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영양 신호등'의 진실

입력 2013-06-10 17:01   수정 2013-06-11 05:28

조주현 생활경제부장 forest@hankyung.com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아이들 군것질거리다. 유명회사 제품은 거의 없고, 포장도 조잡하지만 코흘리개들에겐 언제나 인기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문방구에서 파는 일부 과자의 봉지에 ‘신호등’ 표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 나트륨 지방 포화지방 등 네 가지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초록 노랑 빨간색으로 분류한 것이다. 초록이면 함량이 괜찮고, 노랑이면 적정량을 약간 초과한 것이며, 빨강이면 너무 많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색소가 많이 들어있는 듯한, 그러나 성분이 뭔지 모르겠는 과자들은 신기하게도 대개 초록빛 일색이다. 그걸 보고나면 ‘혹시 먹어서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유명 회사들의 제품에는 ‘신호등’이 안 보인다. 엄청난 돈을 들여 광고도 하면서 왜 신호등을 그리지 않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규제

그 이유는 이렇다. 당 나트륨 지방 포화지방 등은 하루에 얼마나 먹는 게 적정한지 과학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 그러니 어떤 성분이 얼마 이상 들어있으면 무슨 색으로 표시한다는 기준도 있을 리 없다. 특정성분이 다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나타낼 뿐이다. 이런저런 영양성분이 많이 함유되지 않은 저품질 과자는 초록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식품산업협회에 따르면 고품질 천연원료로 과자를 만들면 빨간색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름 없는 상품보다 몸에 해로운 상품을 만들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받기 싫은 유명 제과회사들이 신호등 그리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신호등 그리기를 강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작년 말 의무화 법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작은 기업과 자영업은 보호해야 한다’란 명분론에 편승한 규제다. 이런 무리한 규제의 특징은 의도와 전혀 다른, 어쩌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필적 고의’라고 불릴 만한 이런 식의 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프랜차이즈형 피자집과 치킨집은 같은 브랜드의 점포와 각각 1500m, 800m씩 떨어진 곳에만 새로운 점포를 낼 수 있다. 파리바게뜨 같은 빵집은 동네 제과점에서 500m 거리를 두고 신규점포를 내야 한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목 좋은 곳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프랜차이즈를 통한 신규창업은 어려워졌다. 대신 기존 가게엔 엉뚱하게 권리금이라는 프리미엄이 생겼다. 새롭게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힘들어졌고, 기득권층은 득을 보게 됐다는 결론이다.

도토리 키재기만 하라는 요구

뿐만 아니라 산업 자체의 발전도 가로막는다. 프랜차이즈가 점포 수를 늘리지 못한다는 것은 일정규모 이상 사업을 확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사업을 일으킨 뒤 해외로 나가는 글로벌화 공식은 그래서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에선 글로벌 컴퍼니가 아니라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기업만 양산될지 모른다.

규제가 많을수록 산업이 도태된다는 ‘규제의 역설’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규제가 하도 많아서 숟가락 하나도 숨길 수 없다는 금융부문이 한국의 대표적 낙후산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미필적 고의가 담긴 규제는 폭주한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며 헌법의 기본원리인 사적자치의 원칙을 무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대형마트의 일요일 휴업으로 납품업체가 생존권 투쟁에 나서고 있다. ‘엉터리 신호등’은 넘쳐나고, 배는 이렇게 자꾸 산으로 올라간다.

조주현 생활경제부장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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