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매, 온 국민의 리그] 꾼들, 먹을게 없어졌다…살림꾼들, 살게 많아졌다

입력 2013-10-18 21:27   수정 2013-10-19 03:52

커버스토리

수도권 아파트 경매 입찰자수
올해 벌써 6만명 넘어
평균 경쟁률 6대1 이상 치솟아




지난 17일 오전 11시 서울 공덕동 서부지방법원 4층 408호 경매 법정. 복도 의자에 80여명, 법정 안에는 90여명이 경매입찰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11시17분께 ‘삐’ 알림음이 울리며 “지금부터 입찰함을 개함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경매 법정은 삽시간에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40~50대 중장년층이 많긴 했지만 결혼을 앞둔 20대 후반 커플과 30대 초보 투자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30대 남성은 “전세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전세보증금을 가지고 집 좀 사볼까 싶어 왔다”고 귀띔했다. 50대 주부 임정미 씨는 “경매를 통하면 시세보다 싸게 부동산을 살 수 있다고 해 경험 삼아 친구를 따라 구경왔다”고 말했다.

무섭고 어렵던 경매…이젠 쉽고 투명해져

불법과 탈법이 판을 치던 법원 경매시장의 속칭 ‘흑역사(黑歷史·어두운 과거)’는 과거지사다. 이제는 쉽고 투명해진 제도 덕분에 바야흐로 ‘셀프 경매(나홀로 투자)’ 시대가 도래했다.

법원경매제도가 첫 도입된 때는 1960년 4월. 법원경매의 근거법이 된 ‘민사소송법’이 만들어져 그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1993년 5월 입찰제도가 호가(呼價) 방식에서 서면입찰 방식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일반인들이 참여하기가 사실상 어려웠다. 입찰자들이 법정 앞에 다 같이 모여 입찰가격을 부르는 호가 방식에선 누가 경쟁자인지 뻔히 보여 브로커와 조직폭력배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았다.

설춘환 알앤아이컨설팅 대표는 “입찰에 참여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으로 노려보는데 분위기가 정말 험악했었다”고 과거 경매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말 대신 서면으로 낙찰가를 써내는 입찰제로 바뀌면서 누가 얼마를 써내는지 알 수 없어지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간단한 서류 한 장으로 경매부동산의 세입자(임차인)를 내보낼 수 있는 ‘인도명령제’가 2002년 도입된 것도 경매 대중화의 초석이 됐다. 이전에는 낙찰자들이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 이상 걸리는 소송(집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세입자가 무조건 버티면 1년 가까이 낙찰받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경매정보 유통은 경매 대중화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83년 경매정보 사업을 시작한 강명주 지지옥션 회장은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법원 경매 담당자와 소수의 브로커가 결탁해 좋은 물건을 아예 경매 진행 서류에서 누락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경매계장을 6개월 하면 집 한 채 장만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정보를 독점한 극소수가 이권을 챙겼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경매 물건이 총 100개라면 한 20개는 이런 ‘누락 정보’였다”며 “이 중 10여개를 찾아내 어떤 물건이 경매로 나오는지 인쇄물에 실었더니 이걸 받겠다고 줄을 서고 난리였다”고 회고했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정보시장이 커지면서 정보 불균형은 급속히 개선됐다. 지금은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경매 서적이 넘쳐나고 사설 정보업체와 컨설팅사, 경매 투자 동호회 등이 법률 정보와 권리분석 기법을 제공한다.

불황기에도 성장한 경매시장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경매시장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한 데는 경매 물건 수 자체가 크게 증가해 입찰자들의 선택 범위가 넓어진 것도 작용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0년대 초·중반 신용카드 대란과 은행의 회계기준 변경 등으로 경매 물건이 본격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와 맥을 같이하는 경매시장은 2004~2008년 부동산 경기 활황기에 맞춰 크게 성장했다. 집값이 자고 나면 뛰던 때여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경매 물건을 사두면 차익을 남기기 쉬웠다. ‘묻지마 입찰’이 성행한 시기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매가 ‘불황에 빛을 발하는 재테크 수단’이라고 입을 모은다. 모든 자산가치가 떨어져 공포감이 커질 때 싼 가격에 매입하면 나중에 큰 차익을 남기는 ‘대박’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5년간 이어진 부동산 침체기는 경매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호황기 시절 거액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가 집값 하락으로 이자를 견디지 못한 ‘하우스푸어’들의 집이 경매에 대거 나온 것이다.

정대홍 부동산태인 팀장은 “2005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경매 물량은 투자 목적이 아닌 실수요자들도 경매에 가담하면서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며 “한 번 유찰될 때마다 최저입찰가격을 깎는 비율(저감률)도 법원에 따라 20%에서 30%로 높아지면서 가격 메리트가 부각됐다”고 말했다.

치솟는 입찰 경쟁률

지난달 중순 서울 노원구 중계동 주공8단지 전용 49㎡ 아파트 경매에는 무려 43명이 몰렸다. 낙찰가는 감정가(2억3500만원)의 87.2%인 2억488만8800원까지 치솟았다.

아파트는 경매 대중화의 대표적인 상품이다.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물건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다.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평균 입찰경쟁률은 경매 호황기였던 2004년과 2005년에도 3 대 1과 4 대 1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5.21 대 1, 올해는 6.21 대 1로 크게 뛰었다. 수도권 아파트만 보면 올해 평균 입찰경쟁률은 6.38 대 1까지 높아진다.

수도권 소재 아파트 경매에 참여한 입찰자 수는 2010년 4만9664명에서 지난해 5만3163명, 올해는 9월 말까지 6만2487명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진행된 연평균 수도권 아파트 경매 물건 수는 2만8000~3만3000개로 이미 활황기 수준을 넘어섰다.

이 중 매년 1만~1만2000여개는 새로 경매시장에 나오는 물건이어서 입찰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전국 법원과 지원의 경매계는 올해에만 수도권에서 10개가 늘어나 총 336개에 달한다. 경매 물건이 급증하며 법원경매만을 담당하는 법원 조직(경매계)이 새로 생긴 것이다.

입찰가에 ‘0’ 하나 더 붙이고…실수 백태

경매 참여자가 크게 늘면서 이른바 ‘경매 선수(전문가)들’은 단순 경매에 점차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권리관계가 단순한 매물은 일반인도 쉽게 알아봐 경쟁률이 높아져 싼 가격에 매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경매 고수들이 유치권이나 법정지상권이 설정된 특수물건, 부실채권(NPL) 투자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이영진 이웰에셋 대표는 “금융회사가 부실채권을 미리 유동화한 상품인 NPL은 경매가 진행되는 부동산도 다수 포함돼 있어 경매 투자와 병행하면 수익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보 투자자들이 증가하면서 웃지 못할 일들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입찰표를 잘못 기재하거나 입찰가격에 ‘0’을 하나 더 붙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평과 평방미터(㎡)를 혼동해 낭패를 보기도 한다. 일반 거래시장의 급매물이나 감정가격보다 더 비싸게 낙찰받는 경우도 있다. 시세보다 비싸게 낙찰받은 입찰자는 더 큰 손해를 피하기 위해 입찰보증금(입찰가의 10~20%)이 몰수당하더라도 잔금을 내지 않고 포기한다. 이런 식으로 재매각되는 경매 건수가 전체의 5~6%를 차지한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던 2006~2007년에도 경매 열풍이 분 적이 있다. 최근 대중화는 전세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준비가 안 된 초보 투자자들이 무리하게 입찰에 참여해 입찰 보증금만 날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문혜정/이현진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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