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털어야 할 건 '신상'이 아니다

입력 2014-07-08 05:11   수정 2014-07-08 05:53

안재석? IT과학부 차장 yagoo@hankyung.com


올초 한국에서도 개봉했던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의 배경은 출판사 사전편찬팀이다. 영화는 팀장 격에 해당하는 고참 직원이 신입 팀원을 물색하러 다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사내 곳곳을 돌며, 부딪히는 젊은 사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오른쪽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한번 내려보게.” 어벙해 보이는 더벅머리의 한 직원만 머리를 긁적이며 색다른 대답을 한다. “북쪽을 바라봤을 때 동쪽이라고 하면 되려나….” 잔뜩 구겨졌던 고참 직원의 얼굴에 간신히 웃음기가 돈다. ‘빙고!’

고추밭 논란에 묻힌 '4만불 시대'

7 일 열린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보면서 이 영화가 떠올랐다. 질문의 주류는 역시나 ‘신상 털기’였다. 다운계약서를 통한 세금 탈루와 병역법 위반 등 익숙한 테마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04년 투기지역 지정 직전에 농지를 사들인 뒤 농사를 짓지 않다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급하게 고추밭을 일궜다는 이른바 ‘급조 고추밭’ 논란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상 대적으로 미래 먹거리에 대한 논의는 뜨겁지 않았다.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견인할 미래 성장동력을 육성하겠다”는 최 후보자의 모두 발언에 대해서는 토를 다는 의원을 찾기 힘들었다.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의 역동성 제고’ 등 최 후보자가 내세운 구체적인 전략도 국물이 멀건 ‘재탕’ 느낌이 강했다. ‘통신시장의 요금인가제를 폐지하겠다’는 발언이 잠깐 눈길을 끌었지만 이마저도 미래부 해명으로 세 시간 만에 번복됐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출범 초기 특정 단어에 들어맞는 마땅한 ‘정의’를 찾느라 진땀을 뺐다. ‘창조’라는 키워드가 문제였다. 듣는 사람마다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답안지를 내놓았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답답한 기업과 관료들은 저마다 뜻풀이에 나섰다. “규제개혁을 하자는 얘기겠죠?”,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자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숙제로 남은 '창조' 논란

‘창 조경제’라는 화두를 진두지휘할 부처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름은 미래창조과학부. ‘창조’만 해도 어려운데 여기에 ‘미래’와 ‘과학’이라는 단어까지 추가됐다. 예전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치고 거기에 지식경제부의 일부 기능까지 더했기 때문이다. 실무 부서의 명칭이 덩달아 복잡해진 건 자연스러운 수순. 창조융합기획과 등 ‘다음의 부서는 뭘 하는 곳일까요?’라고 퀴즈 프로그램에 나올 만한 명칭들이 양산됐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업무를 융합하는 것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장벽을 허무는’ 작업은 유행이 된 지 오래다.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인 다니엘 카너먼은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인지 편향’을 연구한 심리학자지만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성공적인 융합 사례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드워드 윌슨이 끄집어낸 ‘통섭(consilience)’이라는 생경한 단어도 이젠 일상 용어처럼 쓰인다.

‘창조경제가 무엇이냐’는 ‘개념정의 논쟁’에 최 후보자는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통합 부처의 시너지를 내는 방안도 숙제로 남았다. ‘창조’라는 문패를 단 미래부라면 무릎을 탁 칠 만큼 창의적인 답안을 내놓았으면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오른쪽’을 정의한 것처럼.

안재석 IT과학부 차장 yagoo@hankyung.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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