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식품 '유통기한 표시' 바꿔야 하나

입력 2013-12-06 21:39  

[ 최만수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7일 유제품업체와 대리점 간 모범거래기준을 마련했다. 유제품업체가 유통기한이 50% 이상 지나 판매하기 어려운 제품을 대리점에 강제로 공급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이를 계기로 ‘유통기한’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식품산업협회는 유통기한이 먹을 수 있는 기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도 소비자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예를 들어 우유는 구입한 뒤 개봉하지 않고 냉장 상태로 제대로 보관하기만 하면 제조일 이후 45일까지 먹을 수 있지만 유통기한은 14일로 정해져 있다.

슈퍼마켓 등은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반품하고 제조업체들은 폐기하게 된다.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식품만 연간 6000여억원에 이른다는 게 식품산업협회의 추산이다. 이 때문에 식품산업협회 등은 실제 먹을 수 있는 기한을 뜻하는 ‘소비기한표시’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간 여러 조치와 연구를 진행했지만 새로운 제도 도입이 소비자 혼란만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2007년 잼 맥주 등에 ‘품질유지기한’ 표시를 하도록 하고, 지난해엔 일부 품목에 소비기한 표시를 시범실시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또 정책의 우선순위가 폐기식품 감축이 아니라 국민 건강 증진에 있는 만큼 유통기한을 날짜가 긴 소비기한으로 대체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맞짱토론에선 유통기한 표시를 바꿔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두는 게 좋은지에 대해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와 김건희 덕성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맞붙었다.

■ 유통기한·품질유지기한·소비기한

▧유통기한(sell by date)= 식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최종 시한.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부패 또는 변질되지 않았더라도 판매할 수 없다.

▧품질유지기한(best before date)= 식품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보관할 경우 해당 식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 기한이 경과해도 판매할 수 있다.

▧소비기한(use by date)=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소비 최종 시한으로 유통기한보다 길다.

찬성 - 멀쩡한 식품 마구 버려…소비기한이 낭비 막아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할 때 ‘가격’과 ‘유통기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표시된 유통기한을 ‘상하기 직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날짜’라고 믿고 있는데 작년 8월 ‘소비기한’ 제도가 시범 도입되면서 ‘유통기한’의 의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유통기한은 유통업체가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고,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먹을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상품으로서의 식품 수명을 결정하는 척도이므로 유통기한보다는 소비기한으로 표기할 때 좀 더 길게 표시될 수 있다.

한국의 유통기한 관련 제도는 설탕, 소금 등 일부 첨가물에 대해 적용되는 ‘제조일자’, 식품 대부분이 해당되는 판매가능 일자인 ‘유통기한’, 그리고 맥주 등 일부 보존성이 높은 제품군들에 적용되는 ‘품질유지기한’이 있다.

품질유지기한은 유통기한이나 소비기한과 달리 ‘안전’이 아니라 식품의 ‘품질’이 최상으로 유지되는 기간을 정한 것이다. 설령 품질유지기한이 지났다 하더라도 그 식품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어 최상의 품질은 아니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품질유지기한이 표시되는 제품에는 잼류, 다류(차), 멸균음료, 간장, 인삼제품류, 김치·절임식품, 벌꿀, 밀가루, 레토르트식품, 통조림식품 등이 있다.

현재 식품의 안전기준인 유통기한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를 대신해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필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살펴볼 때 소비기한 제도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다만 식품의 품질과 관계된 품질유지기한은 유지하고, 안전과 관계된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반품·폐기식품 합치면 1조원 훌쩍 넘는 피해

찬성하는 이유는 첫째, 소비기한 제도 도입은 국가, 기업, 소비자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준다. 이 제도는 반품과 폐기식품을 줄여 범국가적 경제 손실을 최소화함으로써 국가와 기업에 도움을 준다. 이는 가격인하 효과가 있어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된다. 국내에서는 연간 제조 식품 33조원의 1.8%인 6000억원어치가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된다고 한다. 유통기한이 2~3일 남은 제품을 유통업계에서 미리 반품하는 사례, 가정에서 유통기한 경과로 폐기하는 물량까지 합치면 그 피해가 1조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현재 모든 식품의 유통기한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정한 ‘식품의 유통기한 설정기준’에 따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설정된다. 제품의 유통기한은 보통 실험치의 70% 선에서 설정한다.

소비자가 구매 후 집에서 보관하는 시간, 개봉 후 보관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소비자원에서 시중에 유통 중인 냉장 빵류의 저장성을 실험한 결과 유통기한 경과 후에도 최장 20일 이상 소비가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20일이나 더 먹을 수 있는 빵을 폐기함으로써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해 대외의존도가 높고 경제난에 직면한 우리의 현실에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 생각된다. 11월23일자 한국경제신문에서도 최장 90일까지 섭취 가능한 두부가 14일로, 45일 섭취 가능한 우유가 14일로, 14일 섭취 가능한 콩나물이 8일로 유통기한이 설정돼 아까운 식품이 멀쩡한 상태로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 기업이 제품의 가격을 책정할 때 반품과 폐기량까지 감안해 매기기 때문에 소비기한이 도입돼 좀 더 오래 판매할 경우 제품의 가격인하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소비기한은 먹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의 정확한 판단시점 기준이 돼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다. 소비자는 가정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보면 먹을까 말까 고민한다. 어떤 이는 바로 버리기도 하고, 며칠 정도 지난 것을 먹는 사람도 있고, 몇 주가 지나더라도 맛, 냄새, 색깔이 괜찮으면 찜찜하지만 먹는 사람도 있다.

소비자는 이렇듯 가정에서 보관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리지 않고 먹을 때가 많은데, 먹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까지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시점은 식품의 종류마다 다르고 제조사와 브랜드에 따라 다르다. 또한 개봉 여부와 냉장고 온도 등 가정에서의 보관상태에 따라 다르다.


