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젖줄 '황허'를 만나다

입력 2013-08-25 15:05  

5000㎞ 물길따라 펼쳐진 '대학생 동북아 대장정'



중국으로 떠나는 날, 조간 신문 국제면에는 ‘중국 덮친 140년 만의 폭염’이란 기사가 실려 있었다. 도착해보니 과연 중국은 넓고 더웠다. 이 폭염을 뚫고 대륙의 젖줄 황허(黃河)를 만나러 나섰다. 황허를 하구부터 거슬러 올라 티베트 근처의 발원지까지 탐방하는 7박8일의 여정. 교보생명과 대산문화재단이 해마다 주최하는 ‘대학생 동북아 대장정’의 올해 행사로, 5000㎞의 물길을 따라 펼쳐진 5000년의 중국 역사에서 새로운 문명의 지도를 펼쳐보자는 게 취지다.

삼각주가 넓게 펼쳐진 황허 하류의 끝 ‘둥잉’

인천공항을 떠나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산둥성의 항구도시 웨이하이(威海)에 도착했다. 황허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다시 버스로 5시간을 달려 황허 하류의 끝 둥잉(東營)으로 향했다. 당나라 때 동쪽 군대를 주둔시켰던 것에서 유래한 이 도시의 면적은 해마다 약 2000만㎡씩 늘어나고 있다. 황허를 따라 대륙을 떠내려온 토사가 바다와 만나 삼각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둥잉에서 하루를 묵고 출발한 목적지는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수도였던 쯔보(淄博). 제나라 경공과 함께 말을 순장한 무덤인 순마갱을 둘러봤다. 말 70여필, 비공개된 부분까지 하면 600여필의 뼈가 고스란히 누워 있는데, 뼈의 크기로 짐작한 말의 덩치는 크지 않았다. 당시 크고 좋은 말들은 현재의 만리장성 이북에서 생산됐고, ‘천마’라 불렸던 서역산 말은 한나라 이후 들어왔기 때문이다.

순마갱은 전형적인 중국 시골마을 안에 있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흰 러닝셔츠 차림으로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은 웃으며 무덤 주위를 뛰어다닌다. 가끔 아버지들은 삼륜차를 타고 바로 옆 옥수수밭으로 향했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뿌연 흙먼지가 일었다가 사라졌다. 무더운 여름 오후의 시골풍경이 2500년 전의 역사와 공존하고 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대장정 팀은 쯔보역으로 향했다. 야간열차를 타고 중국 8대 고도(古都) 중 하나인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으로 가기 위해서다. 잠은 비좁은 침대칸에서 자야 하고, 그나마 일반실은 통로와 침대 사이에 칸막이도 없다. 기차 바닥 위에 침대만 놓여 있다. 그런데도 침대 칸 열차는 이동과 숙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중국 비즈니스맨들에게 인기다. 자고 일어나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영토가 넓은 중국에서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그러나 중국 당국은 고속철도 열풍을 타고 침대 칸을 점점 없애나가는 중이다. 압도적인 개발의 흐름 속에서 파묻혀가는 셈. 언젠가는 이 침대 칸도 중국의 흘러간 유행가 가사 속에만 존재하지 않을까.

‘판관 포청천’의 무대 허난성 ‘카이펑’

카이펑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아침 장을 둘러봤다. 마침 토요일이라 사람들은 옷을 바닥에 놓고 팔거나 간이 야외 이발소를 차려놓는 등 분주하게 움직인다. 100m 이상 걸어도 장이 이어져 있을 정도로 규모가 꽤 크다. 이런 장터는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는 이미 마트에 흡수됐다고 한다. 그만큼 카이펑의 발전이 아직 더디다는 얘기다.

송나라의 수도였던 이곳은 ‘판관 포청천’의 주 무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송대의 시청이었던 개봉부에는 포청천으로 알려진 포증이 집무를 보던 모습을 재현해 놓았는데, 그 앞에 백발의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알아보니 지금까지도 억울한 일이 있거나 큰 재판을 앞둔 사람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삼국지의 관우처럼 송대의 포증도 중국인들에게 하나의 신이 된 것이다. 김종섭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중국사)는 이를 “사회안전망이 사라지고 있는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화되면서 국가의 보호망은 약해지고 자본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자본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이다.

카이펑은 8대 고도라는 말이 무색하게 역사적 유물이 많지 않다. 황허의 범람으로 역사상 7차례나 도시가 완전히 수몰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카이펑 사람들은 수몰 때마다 도성을 한층 한층 겹겹이 쌓았다고 해 이곳을 ‘성나성’이라고 부른다.

