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 지머먼이 로드니 킹과 다른 이유

입력 2013-07-28 17:31   수정 2013-07-29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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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미국 플로리다주 샌퍼드에 거주하던 열일곱 살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은 한 편의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마침 동네 주변을 순찰하던 자경단 단원인 조지 짐머맨은 후드티 차림의 마틴을 수상히 여겨 뒤쫓았고 곧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짐머맨은 마틴에게 총을 발포했으며 마틴은 곧 숨졌다. 짐머맨은 2급 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그러나 주 법원 배심원단은 짐머맨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보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최근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짐머맨 사건의 개요다. 미국의 흑인들은 이 판결에 분노해 여러 대도시에서 일제히 시위를 벌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번 판결과 관련해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흑인 남성이라면 한번쯤 백화점 보안 요원들이 따라붙거나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백인 여성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핸드백을 부여잡는 모습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1991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의 직접적 원인이 된 로드니 킹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26세 청년이던 로드니 킹은 과속운전을 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백인 경찰관들이 그를 무차별 구타했고, 이 장면은 비디오로 촬영돼 TV에 고스란히 방영됐다. 그러나 이들 경찰관은 재판에서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 평결을 받았다.

그러나 짐머맨 사건은 로드니 킹 사건과 여러모로 다르다. 우선 짐머맨은 그냥 백인이 아닌 남미계 히스패닉이다. 실제 이번 인종차별 시위에 히스패닉은 동참하지 않았다. 현재 미국에서 흑인의 인구 비율은 12.6%로 10년 전(12.3%)에 비해 제자리걸음이지만 히스패닉은 12.5%에서 16.3%로 크게 늘었다. 흑인의 조상은 오늘날의 미국 건설에 기여했지만 히스패닉은 무임승차로 흑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비뚤어진 인식도 없지 않다.

미국 사회는 그동안 뿌리 깊은 인종차별 해소를 위해 정부 차원의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미국은 현재 인종차별에 대해 가장 엄격한 형벌을 가하는 국가 중 하나다. 그 결과 이제는 흑인 대통령을 배출했고, 행정부 의회 법원에 이르기까지 고위직에 진출한 흑인도 수두룩하다.

한 여론조사에서 이번 사건이 인종차별에서 빚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미국인 의견이 전체의 55%를 넘었다. 오히려 총기 사용까지 가능한 정당방위법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총기 소유 자체가 불법이고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가 이런 복잡다단한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게 축복인 것 같다.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 한국경제신문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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