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신화, 미샤의 네버엔딩스토리

입력 2013-07-16 15:26   수정 2013-10-16 20:13

 
[박윤혜 기자] 때는 2000년, 여성뷰티포털 ‘뷰티넷’을 통해 화장품 시장에 출사표를 내민 미샤는 새천년의 시작과 발맞추어 뷰티계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정직한 가격 3300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타 고급 화장품과도 품질 면에서 뒤지지 않는 착한 가격의 제품을 선보인 미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용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2002년 5월 이화여대 앞에 국내 첫 브랜드숍인 오프라인 1호점을 열며 브랜드숍 화장품의 시대 또한 열기에 이른다.

특히 미샤의 오프라인 매장은 제품을 마음껏 테스트해볼 수 있고, 부담 없는 가격으로 화장품 구입이 가능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한국 화장품 시장에선 찾아보기 힘든 형태였다. 오픈 직후부터 소비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오프라인 진출 2년 만에 200호 점을 넘어섰다.

미샤는 2013년 6월 말을 기준으로 국내 552개의 매장과 해외 1021개의 매장을 개설, 브랜드숍 최초로 연간 매출 4500억 원을 기록하며 그 신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통념을 깬 화장품 신화의 태동

미샤를 이끄는 에이블씨엔씨의 서영필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후 피죤 중앙연구소에 입사해 4년 동안 화장품을 연구했다. 그러던 중 “내가 생각한 대로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93년 말 퇴사를 하고 방향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만들 줄만 알고 팔 줄을 몰랐던 서대표의 첫 도전은 유통의 중요함을 경험으로 남긴 채 그에게 쓰디쓴 실패를 안겨주었다.

첫 사업 실패 직후 아이의 우유 값도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지만 서 대표는 표기하지 않고 화장품 사업에 도전했다.

친척들에게 빌린 5000만원 남짓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원가 1000원짜리 화장품을 생산해 만원의 가격을 붙여 화장품 가게에서는 80% 세일해 2000원에 파는 전략으로 조금씩 성공의 기미가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제품에 가격을 붙이지 않는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연달아 고배를 마신 뒤 96년 엘트리라는 회사를 세우고 잎스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당시 불던 인터넷 열풍에 제품소개를 위한 잎스 브랜드 사이트를 열면서 서 대표는 온라인 마케팅에 눈을 뜨게 된다.

제품의 성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잎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잎스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회원들에게 2만원 상당의 정품을 무료로 보내줬다. ‘온오프 통합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모델이었다.

하지만 사이트 내에선 잎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샤넬이나 랑콤 등 고가 화장품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여성들 사이에서 고가 화장품을 사용한다는 은근한 자존심은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성벽 같은 것이었다.

이에 서 대표는 아예 이들을 위한 사이트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2000년 ‘뷰티넷’이 탄생하게 된다. 대신 화장품을 보내주는 마케팅은 중단했다. 그러자 오히려 뷰티넷의 게시판엔 배송료를 지불할 테니 화장품을 보내달라는 글이 빗발쳤다. 배송료는 최대 3000원, 소비자들이 스스로 정한 고민 없이 새로운 브랜드의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를 본 서 대표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사업의 청사진이 그려졌다. 화장품 가격에 원료보다 패키지나 유통으로 인한 거품이 많이 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해결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바로 앞으로 펼쳐질 청사진의 시작이었다.

미샤의 시작, 브랜드숍 화장품 시대의 시작

서 대표는 잎스 브랜드를 매각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3000에 부가세 10%를 더한 ‘3300원 화장품’을 뷰티넷을 통해 팔기 시작했다. 바로 3300원의 신화 미샤였다.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서도 화장품 가격은 1만원을 넘지 않았다.



당시 국내 화장품 업계에 한 가지 브랜드만으로 매장을 구성한다는 ‘브랜드숍’ 개념이 전무했다. 화장품 가게에 가서 수십 가지 브랜드 화장품을 비교해 보고 산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하지만 그런 유통 과정은 화장품 가격 거품의 주요인이었다.

