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의심받기 시작한 한국의 국가 경쟁력

입력 2013-09-11 17:56   수정 2013-09-12 06:44

전봇대·손톱 밑 가시 갈수록 늘고 노조 떼쓰기·정치 포퓰리즘 여전
기업 다 내쫓아야 제정신 차릴까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클라우스 슈왑은 참 대단한 장사꾼이다. 교수라지만 학문적 성가보다 네트워킹 능력이 탁월한 인물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라는 민간회의체를 만들더니 세계의 명사들을 다보스라는 스위스의 시골마을로 불러 모은 게 벌써 40년이다. 참가비만 최소 8000만원짜리 포럼이다. 가히 초일류 ‘비즈페서(비즈니스+프로페서)’다.

하지만 그가 만든 포럼에는 태생적 약점이 있다. 비전문가들이 모여 불분명한 주제를 논의하다 보니 말만 많을 뿐 해법이 없다.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보스에 모인 사람들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게 없거나, 모르는 게 종종 더 많다는 것이 진실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처럼 다보스포럼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 이유다.

그런 곳에서 나오는 무의미한 보고서가 국가경쟁력보고서다. 매년 각국의 경쟁력에 순위를 매기는데 조사나 분석 방법이 신통치 않다. 슈왑의 마케팅 수단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래서인지 몇 년 전만 해도 큼지막하게 다루던 언론들도 요즘은 기획성이 아니면 아예 다루지 않는 곳도 있을 정도다.

어쨌든 웃기는 건 한국 정부다. 언론에 다룰 가치가 없는 보고서라는 점을 늘 강조해온 정부다. 그런데 며칠 전 한국의 경쟁력이 작년보다 6계단이나 미끄러졌다는 2013년판 보고서가 나오자 태도가 달라졌다. 각 부처가 조목조목 반박한 보도자료를 앞다퉈 쏟아냈다. 금융위원회는 심지어 한국의 설문 대상자들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응답한다며 국민성까지 들먹였다. 장사꾼의 보고서라며 왜 이리 호들갑을 떨까.

오히려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는 법이다. 제도적 요인 74위, 노동시장 효율성 78위, 금융시장 성숙도 81위다. 상세 항목으로 들어가면 정부의 얼굴은 더 화끈거린다. 공무원의 편파적인 결정 95위, 기업 활동에 정부 규제의 부담 95위, 정책 결정 투명성 130위다. 신뢰도가 낮은 보고서라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따져 보자. 정부와 정치권은 지난 몇 년간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전봇대를 뽑겠다더니 오히려 전봇대를 늘려 놓은 것은 이명박 정부다. 규제가 해마다 8%씩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손톱의 가시 1개를 빼내면 2~3개 가시가 새로 손톱에 박힌다는 조사 결과다. 규제가 이런 식으로 늘어났는데 제도적 요인이 74위라면 오히려 봐준 셈이다. 현대자동차의 파업사태가 나라의 경제성장률까지 갉아먹는 지경이다. 노동시장 효율성이 100위권이 아니라 78위라는 게 이상할 뿐이다. 금융허브라는 허상을 좇으며 허송세월한 것이 10년이다. 금융시장 성숙도가 81위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해외에서 나오는 각종 보고서는 결코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매년 발표하는 경제자유도 순위에서 한국은 177개국 가운데 34위로 평가됐다. 3계단 밀려난 것이다. 경직된 규제와 강성 노조가 기업에 비용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고 계속되는 부패가 정부의 공정성과 신뢰를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도 여전히 30위 안팎이다. 역시 시장이 아닌 정부와 정치의 비효율성 탓이다.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와 미국경쟁력위원회는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지수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경쟁력을 3위에서 5위로 낮췄다.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까지 첨부됐다. 제조업 경쟁력으로 그나마 버텨온 한국이다. 이제는 무엇으로 버텨야 할지.

이런데도 정치권과 정부는 여전히 인기영합 정책에 몰두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와 하도급법 등으로 출발한 경제민주화법은 지금도 하루에 하나꼴로 국회를 통과하고 있고, 터무니 없는 화학물질 규제법은 제조업에 이중의 족쇄를 채우고 있다. 어느 나라도 의무화하지 않은 무리한 규제로 가득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인들 목을 죄고 있다.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장이 아니라 생산기지로서다.

온갖 규제를 풀고 지원책을 마련해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 미국과 일본이다. 그런 마당에 우리는 안 나가겠다고 버티는 기업까지 내쫓고 있으니, 수업료를 얼마나 지불해야 정신을 차릴지 모를 일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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