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라는 교육

입력 2014-05-28 20:43   수정 2014-05-29 05:28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었던 상처들
의인들 새기며 교육 체제 정비해야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



암울했던 유신 시절, 마음이 답답하고 생각이 막힐 때면 들르던 서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며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앞으로 오게 될 새로운 시대를 꿈꾸곤 했다.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 책은 나에게 새로운 시대를 향한 용기와 확신을 심어줬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에서 모아지는 거대한 힘이란 것을 깨닫게 해준 걸작이었다.

1806년 독일은 나폴레옹에게 대패했다. 프랑스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독일 국민은 절망에 빠졌다. 고난을 극복할 한 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패전 후 혼돈의 시기에 철학자로서 신념과 열정을 갖고 독일 국민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가능성을 심어준 사람이 바로 피히테다.

그는 1807년 나폴레옹군의 행군 대열이 창밖으로 보이는 베를린 아카데미에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란 강연을 했다. “독일이 패망한 것은 군대가 약해서가 아니라 독일인 모두가 희생과 애국심을 망각한 채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혼(魂)을 길러야 한다”고 호소했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조국 재건을 촉구하는 울부짖음이었다. 그가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강조한 ‘독일 정신’은 이후 비스마르크로 이어졌고 또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낸 원동력이 됐다.

우리나라는 지금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쌓여온 타성적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적당주의, 법 경시 사고와 물신주의, 인간생명 경시 등이 만들어낸 결과다. 오랜 시간 동안 팽배하던 이기심이 곳곳에서 곪아 터져나오고 있다. 몰랐던 것이 아니다. 모두가 다 알고 있었지만 도려내지 못했던 큰 상처들이 이번 세월호 참사로 인해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이기심을 뛰어넘은 의사자(義死者)들의 모습 속에 대한민국의 내일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피히테가 교육을 통해 국가의 혼을 길러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이 땅의 의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꽃피워나가는 교육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그 길이야말로 우리 민족 혼을 되살리는 일이며, 우리가 지녔던 두레 정신의 원형을 되찾는 것이다. ‘나’만이 아닌 ‘우리’를 되찾을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한 때다.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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