미샤는 직영점, 가맹점 형태의 브랜드숍 직판 체제로 유통과정을 단축하고, 박스포장을 없애 사용설명서를 제품 뒤에 표기했다. 그 밖에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비용구조 혁신을 통해 화장품 내용물이 용기 값보다 비싼 화장품을 만들었다.



이에 미샤의 매출은 만 1년 만에 10배가 상승했으며 전국 주요 유통 거점을 장악했다. 첫 해엔 33억 원, 2003년 130억 원, 2004년에는 1,1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2005년 코스닥 상장 때는 700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주목 받기도 했다. 미샤의 앞길에는 비단길만이 펼쳐져 있는 듯 했다.

위기와 혁신, 그리고 3300억의 부활

2011년 미샤는 브랜드숍 업계 정상의 자리를 탈환했다. 더페이스샵에게 1위를 빼앗긴지 7년 만이었다.



2000년대 초반 미샤의 성공을 본 화장품 업계에는 유사 저가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중 자연주의 콘셉트를 내세우며 등장한 더페이스샵은 무서운 속도로 미샤의 뒤를 추격했다.

소비자의 변화와 경쟁사들의 추격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종국에는 인테리어, 제품의 콘셉트, 디자인, 광고 등 미샤가 이길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 또한 날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결국 2005년 더페이스샵에게 1위의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매출은 급감했고 가맹점주들은 미샤를 버리고 후발주자로 갈아타고 있었다. 2006년에는 브랜드 로고가 상표권 소송에 휘말리며 큰 손해를 감수하며 대대적인 리뉴얼을 감행해야 했고 2007년에는 미샤가 망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에 2005년 말 미국시장 개척을 위해 경영에서 손을 땠던 서영필 대표가 복귀했다. 서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경영을 맡겨 놓았던 대표이사까지 ‘가망이 없으니 이쯤에서 팔아버리자’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 ‘내가 나서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결국 이전의 신념을 수정하기로 한다. 합리적인 ‘가격’이 아닌 소비자가 좋아할 수 있는 ‘브랜드’를 제시하기로 결정한 것.

기존의 20대를 공략하던 저가 브랜드의 이미지를 벗고자 고급화의 길을 걷기로 한 미샤는 수백만 개의 재고 화장품을 ‘땡처리’했다. 뷰티넷 재건과 제품력 보강, 제품들을 분류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브랜드 내 제품 라인업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미샤가 재기를 준비하던 2007년 한국 화장품 시장은 BB크림 열풍이 불고 있었다. 미샤는 BB크림 중 최초로 주름 개선, 미백, 자외선 차단 등 기능을 추가한 M 퍼펙트 커버 BB크림을 출시했다. 컬러도 피부톤 별로 선택할 수 있게 2가지로 선보였다. 2가지 컬러 BB크림 역시 최초였다. 미샤의 사활을 쥐고 있던 M 퍼펙트 커버 BB크림은 ‘빨강BB’라는 애칭을 달고 출시 3개월 만에 10만개 이상이 판매됐다. 2008년에는 한 해 동안 100만개나 팔려나갔다.



후속 제품인 M 시그너처 리얼 컴플릿 BB크림은 출시 8개월 만에 100만개 판매 기록을 달성했다. 2010년 12월에는 브랜드숍 화장품으로는 처음으로 아시아나항공 기내 판매품목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비비크림은 미샤의 매출 20%를 책임지며 미샤의 부활에 날개를 달아줬다. 또한 한방화장품 등 고가 라인을 출시, 잇달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에 출시한 시그너처 바이브레이팅 마스카라는 브랜드숍 최초 진동 마스카라로 나온 지 2개월 만에 10만개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으며 스테디셀러에 진입하는데 성공, BB크림에 이어 미샤의 부활에 힘을 더했다.

