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역사는…1970년대 전기·전자상가의 메카…용산 등장에 빛 잃어

입력 2013-06-25 17:11   수정 2013-06-26 01:34

현대상가 진양상가 청계상가 신성상가 등으로 구성된 ‘세운상가’ 부지는 일제가 1945년 3월 ‘전시 소개공지대(疏開空地帶)’로 고시한 지역이다. 전쟁 중 발생한 화재가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워놓는 공간이다. 직사각형(폭 50m, 길이 860m) 모양의 이 땅은 기존 건축물 철거 작업 중 해방을 맞았다.

6·25전쟁 전후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난립했다. 이후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세운·삼풍상가 등이 차례로 세워졌다. 1960년대 국가경제개발 콘셉트를 반영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 형태로 건설됐다. 신축 무렵에는 도심 고급 주거지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하에는 주차장이 배치됐고, 지상에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됐다.

당시 분양광고 카피였던 ‘주부의 피로를 덜도록 설계된 부엌’이란 문구는 국내 아파트 광고의 원조가 됐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중반까지 전기·전자 분야를 중심으로 도심산업의 메카로 떠올랐다. 서울의 중심상권으로 급성장해 유동인구도 넘쳐났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용산 청과물시장이 가락동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대형 전기·전자·가전용품 시장(용산전자상가)이 들어서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새 아파트들이 강남에 대거 공급되면서 고급 주거지의 명성도 빛이 바랬다.

서울시가 처음 이 일대를 도심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1979년(세운상가군 동쪽)이다. 2006년에는 ‘세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고 2009년에는 재정비촉진 계획이 결정·고시됐다. 그러나 재개발계획은 추진동력 미비, 주민갈등 심화, 부동산경기 침체 등으로 30여년간 지지부진했다. 해당 구역에 들어선 건물은 ‘국도호텔’(옛 국도극장)과 ‘남산 센트럴자이’ 등 2개에 불과했다.

현재 세운지구에는 1970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이 전체의 72%를 차지할 정도로 노화된 상태다. 기업과 세입자들이 열악한 환경을 피해 외부로 이주하면서 빈 건물과 공간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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