버려지는 식품 줄어들면 가격 인하 효과볼 것

만약 제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찍혀 있다면 소비자는 먹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기한은 이런 소비자의 걱정거리를 해소시켜 주는 장점이 있다.

유통기한에 비해 큰 장점을 가진 소비기한 제도가 도입돼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체계적인 소비기한 제도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이 제도가 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소비자를 안심시키고 믿음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산업체는 이 제도 도입으로 인한 폐기식품 감소를 원가에 반영해 식품의 가격 인하에 적극 앞장서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소비기한 제도가 유통기한보다 식품의 안전한 섭취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전 식생활에 적극 활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반대 - 소비자 건강 위해서는 유통기한 표시가 최선

소비자는 건강 유지와 증진을 위해 안전하고 신선하며 품질 좋은 식품을 구매하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소비자는 식품을 살 때 유통기한 관련 정보를 가장 먼저 확인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식품영양과학회 연구팀은 2010년 서울지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식품표시에 대한 인식도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결과를 보면 식품을 구입할 때 식품표시를 확인하는 이유로 ‘유통기한 확인을 위해서’가 60.1%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는 유통기한이 소비자가 식품의 신선도 등 품질을 추정할 수 있는 척도인 동시에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기본적인 표시사항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고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의 84.6%는 구매 시 같은 제품이라도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것을 선호하며,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조사에서도 소비자들은 가격(15.8%)보다도 유통기한을 더 중시(25.4%)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유통기한이 소비자의 식품 선택이나 구매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병행 표기해도 차이 잘몰라…버려지는 식품 줄지 않을 것

한국에서 유통기한과 관련한 표시기준이나 법규에는 제조연월일, 품질유지기한, 유통기한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국가별 특성에 따라 유통기한과 관련된 표시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어 expiry date, best before date, use by date, 상미기한(賞味期限) 등으로 표기된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유통기한은 판매기한으로, 식품 특성에 따라 아직 식품 품질은 유지하고 있지만 유통기한이라는 제한 때문에 판매가 금지되고 폐기되는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통기한 경과를 이유로 생산된 식품의 2% 정도가 반품(2010년 기준, 6200억원 규모)돼 식량 자원 손실 우려가 있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이다. 그동안 유통기한 표시제도가 소비 가능한 식품 폐기를 유도한다는 이유로 자원 낭비 및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로 소비기한 도입에 대한 의견이 제기돼 왔다. 소비기한(use by date)은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소비 최종시한으로 유통기한보다 길다. 그 이유는 유통기한이 냉장 등 적절한 방식으로 보관되지 않았을 경우까지 고려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식약처는 2012년 몇몇 가공식품에 대해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행 표시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생산단계 손실비용 절감 효과는 크게 없고, 소비자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자체 연구 결과가 있었다. 아직 많은 소비자는 두 표기의 차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소비기한을 병행 표기한다고 해도 버려지는 식품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콜드체인(냉동 및 냉장 물류 시스템)과 같은 식품의 보관·유통 체계가 개선되면 유통기한이 자동 연장돼 식품 폐기 비용도 감소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이 섭취하는 식품의 안전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식품 폐기로 인한 자원 낭비를 줄이려면 이미 중요한 제도로 정착돼 있는 유통기한 표시제를 변경할 것이 아니라 식품의 보관·유통체계에 대한 기술 개발과 지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유통기한 개념 홍보 시급…보관기술 개발로 손실 방지

지난 2일 발생한 학교급식용 중국산 배추김치의 병원성 대장균에 의한 식중독 사건의 경우 김치 제조일자는 2013년 9월27일, 유통기한은 2014년 9월26일까지인 제품이었다. 소비자단체에 접수된 식품 관련 불만 건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유통기한 미경과 식품의 변질과 이상에 대한 접수 건수가 많은 것은 사실상 유통기한 연장이나 다름없는 소비기한 제도가 실효성을 발휘하긴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 시점에서 소비자 혼란 및 산업체와 정부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현행 유통기한 표시기준의 틀을 유지하되, 유통기한이 식품 폐기 시점과 다르다는 점에 대한 식약처의 적극적인 정책 홍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현행 유통기한을 유지할 때 유통기한이 지난 뒤 식품의 섭취 여부 판단은 소비자 몫이므로 여전히 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또 소비기한을 도입하더라도 유통·소비단계에서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보관했을 경우는 소비기한과 상관없이 오염됐을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즉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미개봉 상태에서 냉동 냉장 등 보관조건을 준수하고 섭취하기 전 냄새 색상 등으로 변질 여부를 확인해야만 하므로 현 유통기한 표시 방식이 안전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식품 유통기한 표시에 대한 법령을 담고 있는 식품위생법의 목적이 국민 건강 증진임을 감안해 모든 유통되는 식품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돼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식품 위해인자를 제로화하기 위해 유통기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최대한 반영해 식품별 특성, 제품별 차이, 유통조건 등을 고려한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과학적인 식품유통기한 표시제도의 시행이 안전한 식품 섭취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통기한과 관련해 식품을 어떻게 잘 구매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을 대상으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 홍보가 이뤄져야 할 것이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막대한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 읽을 만한 자료

△유통기한·소비기한 병행표시에 따른 영향분석 결과보고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김우선, 2013
△유통기한 관련 정보에 대한 법적 표시규정과 소비자의 해석 및 소비행동, 김철민, 2012
△식품산업에서의 유통기한 설정 및 사례연구, 식품과 기계, 김태석, 2008
△가공식품 유통기한 표시 정책의 국제 동향, 식품과 기계, 박기환, 2008
△서울지역 소비자들의 식품표시에 대한 인식도 조사,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최미희 등, 2010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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