또한 지하철역 매장 입점도 미샤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2007년 말 서울지하철공사가 지하철역 매장 92개를 브랜드숍 화장품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입찰에 부쳤다. 까다로운 입찰 조건에 자격을 갖춘 곳은 미샤와 더페이스샵 두 곳. 치열한 경쟁 끝에 미샤가 운영권을 따냈다.



지하철역 매장은 이미 검증된 시장이었다. 한 지하철역 매장 운영주가 브랜드숍 화장품으로 업종을 변경 후 의외의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 입소문이 퍼지고 있던 차였다.




미샤는 이러한 기회들로 2007년 785억 원이던 매출액이 2008년 1011억 원을 넘어 2009년 1811억 원, 2010년에는 2431억 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매출 3303억 원을 달성, 매출 3255억 원을 기록한 더페이스샵을 제치고 빼앗긴 1위를 되찾아 오게 된다.

2012년에도 화장품 브랜드숍 최초 매출 4500억 원을 돌파, 4067억 원을 기록한 더페이스샵을 꺾고 2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고객과 소통하는 미샤

미샤는 창업 초기부터 뷰티넷을 통해 고객과의 소통을 꾸준히 하고 있다. 뷰티넷에서 품평단, 마니아 구축 등 적극적인 활동을 유도해 의견들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반영하도록 한 것.



또한 미샤는 2008년 5월, 뷰티넷 회원과의 첫 만남 이후 연 2회 ‘미샤 그리팅데이(Greeting Day)’를 열고 있다. 뷰티넷 골드 회원을 대상으로 신제품을 선보이거나 회원들의 의견을 직접 수렴하는 행사로 연 2회 상반기와 하반기에 개최되고 있다.



2013 미샤 S/S 그리팅데이는 미샤가 2012년 화장품 브랜드숍 업계 1위를 탈환한 것을 자축하는 자리로서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대화의 장으로 꾸며졌다. 특히 이번 2013 S/S 그리팅데이에는 중국과 일본의 뷰티 파워블로거들을 초청, 총 450명의 한중일 아시아 고객들을 한 자리에 모아 더욱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신화를 만든 마케팅

미샤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매장에서 시작한 까닭은 서영필 대표의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이 있었기 때문. 인터넷은 서영필 대표에겐 성공을, 한국 화장품 업계에는 브랜드숍이라는 새로운 유통 구조를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서 대표는 “1995년 인터넷이 초창기였을 때 앞으로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했다. 마케팅 비용이 부족해 힘들어 했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마케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회사 내 인터넷 팀을 꾸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인터넷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잎스 사이트를 열자 방문자가 폭주해 서버가 다운됐고 이를 고치기 위해 밤을 새운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서 대표는 회상한다. 2013년 현재 뷰티넷 회원은 300만 명이 넘는다. 이들 대부분이 미샤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다.



신문이나 TV방송 광고 한 번 없었지만 미샤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소리 없이 전해져 월 5억 원 이라는 매출을 안겨줬다. 특히 화장품을 써본 뒤 뷰티넷에 후기를 올리는 회원들의 커뮤니티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제품의 사용후기에서부터 타사의 신제품을 분석하며 새로운 제품 개발에 대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미샤는 글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고 이는 미샤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소비자의 제안을 수용하며 발전하는 행보를 결과로 보여주자 자연스럽게 뷰티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미샤의 칭찬이 이어졌다. 가장 마케팅 효과가 크다는 구전효과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생각을 바꾸다

미샤는 제품의 변화와 함께 마케팅 역시 다른 브랜드와의 확실한 차별화와 고급화를 중점적으로 잡았다.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 새로이 론칭하는 라인에 배우 이병헌과 김혜수를 선정했다. 이병헌을 내세우며 론칭한 남성 라인 미샤 옴므 어번소울은 탄력 있는 몸매와 매끈한 피부로 남성적인 매력을 한껏 발휘, ‘몸짱 신드롬’을 일으켰다.

