 불리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일하면서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는 부하직원은 없었습니다. 저도 10시 11시까지 일했고요. 당시 후배들에게 ‘조금도 미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능력을 키우는 거니까요.”

서남수 장관의 단골집 삼미등심·삼겹살에 '멸치 육수 김치콩나물국' 인기

정부서울청사 근처 내자동(105번지)에 있는 고기집이다. 정일순 사장이 사촌언니, 조카와 함께 1980년 개업했다. 원래는 맛 미(味)를 쓰려고 했지만 간판 만드는 사람이 착각해서 아름다울 미(美)를 넣은 삼미(三美)로 만들어오는 바람에 지금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정 사장은 “미녀 셋이 운영해서 삼미(三美)라고 생각하는 손님도 많다”며 웃었다.

점심에는 김치찌개(7000원) 콩나물비빔밥 된장찌개(각 6000원)를 내고 저녁에는 등심(1인분 2만5000원)과 삼겹살(1만1000원)을 판다. 고기는 충남 당진과 서산, 홍성 등의 목장 세 곳에서 가져온다. 30년 넘게 같은 축산업자로부터 받고 있다.

멸치로 육수를 우려낸 김치콩나물국을 고기와 함께 내는데, 먹어본 사람들 모두 ‘집에서 먹는 맛’이라는 평을 한다.

정 사장이 인터넷을 잘 할 줄 몰라 네이버와 같은 포털에 검색되지 않는 데다 좁은 골목길에 있어 찾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전화(02-736-6789)로 물어보면 친절한 위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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