허난성의 성도인 정저우(鄭州)에서는 배를 타고 황허를 직접 유람했다. 황허는 말 그대로 누런 황토물이다. 이 황토물이 비옥한 토양을 만들었고, 이곳 중원(中原)은 백성들 삶의 터전이 됐다. ‘중원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은 그만큼 황허 유역의 물자가 풍부했기 때문에 생겼다.

그만큼 전쟁도 잦았다. 전란에 지친 허난성 사람들은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 중국인들은 허난성 사람들을 ‘사기꾼’으로 여길 정도. 농사를 주로 지어온 탓에 산업시설이 상대적으로 미비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됐다는 것 또한 비옥했던 중원이 갖는 현대적 역설이다.

삼국지 도시 ‘뤄양’…거대한 댐 샤오랑디 장관

‘삼국지의 도시’ 뤄양(落陽)으로 이동해 거대한 댐인 황허 샤오랑디(小浪低)를 탐방한다. 이곳은 물길이 좁은 협곡인 데다, 중류에서 하류로 이어지는 지역이라 치수를 하기에 알맞다. 이 댐이 물을 방류하는 장면은 장관이다.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황토물은 대륙의 기운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느냐에 따라 백성의 운명이 달라졌을 터. 지금도 샤오랑디에는 ‘治理黃河造福人民(치리황하조복인민)’이라는 대형 글자판이 서 있다. ‘황허를 다스려 인민을 복되게 한다’는 뜻. 비옥한 토지라는 선물과, 범람과 전쟁이라는 재앙을 함께 줬던 황허와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뤄양에서 시안(西安)으로 가는 길은 고속철을 이용했다. 전날의 덜컹거리는 완행 침대열차와 시속 300㎞에 달하는 현대적 고속철의 공존이 기묘했다. 명대에 지어진 시안의 성벽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는데, 성벽의 높이와 성루의 크기가 과연 제국의 수도, 대륙의 고도라고 할 만한 위용이다. 내리쬐는 오후의 태양을 몸으로 받으며 동문, 북문, 서문에 이르는 약 8.7㎞를 걷노라니 성벽 위로 저물어 가는 태양이 세월의 무게를 더해준다.

해발 4500m 고산지대 황허 발원지 ‘마둬’

대장정의 후반부는 황허 발원지 마둬(瑪多)로 가기 위한 여정. 시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고원을 넘어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으로 이동했다. 해발 2000m가 넘는 시닝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가벼워진 바람은 에어컨으로는 느낄 수 없는 청량감으로 몸을 휘감는다. 시닝에서 하이난저우를 거쳐 황허 발원지의 도시 마둬로 이동했다.

마둬는 칭하이성 내의 티베트자치주로 해발 4500m가 넘는 고산지대. 이틀 전만 해도 40도를 웃도는 더위와 싸웠지만 이곳의 기온은 5도가 채 되지 않는다. 여기에 강한 바람까지 겹쳐 체감온도는 더 내려갔다. 고산병 증세와 길고 긴 버스 이동이 지치게 하지만, “지금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힘을 얻어 황허 발원지의 상징 ‘우두비(牛頭碑)’로 향한다. 우두비는 이곳에 있는 거대한 호수 자링호(札陵湖)와 어링호(鄂陵湖) 근처에 중국 정부가 세운 비석. 이 호수들을 넘어가면 황허로 흘러들어오는 지류들이 있는데, 수가 너무 많아 발원지를 정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 호수를 황허 발원지로 공식 인정했다고 한다.

산둥(山東)성의 하류에서부터 발원지까지 고된 대장정을 마친 대원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중국의 문화와 삶을 확인하며 도착한 곳. 한반도를 벗어나 폭염과 추위를 번갈아 뚫고 대륙을 가로질렀던 기억은 이 청년들이 동북아, 그리고 세계로 전진하는 데 쓰일 밑거름이다.

웨이하이(중국)=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대학생 동북아 대장정

교보생명과 대산문화재단이 해마다 주최하는 행사로 2002년 시작돼 올해로 12회째다. 미래의 주역인 대학생들이 동북아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이해하고 미래를 이끌어 나가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올해 대장정에는 총 3만5000여명이 지원해 세 차례의 전형을 거쳐 남녀 50명씩 100명이 최종 선발됐다. 대장정 후에는 ‘동북아 프론티어 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며 교보생명과 대산문화재단의 사회봉사와 문화체험,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 등에 함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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