미샤 옴므 라인은 남성들이 미용에 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기능성은 물론 선호하는 향과 고급스럽고 심플한 용기 디자인 등 취향들을 세심하게 고려하여 출시됐다. 30~4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동안 피부 가꾸기’ 열풍이 불면서 이병헌처럼 젊어지고 싶은 남성들과 이병헌을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



프레스티지 스킨케어 브랜드인 타임 레볼루션 이모탈 유스 등의 신제품 라인 역시 김혜수의 건강한 피부와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미샤 특유의 트렌디하고 역동적인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다.

이병헌과 김혜수 효과는 매스티지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성공적으로 작용, 미샤는 매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미샤는 고급화 전략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또다시 차별화를 위해 “생각을 바꾸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화장품 모델은 나와는 다른 예쁜 연예인’이라는 인식을 깨고 개그우먼 신봉선을 모델로 발탁, 과감하고 용기 있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연예인이 화장품 광고에 등장하자 현실적인 신뢰를 받으며 많은 이슈와 호감 또한 얻게 됐다. 연예인이기는 하지만 나와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은 모델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면서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끌어당긴 것이다.



최근에는 해외에 거세게 불고 있는 한류 열풍으로 국내 화장품 브랜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에 미샤는 아시아 모델로 한류스타 동방신기와 보아를 기용하여 해외 뷰티 시장 공략에 힘을 싣고 있다. 긍정적인 이미지와 영향력을 중심으로 글로벌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국내 시장 역시 보아 외에 고준희, 박주미, 이혜상, 윤진이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트렌디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화장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어느 특정 연령만이 아닌 전 소비자에게 어필 하고 있다.

1:1 비교 품평 마케팅

2007년 위기 이후 초심으로 돌아간 미샤는 2011년 9월, ‘부담 없이 경험하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라는 슬로건의 ‘WHY MISSHA’라는 1+1 프로모션을 내세웠다. 이 캠페인을 통해 왜 미샤이어야만 하는지, 미샤가 다른 브랜드들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제품이라는 것을 품질을 통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달 후 후속캠페인 ‘I′m Missha’가 시작됐다. 고급 수입화장품을 겨냥한 ‘비교 마케팅’ 이었다. 대상은 SK-II. 비교대상인 SK-II 제품의 빈병을 가져오면 미샤의 비교 대상인 에센스를 공짜로 주는 파격적인 이벤트도 실시했다.

SK-II의 빈병을 든 소비자들이 미샤 매장에 줄을 이었고 인터넷은 비교 체험에 관한 글로 뜨겁게 달궈졌다. 화장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수입 화장품과 국산 브랜드 화장품의 대결구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2011년을 화제의 중심에서 성공적 마무리한 미샤는 곧이어 두 번째 신제품을 출시하며 마케팅을 이어나갔다. “더 이상 값비싼 수입 화장품에 의존하지 않도록 당당히 경쟁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에스티로더의 앰플과 미샤의 제품을 비교대상으로 내걸었다. 반응은 역시나 폭발적이었다.



미샤의 제품은 각종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재고가 없어 못 사는 제품’으로, ‘구했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미샤의 효자 상품이 되었다. 현재는 세 번째 마케팅으로 시슬리의 아이크림과의 미샤의 제품 비교를 제안하고 있다.



한편 직접적이진 않았지만 2012년 3월 향수브랜드 로드 미샤(L'EAU DE MISSHA)를 론칭,
향수 강자인 샤넬을 겨냥했다는 분석을 낳기도 했다.


제품의 품질을 직접 주장하지 않고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품질평가 권한을 주며 고객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하면서 미샤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거머쥐었다. 소비자는 결과에 열광하고 자발적으로 제품에 대해 평가하기 시작했으며 고가의 수입 브랜드와 경쟁하는 브랜드로 소비자들의 뇌리에 인식 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혁신적 마케팅 VS 대놓고 미투?

