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무’ 한예리, 너의 리듬

입력 2014-08-19 13:34  


[최송희 기자] 한예리는 하나의 리듬이다.

어떤 식으로든 변주 가능한 그 리듬은, 막 익숙해지려는 찰나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그 리듬은 하나의 춤사위가 되고 대체 불가능한 의미를 담는다.

최근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 개봉 전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만난 배우 한예리는 묘연한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리듬은 시나브로 상대를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그는 늘 다른 방식으로 멜로디를 연주했다. 이북소녀에서 평범한 대학생을 지나 조선족 처녀까지. 익숙한 듯 다른 한예리의 얼굴은 단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었다.

늘 다른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예리가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만들어낸 이들이 다른 차원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쁜 출근길, 우연히 들렀던 식당, 퇴근길 지하철에서 발견됨 직한 인물들. 그리 멀지 않은 친숙한 얼굴을 들여다보면 인물이 가진 멜로디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한예리가 있다.


조선족 사투리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그 동네 인물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지켜주고 싶은 보드라움을 지니고 있다. ‘코리아’ 유복순부터 ‘해무’의 홍매까지 자유자재로 사투리를 구사하면서도 사랑스러움을 잊지 않는 것에 칭찬을 건네자 “바로 그 점을 노렸어요”라며 해사하게 웃는다.

“조선족 사투리가 세다는 인상을 과감하게 깨주고 싶었어요. 동식(박유천)과 홍매의 로맨스가 강조된 부분이기 때문에, 말에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껴선 안 되니까. 말도 느리게 해보고, 음절의 악센트도 완화했죠.”

매번 어떻게 그렇게 능청스럽게 변신하는 걸까. “어떤 식으로 연습했어요?” 묻자, 그는 대번에 “방법이 없어요”라며 눈썹을 축 늘어트린다.

“언어는 무조건 많이. (웃음) 자주 보이는 분들이라서 더 열심히 했죠. 연변 사투리랑 여수 사투리가 한 번에 보였을 때, 그 장면이 주는 재미가 또 있었어요.”

무조건, 많이. 한예리는 인터뷰 내내 “폐가 되지 않도록” “무조건” “많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여배우고, 홍일점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던 것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느낌이었다.

그토록 많은 연습을 두고, 연습한 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다. 마치 그 인물과 같은 자연스러움을 머금은 배우. 타고난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그 뒤에는 수없는 연습이 스며있었다.

“폐가 되지 않도록 정말 노력했어요. 체력적인 측면에서도, 제 신체가 따라주지 않아 테이크를 못 가는 경우가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죠. 그런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따로 체력 관리도 열심히 했고요. 스태프들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배우로서 그게 영화에 대한 책임감, 제 손으로 잘 끝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어요.”

체력관리를 따로 할 정도였다는 말에 수긍이 갔다. 그 정도로 홍매는 육체적, 심정인 고통을 떠안은 인물이었다. 첫 밀항에 나선 전진호에 탑승한 작은 여자아이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삶과 죽음, 사랑과 두려움을 맛보며 홀로 바다를 헤쳐 간다.

“심적으로 부담을 많이 느꼈던 건 베드신이었어요. 사전에 감독님과 이야길 많이 나눴기 때문에 노출 같은 부분은 큰 걱정이 없었어요. 감정적인 몰입을 위해서 수위 높은 노출 같은 건 배제했죠. 감독님도 ‘우리 영화는 절대 그러면 안 돼’라고 하셨어요.”

생존의 증명을 받기 위한 행위. 사랑을 넘어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했던 부분들은 여실히 한예리에게 전달됐다. “찍으면서 많이 울었다”는 베드신은 끝난 뒤, 퉁퉁 부은 눈을 남겼다고.

두 사람의 관계에 라면은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친근하면서도 가까운 인상의 음식을 설명하면서 “섹슈얼한 요리 아니에요?”라고 농을 걸었더니 “왜요? 왜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더니 영화 ‘봄날은 간다’ 은수와 ‘SNL코리아’ 안영미의 정체를 깨닫고는 고개를 젖히고 어린 애처럼 웃는다.

“와! 전혀 생각도 못 했어요. (웃음)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보신 분들도 있을까요? 그렇게 해석해도 되게 재밌겠네요.”


작고 어린 소녀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그것은 ‘해무’의 에필로그로 증명되는 셈이다. 홍매라는 여자 아이가 가진 포인트 중 대중과 소통에 성공한 장면은 어느 부분일까? 한예리가 쌓아놓은 이미지들 속, 대중들과 맞닿은 장면을 물었다.

“라면 같은 경우도 그런 부분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라면을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일부러요. 처음 집에 데려온 강아지가 막 경계하듯이요. 그러다 먹을 걸, 주면 경계를 풀고 허겁지겁 먹잖아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밀항까지 나섰지만 결국엔 어리고 철부지인 어린 애라는 느낌으로요.”

작게 웅크리고 구겨진 모습들은 흡사 길고양이 같다. 홍매에 대한 밑그림을 접해 들으며, 비 오는 날 쓰레기장 한편에서 맞닥뜨린 어린 고양이를 상상했다. 이에 한예리 역시 “비 잔뜩 맞은!”이라며 눙쳤다.

‘해무’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전사도 빽빽하다. 영화를 보면서도 각 캐릭터를 곱씹는 재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이를 두고 한예리에게 “작품이 가진 설정에 애착이 깊다”며 홍매가 가진 전사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과 함께 홍매라는 인물을 만들어간다”면서 차근차근 홍매의 밑바탕을 설명했다.

“일단 홍매는 4인 가족이에요. 아빠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많이 아파요. 오빠가 살림에 보탬이 됐는데 홍매가 대학에 가고 어느 시점에서 연락이 끊기죠. 결국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공장에 취직했는데, 회계나 전산 쪽에서 일했을 거예요. (웃음) 애가 좀 똘똘하고 야무져 보이잖아요?”

그야말로 빈틈이 없다. 그의 말마따나 “깨알 같은 설정”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해무’는 곱씹을수록 그 향기와 깊이가 있었다. 이를 두고 “원작은 보았느냐”고 묻자, 한예리는 “촬영이 다 끝난 뒤 보았다”고 답했다.

“감독님께서 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겨서 나중에야 보게 됐죠. 아무래도 원작에 갇힐까 봐 우려하신 것 같아요. 원작의 홍매와 영화의 홍매가 다르기도 하고요. 영화의 홍매는 좀 더 다채롭고 여지가 많은 인물인 것 같아요.”

영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 “연극의 바다를 구현”하고 “스크린 속 출렁거리는 느낌”은 영화만의 매력을 십분 드러냈다.

“문학적 영화적 요소를 잘 표현해준 것 같아요. 함축적인 부분 많거든요. 배라는 공간, 선원의 공간들. 배라는 공간의 어떤 부분들이 다 의미가 있어요. 색깔까지도 다요. (웃음) 그런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살펴보면 ‘해무’가 조금 더 재밌을 것 같아요.”

한경닷컴 w스타뉴스 기사제보 news@w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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