‘제품 콘셉트와 용기 디자인이 유사하다’는 일부 지적에도 불구, 미샤는 유사 전략을 2011년부터 꾸준히 전개해왔다.

2012년 10월 SK-Ⅱ의 수입 판매사인 한국P&G가 미샤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다. 초기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이 최근 잇달아 국내 화장품 브랜드들의 ‘미 투(Me Too)’ 전략에 강경 대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판부는 12월 한국 P&G의 손을 들었다. 미샤 측은 즉각 항소 입장을 밝혔으나 이번 재판 결과로 인해 서 대표의 경영 스타일과 행보에 대해서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 회장은 “해외에서는 비교 마케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업계의 관행이니 질서니 이런 건 기존 업체들이 만든 것 아닌가. 우리는 소비자만 보고 간다”며 “자꾸 시장의 판을 뒤집어야 새로운 주자가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서 대표를 놓고, 업계에선 “촉이 살아있다”, “시장의 변화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읽어낸다”는 긍정적인 평가에서부터 “업계 금기도 뛰어넘는, 수익 추구형 경영스타일”이라는 엇갈린 평가들을 쏟아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향한 미샤의 자신감

2004년 호주에 처음 진출한 이래 2006년 홍콩,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2008년 아랍에미리트, 베네수엘라, 뉴질랜드, 파라과이까지 모두 31개국에 약 천여 개의 매장을 열었다.


각 국가별 특징에 따라서 특화된 화장품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믿은 미샤는 각 나라에 ‘맞춤 제품’을 선보이며 국외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서영필 에이블씨앤씨 대표는 “제품군이 다양해지고, 프리미엄 제품들의 판매가 좋아짐에 따라 매장 확대에 가속화를 내려 한다. 매출 신장과 기업 성장을 위한 기반이 확고해졌다”며 “국내 시장 점유율 확대와 함께 동북아 시장과 아랍권 시장에 더욱 집중해 글로벌 브랜드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진출했던 국가는 1인당 화장품 구입비가 높은 일본이었다. 성공적인 진출을 위해 미샤는 현지인들을 고용하기로 선택, 이후 네트워크 구축에 중점을 둔 결과 매년 높은 매출을 기록하며 글로벌을 향해 저만치 뻗어가고 있다.



또한 최근 가장 큰 해외 시장으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중국에서 역시 본격적인 탄력을 받고 있다. 온라인 시장에서 상승세로 10년 전 국내에서 일으켰던 돌풍을 다시 재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3월에 있었던 중국 화장품 전문 쇼핑몰 1위인 쥐메이 3주년 이벤트 행사를 통해 미샤 화장품의 하루 매출액이 6,700만 위안(120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최선 중국법인 지사장은 현재 탄력을 발판 삼아 백화점 입점과 주요 상권의 브랜드샵 등 브랜드 이미지를 차곡차곡 구축해 2016년 매출 10억 위안 달성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이 발표한 상장·등록 주요 화장품사 연도별 1분기 실적을 보면 미샤가 속해있는 에이블씨엔씨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의 뒤를 이어 3위에 올라있다. 또한 유통별 화장품시장 외형 추정을 살펴보면 로드숍의 매출과 성장률이 가장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탄탄한 로드숍 인프라와 온라인 루트를 구추하고 있는 미샤에게 ‘국내 화장품 업계 2위’는 터무니없는 목표도 아니다.

미샤. 국내화장품 업계에서 그 이름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단순히 저가 화장품 시장을 열었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통구조의 개척과 개선을 통해 화장품가격 거품을 없애고 ‘저렴하면서 좋은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다.

미샤를 사랑하는 많은 소비자는 미샤의 신화가 지속되길 바라고 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또 다른 네버엔딩스토리를 써 내려가길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미샤 TV 광고 캡처, 뷰티넷 홈페이지, 미샤 페이스북, 서영필 대표 페이스북, 뷰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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